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과거신문보기   |  
2022년 05월 21일 (토)
전체메뉴

[주말ON] 부자 氣받기- 삼성·LG·효성 창업주 이야기 ⑨ 최초의 사업, 마산 육일공작소

[2부] 여보게, 조금 늦으면 어떤가? 효성그룹 창업주 조홍제
1947년 철저한 분석·계획 거쳐 마산서 첫 철가공사업 시작

  • 기사입력 : 2021-12-31 09:34:27
  •   
  • 해방이 되었다. 조홍제는 대학 졸업 당시 꿈꾸었던 기업경영을 실현하기 위해 군북산업주식회사와 일부 농토를 매각하여 자금을 확보한 후 서울로 갔다.

    조홍제가 눈으로 본 해방 후 한국 사회와 서울은 무질서의 혼란과 비정상적인 상거래 등으로 기업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조홍제는 다른 일을 하면서 조금 더 서울 사회에 적응한 후 사업을 하기로 하고 먼저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때 스승인 인촌 김성수를 찾아갔다. 조홍제는 김성수에게 육영사업을 하고자 중학교를 추천해주면 운영해 보겠다고 요청을 드렸다.

    김성수는 “지금 해방된 우리나라에서 시급한 것이 생산을 하는 기업이다. 자네는 유학까지 가서 경제학을 전공한 엘리트 아니냐. 기업을 일으켜 세워 국민 복리를 위하여 일할 자네가 교육계에 와서는 안되네”하고 거절하였다.

    조홍제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2년을 보낸 후 나이 40이 되던 해 “내가 이렇게 좁은 고향 땅에서 보낼 수 없다”며 굳은 결심을 하고 1947년 가족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갔다.

    해방 직후 꿈꾸던 기업경영 실현 위해
    군북산업주식회사·농토 매각 자금 들고
    서울 갔지만 상황 안돼 고향 돌아와
    2년 후 마흔 되던 해 가족들과 다시 상경

    주도면밀한 시장조사 후 위험 줄이려
    마산 철가공업체 ‘육일공작소’ 소개받아
    자산평가 후 현금출자해 공동경영
    판매시장 서울과 마산 오가며 전력 다해

    1940년대 후반 육일공작소 터가 있었던 마산 풍경. 우측 하단에 ‘철’(붉은 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 길 끝이 제일여고 정문과 연결된다./조홍제 회고록/
    1940년대 후반 육일공작소 터가 있었던 마산 풍경. 우측 하단에 ‘철’(붉은 원)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이 길 끝이 제일여고 정문과 연결된다./조홍제 회고록/

    # 굳은 결심, 서울로 가서 사업을 하자

    서울은 2년 전보다는 사회가 많이 안정된 것 같았고, 이제는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조홍제는 본격적인 사업 진출을 위한 자신만의 기준을 확실히 가지고 있었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가능하고, 원자재의 구입이 어렵지 않아야 하고, 기술자의 구인난을 겪지 않는 업종을 우선 추진 사업으로 하였다. 사업의 실제 진행방식은 주도면밀한 시장조사를 한 후 철저한 기획을 한다. 그리고 사업 진행 중 발생할 문제 대안까지 예측하여 준비하였다. 독일 경제학을 공부한 엘리트답게 철저한 분석과 계획을 거친 후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었다.

    # 조홍제식 시장조사

    조홍제의 사업 접근에 관한 몇 가지 분석 결과이다. 토건업 시장조사 내용이다. 수익성, 장래성은 좋다. 그러나 공사비 지불이 늦어지면 상당한 시간 장기투자를 요구하여 회사의 재정 부담이 크다. 결론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고 위험부담이 커 진행하지 않는다.

    다음은 생산업 분석내용이다. 생산업은 공장을 세워야 하고, 중간에 다른 업종으로 전환이 힘들다. 사회가 혼란스러워 종업원이 정상적으로 조업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결론은 지금 진행할 시기가 아니다.

    세 번째로 분석한 것은 쇠붙이 즉, 철 관련 사업이다. 해방 후 물자가 귀한 시기라 생활에 필요한 제품이다. 재료 공급은 먼저 철을 구입하고 녹여서 여러 가지 생산품을 만들 수 있다. 결론은 철을 녹여 쓰는 용광로 사업은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였다. 마침내 조홍제는 철가공 사업에 먼저 진출하기로 하였다.

    1960년대 지금의 마산 해양신도시 매립지 앞 풍경. 우측 원안이 돝섬이다. 공장 굴뚝 주변이 마산 육일공작소가 있었던 곳으로 확인되었다./조홍제 회고록/
    1960년대 지금의 마산 해양신도시 매립지 앞 풍경. 우측 원안이 돝섬이다. 공장 굴뚝 주변이 마산 육일공작소가 있었던 곳으로 확인되었다./조홍제 회고록/

    # 첫사업, 마산에서 철가공업에 참여하다

    철가공업체를 두루 물색한 조홍제는 공장을 설립한 후 진출하는 것보다 기존 업체를 인수하거나 공동경영하여 위험을 줄이겠다는 계획을 가졌다. 조홍제는 마산에서 큰 규모로 운영하는 철가공업체인 ‘육일공작소(육일공업주식회사)’를 소개받았다. 육일공작소 자산평가를 한 후 현금 출자하여 철 사업에 진출한 것이 조홍제의 해방 후 첫 사업이다.

