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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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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어른’의 이름으로- 박옥순(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21-12-19 20: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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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디를 가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의 수가 적은 사람의 수보다 적을 때, 이제 어쩔 수 없이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 속에서 물질로나 마음 씀씀이로나 내가 줄 수 있는 것이 받을 것보다 많을 때 ‘어른’이라고 느꼈다.

    고답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나는 도의회에서 고장법(조례)을 만드는 일이 이 사회 어른으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민 대표로 주민들의 어려움을 보살피고 그것을 제도적인 장치로 연결하는 일, 물론 그 대상이 아동·청소년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우연한 기회에 아동·청소년의 상속과 관련한 법 지식을 쌓을 일이 있었는데, 몇 년 전 잠깐 본 드라마가 떠올랐다. 가수 출신 배우 아이유가 부모가 남긴 사채에 짓눌려 희망 없이 살아가는 여주인공 역을 맡은 드라마였다.

    가장 짠한 장면은 주인공 초등학교 졸업 장면이었다. 아무리 독한 부모라도 애 졸업에는 오겠지 싶어 졸업식장에 몰려든 빚쟁이들, 그 빚쟁이들 볼모가 돼 운동장 한가운데서 잔뜩 위축된 채 홀로 서 있는 아이를 본체만체 웃고 떠드는 사람들. 그중 누구 하나 어른은 없었다. 그 아이는 자라서 낮에는 계약직 알바로,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으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한다. 회사 탕비실에서 훔친 커피믹스와 손님이 남긴 음식이 끼니의 전부다. 빚은 끝이 없고, 말을 못하고 걷지 못하는 할머니까지 부양하고 있다. 한 명이라도 이 아이에게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주었더라면 적어도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나이 이후의 삶은 달랐을 것이다. 부모 빚을 대물림하지 않도록 제때 ‘한정승인’을 신청하라고 조언할 수도 있었고, 뒤늦게라도 ‘특별한정승인’을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이 아이는 빚이 무언지도 모르는 나이 때부터 추심을 당하다가 사회에 발을 내딛자마자 수십 년 빚의 노예로 삶이 통째로 저당 잡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행 상속법의 개정이다. 미성년자의 경우 별도의 법률행위를 하지 않아도 빚이 상속재산보다 많은 경우 자동적으로 한정승인할 수 있도록 해야 맞다.

    그러나 언제 법이 개정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도내 아동·청소년이라도 부모 빚 대물림 피해를 입지 않도록 나는 ‘경상남도 아동·청소년 부모 빚 대물림 관련 법률지원 조례’를 준비 중이다. 고맙게도 올 5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손잡고 재능기부형 법률 후견과 재정적인 후원을 하는 ‘경남지방변호사회 공익봉사단’이 출범해 조례가 만들어지면 사례 발굴과 법률 지원 연계에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

    드라마 앞 부분만 봐서 결말을 알 수 없어 찾아봤더니, 주인공은 참 ‘어른’을 만났고 스스로 자기 삶을 일구는 보통의 젊은이로 새 출발했다. 이제는 본인의 몫이다. 어떤 삶을 살지, 어떤 사람을 만날지 오롯이 본인의 선택이다. 그렇게 보통의 젊은이로 돌려놓는 일을 우리 어른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박옥순(경남도의원)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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