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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28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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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2022 현장] 섬마을 건강지킴이 ‘경남511호’

‘섬주민 주치의’ 오늘도 행복 싣고 출항
통영 사량도 찾은 경남 유일 병원선
마을에 정박하자 주민들 모여들어

  • 기사입력 : 2022-01-23 20:5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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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삐이이~’ “읍포마을 주민 여러분, 경상남도 병원선에서 안내방송 드리겠습니다. 지금 마을 앞 해상 병원선에서 진료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시거나 건강 상담을 받을 분이 계시면 병원선으로 오시어 진료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21일 오전 9시 40분, 통영시 사량면 읍덕리 읍포마을에 병원선 경남511호 이관영 선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날 취재진은 통영시 도천동 관공선 부두에서 경남511호에 올랐다. 경남511호는 9시 통영항을 출발해 40여분 후 사량도 하도 읍포마을에 도착했다.

    사량도 사금마을 경로당에서 김지영 간호사가 주민에게 약봉지에 담긴 약들을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사량도 사금마을 경로당에서 김지영 간호사가 주민에게 약봉지에 담긴 약들을 설명하고 있다./성승건 기자/

    ◇한 달 49개 외딴 섬마을 순회진료= 160t급 규모의 경남511호는 경남 유일의 병원선이다. 2003년 건조돼 20년 가까이 도내 섬마을을 돌며 섬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고 있다. 배 안에는 내과, 치과, 한방 진료실을 갖췄고 크기는 작지만 환자대기실과 약국도 자리를 잡고 있어 건강상담과 약 처방, 주사 처방 등 간단한 진료가 가능하다. 40여 개 섬 49곳의 마을을 한 달에 한 번 꼴로 찾아 진료한다. 지난해에만 총 1만8888명의 섬 주민들을 진료했다.

    병원선 경남511호에는 의료진과 선박팀 등 12명이 탑승한다.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진으로 공중보건의 2명(내과·한방과)과 간호인력 2명, 배의 운항을 책임지는 선박운영팀 7명, 병원선 전체를 총괄하는 행정인력 1명이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15명이 병원선 경남511호를 운영했으나 보건의 2명과 간호사 1명이 역학조사에 투입되면서 의료진이 줄었다. 이 선장의 안내방송이 흐르는 동안 밖에서는 병원선 경남511호를 읍포마을 선착장의 정박용 나무 뗏목에 고정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이 작업에는 경남511호 선박운영팀 전원이 투입됐다.

    “160t 크기의 병원선을 고정하기엔 섬마을 선착장의 작은 뗏목이 부실한 경우가 많아요. 병원선에서 진료할 때는 배를 튼튼하게 고정하는데 신경을 많이 씁니다. 느슨하게 정박했다가 배가 출렁거려 어르신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큰일이거든요.”

    정박을 위해 병원선과 뗏목 사이를 뛰어다니며 로프를 묶던 옥윤복 항해사의 말이다.

    내과·치과 등 갖춘 좁은 배 안 ‘북적’
    건강상담부터 약 처방까지 원스톱

    편의점 도시락으로 점심 해결 후
    보조선 타고 집집마다 방문진료도

    의료진·선박팀 등 12명 ‘원팀’
    도내 섬 40여곳 한 달에 한번 찾아

    보조선을 타고 사량도 은포마을 부두에 내린 의료진들이 약이 가득 든 캐리어를 끌고 마을로 들어서고 있다./성승건 기자/
    보조선을 타고 사량도 은포마을 부두에 내린 의료진들이 약이 가득 든 캐리어를 끌고 마을로 들어서고 있다./성승건 기자/

    ◇수십 년 바닷일… 진통제 처방이 가장 많아= 시간이 조금 지나자 어르신들이 하나둘 병원선이 정박한 선착장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보행기를 밀거나 지팡이를 짚는 등 걸음이 힘겨워 보이는 어르신이 대부분이다. 어르신들이 병원선으로 오르자 좁은 배 안은 금세 환자들로 붐볐다. “지난달 드렸던 혈압약은 잘 챙겨 드셨어요?”, “속 불편하신 것은 괜찮아지셨나요?”

    한 달에 한 번꼴로 방문해서인지 이웃 주민을 대하듯 친숙하게 안부를 주고받는다. 접수하고 진료를 기다리는 과정은 일반 병원과 진료절차가 같다.

    가장 많은 환자가 몰리는 분야는 내과였다. 이현우 공중보건의는 “어르신들이 귀가 잘 안 들리는 경우가 많아 크게 말씀드린다. 증상과 처방에 대해 최대한 쉽게 풀어서 말씀드리고 만성질환 환자들이 많아 안부를 묻듯이 편안하게 대해드리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허리가 아파 병원선을 찾았다는 이덕순씨는 “육지로 병원 나가려면 시간·경제적으로 많이 부담스럽다. 병원선 의사 선생님이 내 상태를 잘 알고 있어서 좋다. 우리처럼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는 진료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병원선이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읍포마을에서만 약 40여명의 주민이 진료를 받았다.