    실제 철가공 사업을 해보니 신제품 개발의 곤란, 판매시장의 협소 등으로 과감한 변화를 하지 않으면 지속적인 사업 대상이 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홍제는 마산에서 철가공 공장을 공동운영하면서 판매시장은 인구와 소비가 많은 서울로 결정하고, 서울과 마산을 오가면서 철가공 사업에 전력을 다하였다.

    이렇게 사업에 열정을 쏟고 있던 중 어느 날, 이병철이 서울 혜화동으로 이사를 와 인사차 서울 조홍제 집을 방문하였다. 조홍제와 이병철이 1947년 만나기는 했지만 바로 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이병철이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한 해가 1948년 11월이다.

    일반인들은 조홍제의 첫 사업을 이병철과 동업한 삼성물산공사로 대부분 알고 있지만 이와달리 조홍제는 앞서 설명하였듯이 마산에서 철가공기업 육일공작소를 공동경영한 사실이 명확하다. 구인회는 진주에서 포목점을 하였고, 이병철은 마산에서 정미소사업을 하였다. 세 사람의 첫 번째 사업지는 마산과 진주로, 모두 경남이다.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에 있는 장산숲 풍경./이래호/
    고성군 마암면 장산리에 있는 장산숲 풍경./이래호/

    # 흥미로운 스토리와 인연

    조홍제가 공동경영한 철가공 회사 이름은 마산(현 창원) 육일공작소이다. 이곳 사장은 고성군 마암면 장산의 선비 출신 ‘허준’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숲으로 유명한 ‘장산 숲’을 세운 조선 후기의 명문가 집안답게 자손의 번창함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설립자의 친손녀가 ‘허영’ 여사로 남편은 5선의 국회의원과 국회부의장을 지낸 한국 정치계의 거목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장관이다. 장관을 지냈으니 조선시대 이, 호, 예, 병, 형, 공 6부의 판서에 해당한다. 판사 출신인 이주영 전 장관이 육일공작소 대주주 경영자의 손녀 사위인 것이다.

    필자가 조홍제의 첫 사업장을 찾기 위해 해방 후의 기업자료는 물론 마산의 대형 철가공업체를 탐문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설립자의 친손녀 허영 여사를 알게 되었고, 육일공작소와 관련한 많은 자료를 취재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수확은 조홍제의 회고록에서 밝힌 첫 사업장 육일공작소 터까지 찾게 되었다.

    허영 여사의 어머니이자 이주영 전 장관의 장모인 ‘윤숙경’ 여사는 진주여고를 졸업하고 ‘다섯평의 유산’으로 널리 알려진 수필가로 2편(11월 12일자)에서 소개한 함안 고려동의 불사이군 ‘이오’의 직계후손이다. 이주영 전 장관의 부친은 대한민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 교수의 창원 소답동 ‘김종영 생가’에서 생활한 인연도 알게 되었다.

    “종가의 어머니는 뜨거운 물을 버릴 때에도 함부로 마당에 버리지 않았다. 무심한 잔디에도 생명이 있기 때문이다.” 고성군 ‘도연서원’ 설립자의 후손으로 유림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배우고 실천한 허영 여사의 한마디가 귓가에 생생하다.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인연과 스토리가 현재까지 많은 분들이 직·간접 기억하고 있어 이러한 내용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음에 감사함을 가진다.

    육일공작소 터 주변의 현재 풍경./이래호/
    육일공작소 터 주변의 현재 풍경./이래호/

    # 육일공작소 현재의 위치

    해방 후 신마산에 있었던 ‘육일공작소의 터’는 허영 여사와 친족들의 육성 증언을 통해 현장 확인이 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건물 흔적은 사라져 옛 모습은 없다. 지금이라도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 첫 사업장’ 안내판이 세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대한민국 경제사의 의미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조홍제의 육일공작소와 이병철의 협동정미소, 구인회의 포목점 세 곳의 첫 사업장 터와 함께 함안, 의령, 진주에 있는 창업주 생가를 대한민국 경제 역사 흔적지로 개발하여 경제 교육 장소는 물론 경제 관광지화하여 전 세계에 알려지기를 기대한다.

    그만큼 가치 있는 경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경남 근대 경제사의 중요한 유산을 찾도록 도와준 이주영 전 장관님과 허영 여사님에게 지면을 빌어 감사 인사를 올린다.

    〈조홍제의 한마디〉 몸에 지닌 작은 기술이 천만금의 재산보다 낫다.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이래호 (전 경남개발공사 관광사업본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