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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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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물에 대한 공동의 질서, 물 윤리가 필요하다- 이상호(부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2-03-22 19:5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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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 전 아라비아 사막의 한 도시가 중국의 비단, 인도의 향신료를 거래하는 대상(大商)들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다. 연간 강수량이 150㎜도 되지 않는 열악한 기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7대 불가사의로 꼽히는 위대한 도시를 만들었다. 이 곳이 요르단의 붉은 보석 ‘페트라’이다. 페트라를 건설한 나바테아 사람들은 물 관리의 천재들이었다. 도시 곳곳에 소형 저수조를 만들고 도랑이나 수로를 통해 물이 멈추지 않고 도시를 순환하도록 했다. 이쯤 되면 페트라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물 관리 기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기후에 적응한 성공담은 비단 페트라뿐만 아니다. 인도 타르사막에 사는 비시노이족, 케냐 투르카나족 등은 비록 적지만 효율적으로 물을 나눠 쓰는 기술로 그들만의 문명을 꽃피웠다. 이들은 대규모 댐 건설 없이도 물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물 부족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번 봄 가뭄이 심상치 않다. 과거 우리나라는 물 부족에 대해 공급 확대 정책을 펼쳐 전국에 대규모의 댐들을 건설했다. 하지만 동시에 환경 파괴와 댐 피해지역과 수혜지역이라는 지역 간 갈등을 양산하기도 했다. 이는 과거 물 관리가 경제발전을 위해 맹목적으로 시행되다 보니 합리적 물 배분, 물 인권 향상, 친환경 개발과 같은 사회적, 환경적 가치를 등한시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물 관리에 있어서도 지속 가능한 발전 목표나 ESG(환경, 사회, 구조)경영이 도입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우리가 물을 지혜롭게 관리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이나 정책변경을 넘어 물에 대한 인식과 태도가 변화돼야 한다. 물을 아끼는 마음, 상생을 위한 이타심, 합리적 기준에 의한 양보와 희생 등 물에 대한 공동 질서인 물 윤리가 정립돼야 한다. 미디어는 연일 기후변화로 인한 물 위기와 물 전쟁, 물 안보 등 자극적인 용어로 물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실제 만족할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다. 물은 한계효용의 체감이 뚜렷한 재화로서 필요량보다 적게 가질 때 느끼는 고통은 크지만, 많이 가졌다고 해서 더 행복하지는 않다. 필요한 만큼 물을 쓸 수 있도록 서로 배려하는 덕목이 물 윤리의 시작이다. 세계 물 정책 프로젝트의 의장을 지낸 샌드라 포스텔은 자신의 저서 〈마지막 오아시스〉에서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물에 대해 양보와 협조 등 합리적인 희생을 할 수 있는 물 윤리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물에 대한 탐욕은 물의 순환과 회복을 훼손해 결국에는 모두 공멸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올해 세계 물의 날의 화두는 ‘모두를 위한 통합 물관리’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물 인심은 곧 나의 행복이라는 역설적인 물 윤리가 하루빨리 정착되길 기대해 본다.

    이상호(부경대학교 토목공학과 교수)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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