    병원선에서 가장 많이 처방하는 약은 진통제다. 진통제는 수십 년 바닷일과 농사일로 안 아픈 곳 없는 어르신들이 한 달 내도록 달고 사는 약이다. 같은 이유로 파스도 준비한 양이 금방 동이 나곤 한다.

    만성질환자들이 많은 섬의 특성상 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의 약도 병원선 경남511호가 구비해야 할 필수 약품이다. 뒷짐 진 이씨의 손에도 약을 한가득 담은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의료진들이 약이 가득 든 캐리어와 의료 장비들을 메고 보조선으로 옮겨 타고 있다./성승건 기자/
    의료진들이 약이 가득 든 캐리어와 의료 장비들을 메고 보조선으로 옮겨 타고 있다./성승건 기자/

    ◇점심은 각자 준비한 편의점 도시락= 시간은 어느덧 12시를 넘겼다. “우리가 먹는 그대로 같이 먹어도 괜찮겠죠?” 병원선 운영을 총괄하는 유승희 담당이 김밥과 컵라면을 내밀었다. 병원선의 점심은 각자가 준비해 온 도시락과 컵라면으로 해결한다. 대부분 출근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사 온 것들이다. 점심이 너무 부실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외딴 섬에서 제대로 된 식사를 준비할 여유가 없는 데다 간단하고 편하게 해결하는 것이 습관이 됐다는 답이 돌아왔다.

    20여 분의 짧은 점심을 끝낸 뒤 오후 일과는 읍포마을 건너편의 사량도 상도 사금마을에서 시작됐다. 사금마을은 올해부터 처음 방문하기 시작한 마을이다. 경남도는 해마다 섬 주민들의 수와 의료기관까지의 접근성 등을 고려해 방문 마을을 선정, 추가하고 있다. 올해는 2개 마을이 새롭게 추가됐다. 17가구 22명이 전부인 사금마을에는 병원선을 정박하지 않았다. 의료진은 진료를 위해 10명 정원인 보조선을 타고 직접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 경로당에 도착한 의료진은 익숙한 듯 경로당에서 쓰던 밥상을 펴 진료실을 만들고 약이 가득 담긴 대형 캐리어를 열어 약국을 꾸렸다.

    유승희 담당은 “병원선을 정박하는 마을은 몇 안되고 대부분 보조선을 타고 마을로 들어가 진료한다”며 “오늘은 날씨가 좋아 보조선 타고 가기가 편한데 바람이 불거나 비가 와 날씨가 열악하면 정말 위험하다”고 말했다.

    이관영 선장은 “항상 파도 높이와 바람, 기온 등 날씨를 체크한다”며 “바람이 너무 많이 불면 선착장 환경이 좋은 인근 큰 마을에 내려 차를 빌려 타고 약을 전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사량도 은포마을 앞 해상에 정박중인 경남511호./성승건 기자/
    사량도 은포마을 앞 해상에 정박중인 경남511호./성승건 기자/

    ◇병원선 근무 힘들어도 보람 때문에= 이날 경남511호의 진료는 읍포마을과 사금마을 외에도 외지마을과 은포마을까지 돌고서야 마무리됐다. 읍포마을을 제외하면 모두 보조선을 타고 들어갔다. 특히 은포마을은 주민 수가 적은 데다 거동도 못하는 고령의 노인들이 혼자 살고 있는 경우가 많아 집을 일일이 방문해 진료해야만 했다.

    김은년 간호사는 “거동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혼자 지내는 고령의 어르신들의 경우 보호자와 통화해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줄 뿐 병원선의 시스템으로는 사실상 해줄 수 있는 것이 많이 없다”며 “이런 어르신들을 보고 나올 때는 마음이 무거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병원선을 타고 섬마을을 돌며 진료하는 이유는 ‘보람’ 때문이라고 했다. 유승희 병원선 담당은 “주민들 대부분이 배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선착장에 나와 계신다. 그 마음을 알기에 힘들어도 지체할 수가 없다”며 “육지에 근무할 때는 주민들에게 주로 민원을 들었다면 여기서는 항상 ‘고맙다’, ‘수고한다’라는 말을 듣는다”고 말했다.

    시계는 어느덧 오후 4시 30분이 지나 통영항으로 돌아오는 병원선 안. 의료진은 오늘 진료한 환자들의 차트를 정리하고, 병원선 총괄 유승희 담당은 다음 일정을 짰다. 선박운영팀들은 다음 항해를 위해 선박을 점검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이날의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김성호 기자 ks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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