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문화의 향기] (24) 김해 종이상점
‘잊다’ 잊혀진 김해 역사… ‘잇다’ 종이 감성으로 기록… ‘있다’ 삶의 한 페이지로
- 기사입력 : 2022-03-29 21: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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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달하고, 그 속에서 새로움과 편리함을 접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수십 수백장의 기록을 남기고, 전송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문자메시지나 SNS 등으로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연필과 펜’을 들고 기록을 남기는 행위를 지속한다. 필기구를 들어 다이어리나 일기장에 하루 일상을 고이 끄적이고, 편지지를 꺼내 소중한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써내려간다.
그 매개는 바로 ‘종이’다. 2000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발명됐을 종이. 이 종이와 김해 봉황동 봉황대길(봉리단길)이 만났다. 봉리단길은 최근 몇년간 특색 있는 카페와 음식점, 소품샵 등이 들어서면서 청년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또 인근에는 봉황대공원, 봉황동 유적지 등이 자리해 김해의 역사문화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런 봉황동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종이’에 입혀 숨을 불어넣고 있는 공간이 생겼다. 바로 ‘WIYP 종이상점’이다.
종이상점에 김해 봉황동을 담은 팝업북. 종이 등이 전시돼 있다.부산 등 타지역에서 꾸준히 로컬여행을 만들어왔던 박영호 대표는 여행자가 로컬을 편하면서도 좀 더 깊게 즐길 수 있는 로컬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찰나, 봉황동의 매력을 발견하고 지난해 말 이곳에 종이상점 문을 열었다. ‘종이를 판매한다?’ 다소 실험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이 공간을 보고 ‘박 대표는 디자인을 전공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예상을 빗나갔다.
“저는 공대 출신이에요.(하하) 예전부터 로컬 활성화라던지 과소화 마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이번에 공간을 열게 된 봉황동, 그리고 김해는 흥미로운 역사를 많이 품고 있어요. 봉황대에 얽힌 황세와 여의 이야기를 비롯해 구지봉의 구지가, 금관갸야의 건국 이야기 등 말이죠. 이런 스토리들을 ‘종이’에 풀어가고 싶었어요. 옛것과 더불어 현재 봉황동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종이에 함께 기록하고 담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여행자들은 이 동네가 어떤 이야기를 가진 곳인지 잘 모르잖아요. 저는 종이에 담긴 저희의 기록으로 하여금 여행자들이 봉황동을 오롯이 느끼고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부산 등서 로컬여행 만든 박영호 대표
김해 매력 발견한 후 지난해 문 열어
봉황동이 품은 풍경·문화·이야기 등
종이에 접목시켜 여행자들에 소개돌·대나무 종이 등 특이한 종이 판매
작가들과 봉황동 주제 작품 만들기도
“올해 마을 담은 ‘동네 매거진’ 만들어
봉황동의 역사 차곡차곡 쌓고 싶어”
김해 봉황동에 자리하고 있는 종이상점./종이상점/
종이상점에 다양한 종이들이 전시돼 있다.그런 만큼 종이상점이라는 이름 앞에 붙여진 ‘WIYP’는 종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숨어 있다.
“‘WIYP’는 ‘What is your page?’라는 문장을 줄인 거예요. 말 그대로 당신의 페이지는 무엇인가요. 이렇게 질문을 던지죠. 그 속에는 ‘흘러가는 시간 중 하루를 이 종이에 직접 기록하거나 표현해봐’라는 것과 ‘이 동네가 하나의 페이지가 될 수 있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종이상점 1층에서 종이를 판매하고 있다.종이상점 1층은 매장 형태로 운영된다. 이곳에서는 종이를 기반으로 크게 세 가지 라인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첫 번째는 ‘베이직 페이퍼’ 라인이다. 물에 안 젖는 종이, 돌로 만든 종이, 친환경 대나무 종이, 꽃 질감이 나는 종이 등 특이한 종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봉황동 곳곳의 감성을 담은 종이들을 선별해 큐레이션 한다.
종이상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굿즈들. /종이상점/두 번째는 ‘아트워크 페이퍼’ 라인이다. 봉황동을 주제로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해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에 어울리는 종이를 선택해 판매한다.
첫 시작으로 조용희 작가가 그려낸 봉황동을 따뜻한 질감의 종이 위에 얹어 엽서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현재 탐조가, 웹툰작가, 소설가, 음악가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봉황동이 가진 매력을 한 장 소설, 팝업북, 음악 포스터 등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이를 종이 위에 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 번째는 펜과 지우개 등 종이와 어울리는 굿즈 라인이다.
탐조가, 소설가, 음악가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작업 중인 작품들. 모두 봉황동이 주제다.“요즘 크리에이터분들이 온라인에서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사실상 수익은 외주 작업을 통해야 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크리에이터분들과 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이를 굿즈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게 됐죠. 작가님과 프로젝트성으로 함께 컨셉을 잡아서 팝업북이나 한 장짜리 소설을 만든다던지, 또 그런 형식에 어울리는 종이를 선택해 작품이 조금 더 돋보일 수 있도록 말이죠. ”
2층은 종이 카페 공간이다.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한 작품 전시나 종이에 스토리텔링을 입힌 전시 등 시즌별로 다양한 테마가 구성된다.
1층에서 종이를 구매하면 이곳에 입장이 가능하다. 박 대표는 앞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좋은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소셜모임도 구상 중이다.
조용희 작가가 봉황동을 그린 엽서.
종이상점 2층 공간.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종이상점이 봉황동에 가장 잘 어울리는 브랜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는 봉황동에 있으면서 동네와 융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가 올해 준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뭐냐면 ‘동네 매거진’을 만드는 거예요.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무료로 매거진을 가져가고, 훗날 이게 모이면 하나의 책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매거진 속 내용은 동네의 역사적 이야기나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그게 바로 봉황동의 기록이고 역사가 되잖아요. 또 저희가 종이를 다루고 있다 보니 동네에 종이 포스터들을 붙여보는 것 어떨까 생각해요. 이 마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과 그림 혹은 사진들을 담아서요.”
글·사진= 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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