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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1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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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착한 사마리아인’은 어디로 갔나- 이재달(MBC경남 국장)

  • 기사입력 : 2022-01-19 20: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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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채 50일도 남지 않았다. 선거 열기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후보들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지고 있다. 저마다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며 거의 날마다 온갖 장밋빛 공약을 쏟아낸다. 그러나 많은 대선 공약이 한낱 선거를 위한 수사(rhetoric)에 불과했음을 지금껏 우리는 봐 왔다.

    결국 아름다운 세상이란 대통령 될 사람의 세 치 혀끝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자발적 도덕성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평소 선행을 아끼지 않아 ‘진주의 슈바이처’로 불리던 의사 이영곤씨는 지난해 추석 연휴에 성묘를 마치고 남해고속도로로 귀가하던 도중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그는 차량을 갓길에 정차한 뒤 내려서 부상자를 도우려다 빗길에 미끄러져 오던 뒤차에 치여 숨졌다. 또 한 사람, 일본에서 공부하던 고 이수현씨는 지난 2001년 도쿄의 신오쿠보역 승차장에서 선로에 떨어지는 취객을 보고 추락자를 구하러 곧장 선로에 뛰어들었다가 전철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일본인들은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도 고인을 추모하고, 그의 이름을 딴 장학회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고인들을 흔히 ‘착한 사마리아인’이라고 부른다. 옛날 한 유대인이 길을 가다가 강도를 만나 몸에 지닌 것을 모두 빼앗기고 죽을 지경이 되도록 두들겨 맞았다. 이를 본 유대인 제사장은 모른 척하고 지나갔지만, 당시 유대인과 적대적 관계에 있던 한 사마리아인이 그 유대인을 정성껏 치료하고 보살폈다. 여기에서 유래된 착한 사마리아인은 인간의 도덕적 의무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그런데 그 많던 착한 사마리아인이 요즘에는 어디로 갔을까? 백주에 도심지에서 ‘묻지 마 폭행’을 당해도, 술 취한 행인에게 낭패를 보아도, 공권력이 위협을 받아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 위험한 도로에서 발생한 사고를 보고도 함께 처리하는 이가 드물다. 이러한 이유는 사람들의 사고가 공동체적 사고에서 파편적 사고로 변해서 그렇다. 공동체적 사고는 너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고, 너의 어려움이 나의 어려움이라는 마인드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어느 누구든 너의 문제, 너의 어려움에 자신의 일처럼 기꺼이 나선다. 반면에 파편적 사고는 모두가 벽에 갇힌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일뿐이다. 너에게 발생한 어려움과 문제는 너의 문제지, 굳이 내가 희생을 무릅쓰고 나설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앞으로 이런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또한 1인 가구가 늘어나고 재택근무가 확대되면 사람을 만나지 않고도 필요와 욕구를 해결하게 된다. 이러한 개인의 탈사회화 현상이 가속화됨으로써 착한 사마리아인이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더욱 요원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혼자 힘만으로 모면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중대한 위기 상황에 부딪힐 경우가 더러 있다. 이때는 현장에 함께 있는 이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만약에 같이 있으면서도 구조의 손길을 내밀지 않은 이가 있다면 그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Good Samaritan Law)을 제정해서 구조 거부 행위를 처벌하느냐 하는 문제다. 실제로 프랑스와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는 제삼자의 구조를 거부한 행위를 처벌한다. 이는 도덕적 의무를 법적 책임을 지워 강제할 수 있느냐 하는 점과 직결되는데, 우리나라는 도덕의 영역을 법제화해서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 법 제정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가 이기적이고 타산적으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구성원을 착한 사마리아인으로 유도할 필요성이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는 관련법의 법제화 여부를 떠나서 남의 불행과 위험을 팔짱만 낀 채 방관하지 말고 자신의 일처럼 적극 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이 많았으면 한다. 공동체적 사고로 따뜻함을 나누어서 온기가 강물처럼 흐르는 한 해가 되기를 새해 초 아침에 기원한다.

    이재달(MBC경남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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