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무릎 꿇다- 김사인
- 기사입력 : 2021-12-30 08:4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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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잃은 듯 허전한 계절입니다.
나무와 흙과 바람이 잘 말라 까슬합니다.
죽기 좋은 날이구나
옛 어른들처럼 찬탄하고 싶습니다.
방천에 넌 광목처럼
못다 한 욕망들도 잘 바래겠습니다.
조용한 곳으로 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흘러온 철부지의 삶을 뉘우치고
마른 나뭇잎 곁에서
죄 되지 않는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
저무는 일의 저 무욕
고개 숙이는 능선과 풀잎 곁에서.
별빛 총총해질 때까지.
☞ 이제 올해의 달력도 ‘마지막 잎새’입니다. 이제 더 이상 넘길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또 한 해를 달려왔는지요. “뭔가 잃은 듯 허전한 계절입니다.” 분명히 최선을 다해 달려온 것 같은데 이 허전함은 무엇일까요?
“흘러온 철부지의 삶을 뉘우치고” “조용한 곳으로 가/ 무릎 꿇고 싶습니다.” 살아있음이 죄가 되는 듯한 마음에 가슴이 아려오는 계절이 이즈음이지요. 가슴이 바싹 마른 나뭇잎같이 까슬해집니다.
이런 마음을 옛 어른들은 어떻게 아시고는 “죽기 좋은 날이구나” 찬탄하셨을까요? 내 마음도 “방천에 넌 광목처럼/ 못다 한 욕망들도 잘 바래”집니다. 정말 “마른 나뭇잎 곁에서/ 죄 되지 않는 무엇으로 있고 싶습니다.” 곧 제야의 종이 울리겠지요.
성선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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