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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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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봄이 오는 들판을 거닐며-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회장)

  • 기사입력 : 2022-03-02 2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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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제강점기 때 ‘빼앗긴 들에도 봄이 오는가’를 노래했던 이상화 시인이 거닐었음직한, 봄이 오는 3월의 들판을 나도 거닐어 본다.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로 사람 많이 모이는 곳을 일부러 피해 혼자서 걷는 산책길이 들판이다.

    혹독한 겨울 추위에 꿈쩍 않던 들판에도 봄이 오는지 발에 밟히는 흙의 감촉이 부드럽게 전해온다. 아무리 추워도, 아무리 혹독해도 봄은 어김없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일제 치하의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기에 오고야 마는 봄마저 행여 오지나 않을지 빗대었던 이상화 시인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겁다.

    논두렁에는 봄의 전령인 쑥이며 씀바귀며 냉이며 갖추갖추 식물들이 여린 싹을 틔우느라 가쁜 숨소리가 귓전에 쟁쟁거린다. 다투어 고개를 내민 식물은 뽐냄도,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오직 한데 어울림만 일을 뿐이다. 함께 피어나는 새싹을 바라보노라면 새삼, ‘사람이 먼저다’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이 떠오른다. “그렇지, 그래. 사람이 먼저지” 한때는 그 말이 가슴에 와닿기도 했다.

    그런데 누가, 어떤 사람이 먼저였을까?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을 조사하면서 김진욱 공수처장의 공수처가 관용차로 이성윤을 에스코트했었다. 그랬다. 정말 그런 사람들만 먼저였다.

    불현듯 나도 그런 대접을 받고 싶다는 충동이 인다. 그렇게 되려면 푸른 기와집에서 하사한 무슨 큰 감투를 써야 하고 또 짖어라 하면 짖고 물어라 하면 물다가 상대방에게 큰 이빨 자국을 남겨야 훗날 국회의원이라도 한자리를 낚아챌 수 있다.

    나 같은 시골의 3류 작가나 시인에겐 그런 행운(?)을 기대하기란 지나친 사치일 것이다.

    ‘사람이 먼저다’ 란 구호보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정말이지 무언가 가슴 뜨거운 색다른 희망을 가져보았다. 지난 5년은 구호 그대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숱한 일을 많이도 겪었고 그러한 일들로 인해 많은 이들의 가슴에 피멍을 들게 했다.

    서슬 시퍼렇던 문재인 정권도 몇 개월 뒤엔 역사의 장으로 묻힐 것이다. 라틴어로 겸손의 어원은 ‘humos’, 즉 ‘땅’이다. 인간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낮은 자세는 땅에 절하고 땅에 입맞춤하는 것이다. 퇴임을 앞둔 문 대통령은 봄이 오는 들녘으로 나아가 절을 올리고 그 땅에 입을 맞추어 보라 권하고 싶다. 이것은 들녘의 땅바닥에 절을 올려 자신의 정부에서 저지른 숱한 과오를 반성하고 이제 퇴임 후의 여생을 땅의 겸손에서 배우라는 뜻이다.

    평범한 일상인들이 정의와 공정이 무엇인지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없어도 지난 5년 간은 정의와 공정의 사회가 아니라는 데에는 다들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3월이 시작됐다. 고성 들판에는 농부들의 발걸음이 잦아질 것이고 온갖 생명이 움틀 것이다. 3월은 한 해의 농사를 위한 준비 기간이다. 준비를 잘해야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3월은 또한 지하세계 ‘하데스’에 붙잡혀 있던 곡식과 농업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가 돌아오는 달이기도 하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의 미모에 반해 그녀를 납치하여 년 중 8개월인 봄여름 가을은 지상의 어머니 곁에 머물게 하고 나머지 겨울은 지하로 내려가서 하데스 곁에 머물었기 때문이다. 페르세포네가 돌아오는 3월의 들판은 그야말로 데메테르가 대지에 축복을 내려 온갖 곡식과 채소와 과일이 잘 자라게 해 줄 것이다.

    들판을 거닐어 보면 알게 된다.

    들판에는 ‘내로남불’이 있을 수 없고 오늘 이랬다가 내일 저랬다 하는 말 바꾸기나 거짓말, 혹세무민이 없음을.

    들판에는 편 가르기나 몹쓸 놈의 적폐도 없음을.

    들판에는 오직 선하고 순한 농부의 마음씨와 땀과 그리고 수고로움이 있어야만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음을.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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