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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수정마을에서 경남공동체의 미래를 본다- 홍재우(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 기사입력 : 2021-12-26 21: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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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닷가 한 마을이 지난 15년간 겪은 일을 얘기하기는 원고지 9장의 지면이 너무 짧다. 우리나라에서 홍합 양식을 처음 시작한 마산합포구 구산면 수정 마을 이야기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주민 동의 없이 앞바다를 매립해 오염 시설인 선박 블록 공장을 만들던 STX중공업과 불투명한 행정으로 이를 추진한 마산시에 맞서 싸운 마을 주민과 수녀님들의 이야기다. 4년간의 치열한 싸움으로 2011년 사업은 중단됐으나 그로부터 10년간 마을은 시멘트로 메워진 약 7만평의 매립지가 바다를 막은 채 버려졌다. 바다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막혀버렸다. 외부의 금전적 회유를 중심으로 마을은 찬반으로 나누어지고 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났다. 형님 아우 하던 이웃이 10년간 대화 한 번 하지 못한 상태였다. 찬성과 반대 측 경로당이 따로 있을 지경이었다. 승자는 없었고 마을은 늙어갔다. 보다 못한 몇몇이 그동안 불신하던 공공 분야에 도움을 요청했다. 지역 사회 혁신을 위한 전향적인 진전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역 문제 해결 플랫폼인 ‘경남1번가’에 공식적인 요청이 등장한 이후, 전국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공동체 회복 작업이 시작됐다. 이 이야기는 지난 1년 동안 도내 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전국의 전문가들이 모여 워크숍을 개최했고, 도내 외의 청년 그룹들이 모여들었다. 경상남도의 사회 혁신 추진단, 마을 공동체 지원 센터, 공익 활동 지원 센터, 창원의 청년 내일 센터, 비전 센터, 또 경남연구원, 천주교 마산교구, 경남대학교 링크사업단, 서강대학교 SSK지역재생연구팀 등 공공 사회 혁신 조직, 학계와 연구 기관, 종교계 등이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마을 주민들의 화해였다. 마을은 얼마 전 방역 지침을 지키며 ‘수정, 빛나리 마을축제’를 개최해 그 첫 번째 결실을 내놓았다. 청년들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여러 작업들도 진행되고 있고, 주민 참여 예산제를 통해 마을 방송국 개국도 준비 중이며, 어촌 뉴딜 사업에도 선정돼 ‘홍합’으로 다시 살아나기 위한 힘찬 걸음도 시작했다.

    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연로한 마을주민들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또 아직까지 모든 마음의 앙금이 해소된 것도 아니고, 여전히 외부의 경제적 개입에 취약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매립지 문제가 남아 있다. 채권단인 농협과 신탁 회사는 지속적으로 매각 입찰을 시도하고 있고, 기획 부동산들이 꾸준히 공장 부지로 만들기 위해 마을을 들쑤시고 다니기도 한다. 창원시와 경상남도는 아직까지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수정마을 문제가 단지 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닌 모두의 문제인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공공의 실수로 인해 깨어진 공동체를 지역사회와 공공 기관이 모두 힘을 합쳐서 복원하려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밀양 송전탑이나 제주 강정 마을이나 사업이 끝났어도 상처가 치유되고 공동체가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둘째는 수변 지역으로서 수정만의 의미 때문이다. 마산만의 바닷물은 맑아지고 있지만 마산만 매립의 역사는 공장 부지 건설의 역사였다. 이제는 수변 지역이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하고 무엇보다 미래 발전의 원동력이 돼야 한다. 무려 324㎞의 창원 해안선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봐야 한다. 신공항과 신항부터 이어오는 바닷길이 새로운 문화 관광 산업의 축이 될 것이다. 해양 신도시와 인접한 수정만도 그 역할을 제대로 주어야 한다. 민간 자본을 공장 부지 매입자로만 보는 것도 지난 세기의 관점이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 복원 사업에 참여하는 전문가와 활동가, 그리고 농협, 창원시, 경상남도 모두 새로운 시각으로 수정 마을과 매립지 문제를 봐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주체가 될 주민들의 인식 변화가 중요하다. 수정 마을이 다시 그 이름처럼 빛날 때, 우리는 공동체 사업의 새 희망을 볼 것이다.

    홍재우 (인제대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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