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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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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 산이 무등산인가요?- 한명철(한전산업개발 사외이사)

  • 기사입력 : 2022-02-24 20:4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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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때부터 산을 좋아했던 나에게 산은 든든한 친구와 같다. 시간 날 때마다 산을 오르며 나는 마음을 만지고 삶의 자세를 다듬곤 한다. 얼마 전 광주 방문 때 혼자서 무등산에 올랐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등반이었는데 산을 오르면서 역사와 민주주의의 무게에 숙연함을 느끼며 떠오른 한 사람이 마산 출신의 설훈 의원이었다.

    대학 시절이던 1987년, 나는 경남대 학생들 중 유일하게 평민당에 입당했다.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경상도 사람들에게 빨갱이로 인식될 만큼 지역 감정이 극심했지만 그것은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였고 나는 김대중 대통령의 삶에 깊이 감동했기에 힘들지만 옳은 길을 주저 없이 택했다. 그런 과정에서 1987년 대통령 선거 당시 선거 지원을 위해 마산으로 내려온 설훈 의원을 만났다. 험지에서 만난 설 의원은 천군만마처럼 든든했다. 함께 여러 활동을 하던 중 차를 한 잔 마시면서 설 의원은 무등산에 얽힌 일화를 들려주었다.

    고려대학교 시절,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격렬한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순천교도소로 이감돼 가던 중 차 안에서 호송하던 헌병에게 ‘저기가 무등산인가요?’하고 물어본 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였다. 그 후 출소한 그는 운동권 출신의 아내와 결혼해 신혼 여행지로 망월동 묘지를 택해 투쟁의 현장에서 죽어간 민주 열사들을 생각하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노라 했다. 20대, 꽃다운 시절에 5년 6개월여를 감옥에서 보냈지만 결코 비굴하지 않았던 그는 무등을 바라보면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살겠노라 다짐했고 지금껏 그 다짐을 지키며 살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당선이 예상됐던 고대 총학생회장과 국회의원 출마의 기회를 기꺼이 다른 이를 위해 양보하고 오히려 그들의 당선을 도운 적도 있었다. 대의를 위해 옳은 길이며 마다하지 않았던 것이다. 93년 당시, 일곱 살이던 첫 딸을 교통사고로 잃고 조의금 전액을 월세 살던 형편에도 딸이 다니던 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게다가 교통사고를 낸 젊은이의 앞날을 염려해서 준비해 온 합의금도 받지 않고 탄원서까지 썼으며 광주 민주화 운동 보상금 전액을 광주의 한 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내놓은 일 등은 보통 사람으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급변하는 정치 지형 속에서 대의나 명분은 헌신짝처럼 버리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런 세태 속에서도 묵묵히 제 길을 걷는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 우리 모두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산다. 나는 험난했지만 신념과 바른 가치를 위해 살고 싶었다. 설훈 의원 또한 그런 마음으로 살았으리라. 20대부터 정치의 변방에서 좁은 길을 선택한 지 35년여, 힘든 그 길에 무등산처럼 든든한 멋진 선배 한 사람 얻었으니 뚜벅뚜벅 걸은 나의 길이 외롭지만은 않았다고 여긴다.

    한명철(한전산업개발 사외이사)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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