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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을 거쳐 본심에서 논의된 작품은 다섯 편이었다. ‘퀵-실버와 가라앉는 섬들’은 인도네시아 세틀섬의 아바호 부족에 관한 이국 서사로 소재가 흥미로웠다. 그러나 ‘퀵-실버’로 지칭된 화자의 통증과 아바호족 불꽃 제의 사이의 연관관계가 치밀하지 않은 점이 아쉬웠다. ‘화양연화’는 모녀지간의 위트 넘치는 대화가 인상적이고 읽는 재미가 남달랐다. 다만, 뚜렷한 갈등이 보이지 않고 대화가 너무 많아서 드라마를 문자로 옮긴 듯 보였다. ‘어떤 사랑’은 아들을 의과대학에 입학시킨 ‘타이거 맘’의 후회록에 해당하는데, 교육에 대한 잘못된 방향과 집착이 어떤 참혹한 사태를 가져오는지 서늘하게 그려냈다.
김은정
해이수손에서 쉽게 내려놓지 못한 글은 ‘모래로 만들어진 시간’이다. 미국 대학원에 입학한 남편을 뒷바라지하는 아내의 시선으로 일상의 쓸쓸함을 드러내는 방식이 탁월하다. 소통에서 단절된 이웃끼리 모여서 간단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서로 위안을 얻는 장면이 오래 남는다. 이방의 땅에서 남편이 부재한 시간에 잠깐 피어난 소소한 웃음이 주인공에게 그토록 각인된 이유는 우리의 현실이 그만큼 건조하고 소통을 갈망한다는 증거이다.
‘배웅’은 아마추어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솜씨로 심사위원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과거 혼인 여성이 낯설고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겪는 슬픔과 아픔을 서정적인 필체로 수월히 담아냈다. 남편 혹은 시댁의 관심으로부터 소외된 두 여성이 서로 사랑을 나누고 베풀며 견뎌내려는 안간힘은 읽는 이의 마음을 애잔하고 투명하게 만든다. 마지막에 한글을 깨친 정월희가 떠나간 곽연숙의 이름을 꼬챙이로 새기는 장면은 문자가 주는 치유력과 마술성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속 깊은 내공과 유려한 필력을 가진 당선자의 문운을 기원하며 지속적인 활동을 응원한다.
심사위원 김은정·해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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