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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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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덜컹거리는 오후- 김미형

  • 기사입력 : 2022-04-07 08: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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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무실 집기까지 헐값에 넘긴 오후

    허전한 마음으로 퇴로를 찾고 있다

    패잔의 마이너스 통장

    짐칸에 가득 싣고,


    왈츠의 선율 같은 차창 밖 은행잎이

    아내의 얼굴이듯 얼비치며 떨어지고

    방지턱 덜컹거리며

    생의 고비 넘어간다


    고생도 약이 되는 젊음이 무기라지만

    넝마 같은 저 가슴을 그 누가 위로할까

    활황이 기지개 펴는

    계절을 기다린다


    ☞ 코로나 바이러스가 정점을 찍고 있다. 이제는 길고 긴 터널을 빠져나가게 되는 것인가.

    고강도 방역 대책에 순순히 따르던 자영업자들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필자가 영업하고 있는 상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주로 광고판촉 행사용품을 수공으로 제작하여 납품하는 이곳은 팬데믹이 닥친 후, 제품을 제작하다 밀쳐둔 재료와 이미 완성된 상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코로나19 방역 강화로 모든 행사가 줄줄이 취소되어 납품을 하지 못한 탓이다. 사태가 수습되어 행사를 치르게 될 날만 손꼽아 기다려 왔지만, 어김없이 돌아오는 임대료와 인건비에 짓눌린 사업체는 버티다 못해 결국 다 포기하고 쓸쓸히 문을 닫는다.

    “사무실 집기까지 헐값에” 넘기고 “마이너스 통장”만 싣고 집으로 가는 가장의 심정을 어찌 다 가늠할까! “방지턱 덜컹거리며/생의 고비 넘어간다” 는 시인의 말에 절망을 싣고 가는 어느 가장의 마음까지 실린다. 어느 시대에나 있기 마련인 생의 고비 길에 젊음이라도 남아 있다면 고생도 약으로 삼으련만 평생을 좁은 골목에서 손재주 하나로 가족을 먹여 살리던 중년의 가장들은 어깨가 한없이 무거워진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딛고 사는 이 시대 자영업자들의 봄은 아직까지 묘연하다.

    천지를 환하게 밝혀 주는 봄꽃의 향기처럼 ‘활황이 기지개 펴는/ 계절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어른거린다. 아직은 ‘덜컹거리는 오후’지만 이 암울한 시기에 시인만이 줄 수 있는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시조 한편에 간절하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은 오고야 말듯이, 우리 살림살이도 따뜻한 기운이 감겨들 날이 올 것이다.

    이남순(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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