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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쪽항아리- 김희숙

  • 기사입력 : 2022-01-03 07:4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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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가 움직인다. 손짓춤에 살결 같은 무명천이 내려서고 조리질에 참깨 올라오듯 누런 진흙물이 일어난다. 토닥거리며 매만지고 빠른 장단으로 휘몰아치니 항아리 안에 울돌목 회오리바람이 인다. 강바닥이 뒤집힌 듯한 너울에 정신이 혼미하다. 토해낸 물거품이 모여 수런거린다. 그가 젖은 천을 치켜들고 훑어 내리자 하늘 한 조각 떼어온 양 푸른 쪽물이 주르륵 쏟아진다.

    흙을 빚어 태어났다. 잘록한 목선 타고 흘러내린 허리는 어린아이 두어 명을 거뜬히 품을 정도로 넉넉하고 진한 흑갈색 겉옷엔 빗금 몇 개 그어 멋을 부렸다. 풍만한 맵시는 미스 항아리 대회라도 나섰더라면 등위 안에 당당히 들었을 것이다. 닥치는 대로 녹여버릴 듯 맹렬히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살이 타들어가는 뜨거움을 견딜 때는 어느 종갓집 볕 드는 마당가라도 놓이려나 기대했다. 구수한 향내 깊은 간장을 우려내 가문의 장맛을 늠름하게 지켜내겠노라 호기로움도 가졌고, 윤기 흐르는 햅쌀 담아 굳건히 좀벌레 막아내어 세상사에 지친 사람들에게 밥심을 세워주어야지 다짐도 했다. 동기간인 백자는 거실 문갑에서 거만하게 우쭐거리고, 앙증맞은 꿀단지는 조신하게 벽장에 머물고, 덩치 큰 장독이 고방 안쪽에서 어른 노릇할 때도 하릴없는 처지에 간질거리는 풀벌레 벗 삼아 기다림의 시간도 길었다.

    부풀었던 단꿈은 별안간 흙속에 묻혔다. 어디까지가 위인지 얼마만큼 깊은지 내비칠 수도 없이 땅과 하나가 되었다. 용암을 쏟아낸 분화구 마냥 두툼한 입만 허공을 향해 벙그레 벌려둔 채 둥근 가장자리엔 푸르스름한 분칠이 덕지덕지 엉켰다. 집안에 있는 줄도 모르고 무심한 발자국들만 지나친다. 땅으로 들어온 지 어언 십여 년이다. 흘러간 세월이 가뭇하다.

    천연염색 장인을 만나 쪽항아리라는 이름 하나 얻었다. 간장항아리는 햇살 좋은 봄날에 겨우내 살려낸 메주 띄워 한 해를 시작하고, 소금항아리는 사시사철 입맛 돋울 바다 알갱이를 받아들인다. 오지항아리는 콩이며 들깨를 갈무리하고 김칫독은 차곡차곡 버무려 둔 배추와 무를 익혀 밥상 차림을 돕는다. 장방에 늘어선 항아리들이 떨어지는 빗줄기 장단삼고 정화수 아래 기도 올릴 때도 마당가 한켠에 따로 자리했다. 먹을거리를 담아내지 못하니 그들과의 비교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그저 몽글몽글 쪽꽃 피우는 일에만 열중한다.

    그의 쪽염료인 니람을 품는다. 식성은 좀 유별나서 조개껍질 빻아 콩대 태운 잿가루를 섞어 배를 채운다. 쪽대 우려낸 물을 마시면 혀끝이 알알해온다. 소화시키기에 제격인 걸쭉한 막걸리는 그가 건네는 합환주다. 고무래질까지 해주면 쿰쿰한 트림내가 사방으로 진동한다. 새파래진 쪽물 위로 햇볕에 그을린 그의 얼굴이 안겨온다.

