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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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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국가중요농업유산 ‘창원 감농업’ 이야기- 김선민(창원시농업기술센터 소장)

  • 기사입력 : 2022-03-16 20: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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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농업의 국가대표라고 할 수 있는 국가중요농업유산에 공업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한 창원특례시의 감 농업이 최근에 제 17호로 지정된 것은 어찌보면 황당하면서도 왜 지정이 됐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기에 지금부터 창원의 감 농업 이야기를 풀어 보고자 한다.

    기원전 1세기 유적인 다호리 유적지에서 ‘통나무 관 안에 옻칠한 제기 위에 담긴 감 3개’가 발견됐는데, 창원에서 적어도 2100년 전부터 감이 재배됐으며, 단순히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이용됐음을 알 수 있다.

    900년경 고운 최치원 선생이 그를 따르는 백성들을 위해 월영대에 감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는 조선 중기 미수 허목 선생(남인의 영수)이 창원을 유람하며 쓴 1642년 기행문에도 고운이 심은 감나무를 보았다고 기록돼 있는 등 1900년대 초까지 월영대를 알리는 각종 사진과 그림에도 고운의 감나무를 볼 수 있으나 6·25 때 소실됐다고 한다.

    1481년 동국여지승람,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 1765년 여지도서, 1866년 대동지지 등 대표 지리서에서도 창원의 토산품이 감이고, 창원은 감의 주산지라는 기록이 있는 등 창원은 우리나라 감 농업이 시작된 곳이고, 수백 년 전부터 감의 종주도시였다.

    그런데 역사 속의 감은 떫은 감일 것이고, 현재의 창원의 감농업은 단감농업인데 왜 변했을까 의문이 드는 점이 있다.

    떫은감과 단감은 재배방법은 거의 비슷하나 생육을 위한 적정 기온이 다른데, 단감은 떫은감보다 4℃ 정도 따뜻한 곳에 재배되며, 기후 온난화로 일본과 경상도 일대가 따뜻해지면서 1900년대 초반부터는 단맛을 내는 감, 즉 단감의 가지가 전해져 접붙여지며 재배되기 시작했으며, 현재 창원의 기온은 단감 생육에 최적의 기온으로 지역을 넘어 국내 대표 농업으로 자리매김했다.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서의 공식명은 ‘창원 독뫼 감 농업’으로 독뫼는 똥뫼라고도 하는데, 산지, 즉 홀로 독(獨)자+뫼(山)산자가 붙여져 지어졌거나 주변 강 등의 범람으로 물 위로 드러나 우뚝 솟은 지형을 광범위하게 지칭하는데, 창원 동읍, 북면, 대산면 일대는 과거 얕은 바다였고, 1960년대 주남저수지 제방 정리가 완료되기 전까지는 광범위한 습지대인 동시에, 낙동강의 잦은 범람으로 침수가 빈번해, 부득이하게 산지 경사면에 감을 키우며 억척스럽고 고된 농업이 이어왔음을 이름에서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창원의 감 농업은 기후위기에 포기하고 사라진 농업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단감농업으로 발전시켜 세계 1위 농업, 세계 1위 단감 농업 도시로 성장시켰기에 그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제상에 감을 올리는 이유를 설명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감을 먹고 그 감의 씨를 심으면, 감이 열리지 않는 고욤나무가 나오는데, 반드시 이 고욤나무에 다른 맛있는 감나무의 가지를 접붙여야만 제대로 된 감나무로 키워진다. 이와 같이 선조들은 후손들을 잘 가르쳐야 하며, 후손들이 배울 때는 생가지를 째서 접을 붙일 때처럼 아픔이 따르나 참고 견디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 감을 올린다.

    창원특례시는 2022년 1월 청년농업특별시를 선포했다. 귀농을 희망하는 청년들이 창원의 농업 현장에서 노력하면, 꼭 성공한 농업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확실히 돕고, 지원하는 약속의 땅 창원이 되길 공무원의 한 사람으로서 노력할 것이며, 간절히 바라본다.

    김선민(창원시농업기술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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