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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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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요즘 글씨 연습은 안 시킵니까- 민창홍(시인·성지여고 교장)

  • 기사입력 : 2022-03-29 20:3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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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새로 발간된 시집에 서명하여 발송했다. 대체로 문자나 전화로 감사의 인사를 전해왔다. 그런데 팔순이 넘은 대 선배님이 자필로 편지를 보내주시어 한동안 감동에 젖어 있었다. 더욱 놀란 것은 내용뿐만 아니라 그 연세에도 글씨가 또박또박하고 아름다웠다. 봉투와 편지지의 글씨가 최근 몇 년 동안 받아본 것 중 최고의 명필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연필에 침을 바르며 글씨를 썼고, 중학교에 입학해서는 펜에 잉크를 찍어 글씨를 썼다. 종이가 찢어지지 않게 정성을 다해 썼던 기억이 난다. 그 무렵, 볼펜이 처음 나왔는데 편리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볼펜은 글씨가 바르게 되지 않는다며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선생님이 계셨다. 또 글씨는 신언서판(身言書判)의 하나라고 강조하며 연습까지 시켰다.

    요즘은 필기도구로 글씨 쓸 일이 예전만큼 많지는 않다. 컴퓨터 자판이나 핸드폰 문자로 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관공서의 서류 작성이나 학교에서 시험을 칠 때는 아직까지는 꼭 자필로 작성해야 한다.

    어느 교수님이 사석에서 국어 선생이라고 소개하니 대뜸 “요즘 글씨 쓰기 연습은 안 시킵니까?”하고 물어왔다. 연유를 들어보니, 대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1학기 첫시험에서 논술형 답안을 작성하는 문제를 내면, 대체로 글씨를 써 내려가다가 손이 아프다고 손을 주무르고 털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작성된 글은 삐뚤빼뚤하고 정확하지 않아 읽을 수가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국어 시간에 글쓰기는 가르칠지언정 글씨 쓰기까지 가르칠 여유는 없다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려주었지만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있다.

    간혹 형식보다는 내용이라며 글씨 쓰는 것을 등한시하는 경우가 있는 듯하다. 물론 내용이 중요하다. 그러나 글씨는 그 사람의 품격이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생활에서 손으로 직접 쓴 것이라면 내용보다도 글씨체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글자 한 자 한 자 후배를 생각하며 써 주신 대선배의 축하와 감사의 편지를 다시금 읽어 본다.

    민창홍(시인·성지여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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