    그가 쪽풀에서 잎사귀만 뜯어 문지른다. 팔의 솟은 힘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지만 쉬지 않고 짓이긴다. 땀방울이 비처럼 내리는데도 멈추질 않는다. 초록물이 데워지기 전에 잽싸게 천을 물들여야 투명한 빛깔을 얻는다. 생쪽물에서 건져 올린 옥빛이 싱싱하다. 등줄기 타고 기어오르던 더위를 끄집어 내리는 옥색이 갓 잡은 생선회 맛이라면 오랫동안 우려낸 쪽빛은 맛들이면 또다시 찾게 되는 잘 삭힌 홍어 맛이다. 쪽은 간들바람 재료 삼아 뙤약볕 소를 넣어 버무린 후 긴 시간 공들여 발효시켜야 남색 쪽발을 세운다. 깊이 품은 색을 드러내면 처음엔 쑥빛이 보였다가 씨앗 뿌리 내린 땅빛도 잠시 스치고 새순 틔운 봄날 연두도 설핏 내비친다. 어둡게 드리우던 먹구름은 날름 감추고 이슬에 반짝이던 청록 아침을 어렴풋이 그려내더니 마침내 높은 하늘이었다가 깊은 바다색을 펼쳐낸다.

    복닥거리기만 하면 썩는다. 그가 천을 물들일 때 말고는 찾는 이조차 없어도 흙속을 헤집는 지렁이집 지붕도 되어주고 어쩌다 날아드는 잠자리에게 바깥소식 들으며 세월을 견딘다. 새끼 품은 어미처럼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자는 강해야 한다. 찬 겨울에는 어떻게든 한 줌의 온기라도 끌어당겨 얼지 않도록 둘러싸고, 장맛비 거센 물길 따라 흐르려는 흙무지는 힘껏 움켜쥐어 버틴다. 죽은 색을 품었을 때는 그와 함께 보듬고 울었다. 실타래 풀듯 맺혔다 풀렸다 가는 길이다. 편리한 플라스틱 고무통은 결코 품어내지 못하는 색이다. 도도한 빛깔이 까탈이라도 부리면 녹색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홀로의 시간을 가라앉혀야 물색이 익는다.

    떠나보내는 것이 숙명이다. 물들지 않은 백색 천을 애지중지 쪽빛으로 단장시킨다. 넘실대던 가슴속이 거북등처럼 굳어간다 한들 다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다. 행여 물빛이 탁해 순순한 결에 얼룩이라도 질까봐 노심초사다. 세상과 맞닥뜨려 제 빛깔을 내지 못할 때는 그가 몇 번이고 제 자리에서 지켜준다. 돌아보지 않는다 해도 누군가의 옷자락이 되어 근근이 살아가길 바랄 뿐이다.

    잊혔던 쪽빛을 되살려내자 찾는 이들이 늘었다. 배우겠다며 들어서고 쪽물 들이기 체험을 위해 줄을 선다. 종종대는 그의 발걸음 따라 쪽물이 너울거린다. 그의 심장이 뛸수록 항아리 안도 덩달아 뜨거워진다. 흙에 묻힌 형편이라 드러나지 않아도 그림자인 삶도 괜찮다. 보이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알아주는 이 없어도 세상의 모퉁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내는 이들이 더 많다는 걸 안다. 쪽물을 껴안아 보살피는 일이면 족하다. 주어진 몫의 생을 누린다.

    그가 돌아온다. 손에 쪽빛천이 들렸다. 두 다리로 감싸 안더니 천천히 어루만진다. 왼손이 부드럽게 내려가고 오른손이 후렴처럼 따른다. 가다듬는 손길에 마음이 씻기고 머릿속이 맑아진다. 출렁거리는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않는다. 리듬을 타며 온몸을 내맡긴다. 그늘 드리우던 차양 끝은 여전히 살랑거리고 풀잎 부딪치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파랑에 초록이 더해진다. 그의 등 근육이 성난 짐승처럼 우르릉거린다. 마른하늘에 천둥이 번뜩이고 항아리 안으로 걷잡을 수 없는 폭풍우가 몰아친다. 희열의 파열음을 뱉으며 드디어 쪽빛 문이 열린다. 그의 손톱에도 먹구름 같은 검은 물이 든다. 건너편 장독대 항아리들은 한여름 열기를 모르는 척 돌아앉았다.

    다시 하늘이 푸르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빨랫줄에 무명천이 걸리며 빈 하늘이 메워진다. 한들거리는 바지랑대를 쳐다보다 아득한 잠에 빠져든다. 한낮의 긴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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