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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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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문화의 향기] (24) 김해 종이상점

‘잊다’ 잊혀진 김해 역사… ‘잇다’ 종이 감성으로 기록… ‘있다’ 삶의 한 페이지로

  • 기사입력 : 2022-03-29 21: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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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루가 다르게 기술이 발달하고, 그 속에서 새로움과 편리함을 접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언제 어디서든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수십 수백장의 기록을 남기고, 전송 버튼 하나만 누르면 문자메시지나 SNS 등으로 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연필과 펜’을 들고 기록을 남기는 행위를 지속한다. 필기구를 들어 다이어리나 일기장에 하루 일상을 고이 끄적이고, 편지지를 꺼내 소중한 누군가에게 손편지를 써내려간다.

    그 매개는 바로 ‘종이’다. 2000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전에 발명됐을 종이. 이 종이와 김해 봉황동 봉황대길(봉리단길)이 만났다. 봉리단길은 최근 몇년간 특색 있는 카페와 음식점, 소품샵 등이 들어서면서 청년들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또 인근에는 봉황대공원, 봉황동 유적지 등이 자리해 김해의 역사문화도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이런 봉황동의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종이’에 입혀 숨을 불어넣고 있는 공간이 생겼다. 바로 ‘WIYP 종이상점’이다.

    종이상점에 김해 봉황동을 담은 팝업북. 종이 등이 전시돼 있다.
    종이상점에 김해 봉황동을 담은 팝업북. 종이 등이 전시돼 있다.

    부산 등 타지역에서 꾸준히 로컬여행을 만들어왔던 박영호 대표는 여행자가 로컬을 편하면서도 좀 더 깊게 즐길 수 있는 로컬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찰나, 봉황동의 매력을 발견하고 지난해 말 이곳에 종이상점 문을 열었다. ‘종이를 판매한다?’ 다소 실험적이면서도 감각적인 이 공간을 보고 ‘박 대표는 디자인을 전공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예상을 빗나갔다.

    “저는 공대 출신이에요.(하하) 예전부터 로컬 활성화라던지 과소화 마을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이번에 공간을 열게 된 봉황동, 그리고 김해는 흥미로운 역사를 많이 품고 있어요. 봉황대에 얽힌 황세와 여의 이야기를 비롯해 구지봉의 구지가, 금관갸야의 건국 이야기 등 말이죠. 이런 스토리들을 ‘종이’에 풀어가고 싶었어요. 옛것과 더불어 현재 봉황동이 가지고 있는 감성을 종이에 함께 기록하고 담아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왜냐하면 여행자들은 이 동네가 어떤 이야기를 가진 곳인지 잘 모르잖아요. 저는 종이에 담긴 저희의 기록으로 하여금 여행자들이 봉황동을 오롯이 느끼고 즐기고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죠”

    부산 등서 로컬여행 만든 박영호 대표
    김해 매력 발견한 후 지난해 문 열어
    봉황동이 품은 풍경·문화·이야기 등
    종이에 접목시켜 여행자들에 소개

    돌·대나무 종이 등 특이한 종이 판매
    작가들과 봉황동 주제 작품 만들기도
    “올해 마을 담은 ‘동네 매거진’ 만들어
    봉황동의 역사 차곡차곡 쌓고 싶어”

    김해 봉황동에 자리하고 있는 종이상점./종이상점/
    김해 봉황동에 자리하고 있는 종이상점./종이상점/
    종이상점에 다양한 종이들이 전시돼 있다.
    종이상점에 다양한 종이들이 전시돼 있다.

    그런 만큼 종이상점이라는 이름 앞에 붙여진 ‘WIYP’는 종이와 함께 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숨어 있다.

    “‘WIYP’는 ‘What is your page?’라는 문장을 줄인 거예요. 말 그대로 당신의 페이지는 무엇인가요. 이렇게 질문을 던지죠. 그 속에는 ‘흘러가는 시간 중 하루를 이 종이에 직접 기록하거나 표현해봐’라는 것과 ‘이 동네가 하나의 페이지가 될 수 있다’라는 의미가 담겨있어요”

    종이상점 1층에서 종이를 판매하고 있다.
    종이상점 1층에서 종이를 판매하고 있다.

    종이상점 1층은 매장 형태로 운영된다. 이곳에서는 종이를 기반으로 크게 세 가지 라인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첫 번째는 ‘베이직 페이퍼’ 라인이다. 물에 안 젖는 종이, 돌로 만든 종이, 친환경 대나무 종이, 꽃 질감이 나는 종이 등 특이한 종이들을 만나볼 수 있다. 더불어 봉황동 곳곳의 감성을 담은 종이들을 선별해 큐레이션 한다.

    종이상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굿즈들. /종이상점/
    종이상점에서 판매하고 있는 굿즈들. /종이상점/

    두 번째는 ‘아트워크 페이퍼’ 라인이다. 봉황동을 주제로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해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에 어울리는 종이를 선택해 판매한다.

    첫 시작으로 조용희 작가가 그려낸 봉황동을 따뜻한 질감의 종이 위에 얹어 엽서로 만들었다. 이외에도 현재 탐조가, 웹툰작가, 소설가, 음악가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함께 봉황동이 가진 매력을 한 장 소설, 팝업북, 음악 포스터 등 다양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이를 종이 위에 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세 번째는 펜과 지우개 등 종이와 어울리는 굿즈 라인이다.

    탐조가, 소설가, 음악가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작업 중인 작품들. 모두 봉황동이 주제다.
    탐조가, 소설가, 음악가 등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작업 중인 작품들. 모두 봉황동이 주제다.

    “요즘 크리에이터분들이 온라인에서 활동을 많이 하시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사실상 수익은 외주 작업을 통해야 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희는 수익이 날 수 있도록 크리에이터분들과 협업을 통해 작품을 만들고 이를 굿즈로 만들어보자고 생각하게 됐죠. 작가님과 프로젝트성으로 함께 컨셉을 잡아서 팝업북이나 한 장짜리 소설을 만든다던지, 또 그런 형식에 어울리는 종이를 선택해 작품이 조금 더 돋보일 수 있도록 말이죠. ”

    2층은 종이 카페 공간이다. 크리에이터들과 협업한 작품 전시나 종이에 스토리텔링을 입힌 전시 등 시즌별로 다양한 테마가 구성된다.

    1층에서 종이를 구매하면 이곳에 입장이 가능하다. 박 대표는 앞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좋은 변화를 만들어 갈 수 있는 소셜모임도 구상 중이다.

    조용희 작가가 봉황동을 그린 엽서.
    조용희 작가가 봉황동을 그린 엽서.
    종이상점 2층 공간.
    종이상점 2층 공간.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종이상점이 봉황동에 가장 잘 어울리는 브랜드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저는 봉황동에 있으면서 동네와 융화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가 올해 준비해보고 싶은 프로젝트가 뭐냐면 ‘동네 매거진’을 만드는 거예요. 이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무료로 매거진을 가져가고, 훗날 이게 모이면 하나의 책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매거진 속 내용은 동네의 역사적 이야기나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시는 사장님들의 이야기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그게 바로 봉황동의 기록이고 역사가 되잖아요. 또 저희가 종이를 다루고 있다 보니 동네에 종이 포스터들을 붙여보는 것 어떨까 생각해요. 이 마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글과 그림 혹은 사진들을 담아서요.”

    글·사진= 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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