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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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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천년을 건너뛴 참 인연- 손진곤(전 밀양시의회 의장)

  • 기사입력 : 2022-01-05 20: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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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득히 먼 신라시대 때 축조했다는 위양지(백성을 위해 쌓은 저수지) 못을 찾았다. 시집간 지 석 달밖에 안 된 딸내미가 신축년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기어이 아빠 엄마를 보고 싶다며 코로나19 숲을 뚫고 서울에서 강서방(천년을 돌고 돌아 만난 인연)과 함께 밀양으로 또 내려왔다. 거리두기와 모임 자제로 아침나절 딱히 갈 곳도 마땅찮아 가족과 함께 데이트도 할 겸 밀양 팔경 중의 하나인 위양지(位良池) 못을 산책키로 했다.

    이른 시간인지라 우리 가족 말고는 서너 사람밖에 보이지 않아 위양지를 공짜로 전세 내어 한껏 여유를 부려 보았다. 딸내미가 시키는 대로 여보야 손 딱 잡고 둘레길을 수년 만에(?) 5분도 채 안되게 걸었는데 온몸이 따뜻해지며 머릿속이 맑아지는 건 갑자기 무슨 조화일까? 맨날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은 뒤로 한 채 바깥일에는 자다가도 뛰쳐나가는 말 그대로 바깥양반으로만 살아온 남의 편을 그래도 믿고 40년을 묵묵히 함께해 온 착하디착한 아내의 손이라서 그런 걸까?

    뒤에서 폰으로 동영상과 화보 사진을 좀 찍을 테니 아빠가 엄마 곁으로 더 가까이 붙으라는 딸내미의 명령대로 팔짱을 끼고 걷다가 문득 못 속에 비친 그림자를 보았다. 천년을 훌쩍 건너뛴 참 인연을 데리고 와서 인 걸까? 갑옷을 두른 소나무, 어깨가 떡 벌어진 이팝나무, 팽나무, 덩치 큰 느티나무, 하늘거리는 수양버들까지 수백년을 물구나무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왜 이제야 왔냐고,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고 우리 가족을 발박수로 열렬히 환영하는 게 아닌가.

    그래, 곁에 있으면 귀하고 고마운 줄 잘 모른단다. 고요한 수면 위로 비치는 또 하나의 가족. 그렇구나, 우린 본래부터 둘이 아닌 하나였구나. 위양지를 반 접어도 보고 쫙 펼쳐도 보니 희한하게도 그 안에 수많은 인연과 기나긴 세월이 들어 있었다. 날마다 놀러 오는 화악산과 해님, 달님이 있고 고려와 조선도 있지만 새해엔 서울 사람, 미국 사람, 아프리카 친구도 못 안에 들어왔다 가면 좋겠다. 위양지야! 참 인연을 알게 해줘서 너무 고맙다. 이놈의 마스크 때문에 더 이상 말 안 해도 알겠제.

    손진곤(전 밀양시의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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