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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07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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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조- 김시탁(시인)

  • 기사입력 : 2021-12-15 20:3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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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년이 넘도록 서로 연락이 없던 옛 직장 상사에게서 받은 문자가 아들을 결혼시킨다는 청첩장이다. 축하도 할 겸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궁금해서 전화를 하려다가 그만뒀다. 덜렁 청첩장만 보낸 걸 보면 그쪽도 굳이 전화 통화까지 할 생각은 없는 듯해서다. 부조 장부를 확인해보니 30년 전 딸아이 돌잔치에 3만원을 부조했다. 코로나 때문에 초청은 정중히 사양한다는 문구와 함께 계좌번호가 인쇄돼 있어 10만원을 송금했다.

    우리는 경조사에 청첩을 보내고 부조를 하는 문화에 익숙하다. 축의금과 조의금을 현금으로 봉투에 넣어 전하는데 그 금액의 정도는 했거니 받은 만큼 하면 된다. 그래서 부조 장부를 기록하지 않으면 곤란한 경우가 있다. 부조 장부는 부조금만 기록할 것이 아니라 참석 여부도 기록해 놓으면 좋다. 부조를 10만원 했는데 5만원을 받았다거나 본인이 참석했는데 상대방이 와주지 않게 되면 섭섭한 마음이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의 가치를 떠나 자존심의 문제로까지 확대돼 심한 경우에는 그 일로 다투고 서로 인연을 끊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조 장부를 기록해 비치하다가 경조사가 생기면 확인 후 경조금을 넣는다.

    필자 역시 꼼꼼하고 철저하게 부조 장부를 기록하고 관리했기에 30년 전의 내용도 확인이 가능했던 것이고 청첩을 한 사람도 아마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니 30년이 넘게 서로 연락 없이 살아왔는데도 수소문해서 연락처를 알아내고 청첩장을 보냈을 것이다. 송금을 하고 나면 모르고 있던 빚이라도 갚은 양 속이라도 좀 후련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까닭은 왜일까. 마음보다 봉투가 먼저 오고 가는 세상이 된 지는 오래됐다.

    결혼식장에 가보면 하객 대부분은 혼주에게 부조 봉투를 건네며 눈도장만 찍고 바로 식당으로 향하거나 식대 봉투를 받고 곧장 떠나 버린다. 식장에 앉아 새 출발을 하는 신랑 신부를 축하해주는 사람은 기껏해야 주인공들의 지인들이나 친인척에 불과하다.

    결혼식이 많은 성수기에는 청첩장이 많이 날아든다. 가야 할 곳과 가지 않고 봉투만 내밀어도 될 곳을 정해 하루 몇 군데를 다녀야 하는 일도 만만찮다. 받았으니 하지 않을 수도 없고 세월이 좀 지나면 화폐가치와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서 부조를 해야 하는 것도 신경 쓰인다. 더군다나 정년이 되면 고정 수입이 없어서 용돈을 받아 쓰는 가장의 경우에는 경조금이 부담스러워 소속된 단체나 친목 모임을 탈회하기도 한다. 다 받아먹고 갚을 때가 되니까 빠진다는 소리가 뒤통수를 때릴 때는 많이 아프지만 감수해야 한다.

    환절기에 자주 날아드는 부고장, 성수기에 무더기로 날아오는 청첩장 이것이야말로 기약도 유통기한도 없는 것이어서 언제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날아올지 모를 채무 변제장 같은 것일까. 어쩌면 생의 부도를 막아주는 유일한 약속어음 같은 것이어서 아름답게 결재부터 하고 볼 일이다. 결재를 한다는 건 탄력 있게 삶을 잘 살고 있다는 확증이다.

    김시탁(시인)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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