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소감] 내 삶의 단 하나의 길, 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겠다
시 부문 당선자 이경주 씨
- 기사입력 : 2022-01-03 07:4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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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맹 가리의 단편소설들은 늘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 여운을 감당할 힘이 없어 한동안 그의 소설을 읽는 것이 두려워질 때도 있었지요.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를 꺼냈습니다. 새들은 진짜 비상을 위해 머나 먼 바다의 섬을 떠나 조그만 해변으로 날아와서 자신들의 몸뚱이를 던져 버리는 것일까요. 나에게 떠나야 할 섬은 무엇인지, 그리고 마지막 몸을 던져야 할 곳은 어디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언제부터인지 젊은 시절 굵은 노트에 적어 댔던 시들이 나와는 너무나 멀리 떨어진 추억이 되어버린 것을 알았습니다. 먹고사는 일에 몰입해온 현실을 핑계로 시의 바깥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나갈 수 없는 사막에 갇혀 버렸다는 절망감도 컸습니다. 그러나 시를 쓰면서 운명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을 그 지독한 외로움, 고통, 무엇보다도 지켜내야 할 영혼의 투명함과 순수성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음이 솔직한 고백일 겁니다.
작년에는 참으로 많이 걸었습니다. 끝도 없는 길을 걸으면서 내가 세상을 사랑하는 방식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결국 시를 쓴다는 것이 나에게는 세상을 사랑하는 강력하고 유일한 방식이자 수단이 되어야 함을 길이 끝날 어느 즈음에야 알게 되었지요. 시는 갈수록 희미해지는 내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되살리고, 내가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에 멈추어 버렸던 시를 다시 끄집어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시의 바깥에서 기웃거리지 않고, 시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겠습니다. 고립된 섬을 벗어나 내 몸을 던질 마지막 해변을 향해 날아가겠습니다. 긴 망설임의 여정에서 내 안에 생겨 난 상처를 치유하고, 나의 치유로서 사막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은 위로와 희망이 될 수 있기를 감히 꿈꾸겠습니다.
이제까지 혼자 써 왔던 시였기에 세상에 내놓기가 참 부끄러웠습니다. 채 다듬지 못한 나무처럼 거칠고 틀어진 저의 작품을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과 귀한 지면을 허락해주신 경남신문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저를 응원해 준 아내와 가족들, 그리고 제가 어디를 가든 늘 함께 해 준 친구들에게도 고마운 인사를 전합니다. 아름답고 따뜻한 언어로 부지런히 좋은 시를 씀으로써 저를 사랑해 준 숱한 인연들에 보답하겠습니다.
시 부문 당선자 이경주 씨 (△1963년생 △충남 홍성 출생, 서울 거주 △서울대 농경제학과 졸업 △신한금융투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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