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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냄새 역겨운 혐오 법안-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 회장)

  • 기사입력 : 2022-04-27 20:5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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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업작가랍시고 하루 종일 골방 서재에 들어앉아 글을 쓰거나 읽다 보면 더러는 술 한잔 하고픈 때가 있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려고 할 무렵이다. 저녁밥을 먹어야 할 시간인데 웬 술이냐고 타박할는지 모르나 낮의 밝음이 차차 엷어지고 덩달아 하늘에서 마치 흰색과 검은색을 반반씩 섞어놓은 회색과도 같은 땅거미가 깔릴 즈음이면 목 안이 컬컬해져 더욱 간절해진다.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랄까. 요즈음 지방의 선거철이 다가오니 이곳저곳에서 지인들의 만나자는 요청에 답해 일부러 ‘술 한잔 하고픈’ 그 시간대에 맞춰 집을 나선다. 만나기로 한 약속 장소로 가려면 고성서도 제법 알려진 몇몇 음식점의 뒷골목을 지나가야 한다. 이럴 때면 돼지나 소고기를 굽는 냄새, 생선을 지지고 볶는 냄새, 된장찌개 등속을 끓이는 냄새로 뒷골목은 음식점 냄새의 각축장으로 변한다.

    냄새가 함께 뒤섞여 무슨 냄새인지 모를 듯하나 각자 고유함을 간직한 이들 냄새를 맡아보면 음식점의 상호나 주인의 친절한 음성과 웃음까지 희미하게 떠오른다. 냄새가 그 음식점의 고유함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 냄새는 시장기를 돌게 해 타향인에겐 불현듯 향수(鄕愁)를 불러일으켜 줄 것이다.

    사람한테서도 냄새가 난다고 한다. 고결하고 개결(介潔)한 사람에게서는 책 냄새가 나고 정의롭고 올곧은 사람한테는 참나무나 대나무 냄새가 나며 탐욕스럽거나 욕심 많은 사람은 동물성 기름 냄새가 난단다. 어디 사람 냄새뿐이랴. 꽃을 보지 않고 꽃 냄새만 맡아보아서 이 꽃은 무슨 꽃이며 저 꽃은 언제 피는 꽃인지를 알게 해 준다. 맡기 좋은 냄새가 있는 반면에 맡으면 역겹고 구토가 나고 머리가 띵 하며 어질어질해져 얼른 그 자리를 피하고 싶고 질겁을 하게 되는 냄새도 있다. 이러한 냄새는 지탄의 대상이 되고 그 장소는 혐오시설이라 해 사회적으로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뒷골목을 느릿느릿 걸어가면서 맡는 냄새로 인해 문득 6·25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썼듯 민주당이 국회의원의 머릿수로 총칼 들이대듯 밀어붙였던 ‘검수완박’이란 법안을 떠올리며 식당에서 흘러나온 냄새에 이 법안으로 치환해 본다. 검수완박에는 어떤 냄새가 나는가를.

    검수완박은 국가의 발전이나 공익을 위한 법안이 결코 아니다. 모든 법안은 공정함이 그 생명이다. 사마천의 사기, ‘장석지 풍당 열전’에 보면 ‘공정한 법만이 신뢰를 얻는다’고 했다. 신뢰를 잃으면 나라의 존망이 위태로운 데에도 불구하고 검수완박 법안에는 공정함 대신 자기 편을 보호하고 지켜주려는 음습하고 음험함이 똬리를 틀고 있다. 지은 죄의 죄목까지도 허공에 증발해버리고야 말겠다는 ‘내로남불’과 오만함이 철철 넘쳐흐른다.

    이런 법안일수록 네 편과 내 편의 유불리가 아니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도록 보편타당해야 한다. 법안의 개정은 그 당위성을 여론에 맡겨 사전에 충분히 검토하고 미비점은 무엇인지, 면밀하게 살펴서 국가 백년대계를 설계해야 함에도 국회의원의 머릿수만 믿고 통과시키려 든다면 이는 지금은 아닐지라도 훗날 하늘이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 국민 다수의 여론에 이기는 정치란 없다. 사기의 ‘원앙·조조 열전’에도 ‘세상 사람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면 재앙이 닥친다’고 하지 않던가.

    역겨운 냄새 나는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그 수혜를 보는 자들은 과연 누굴까? 이들이 구역질 나는 짓을 원천적으로 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역겨운 혐오 법안을 통과시키려 혈안이 되지 않았을 터이다.

    이제 며칠 후면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를 물러나야 한다. 사마천도 ‘장승상 열전’에서 ‘정상에 오른 자는 내리막길만이 있을 뿐이다’라고 기술해 놓았다. 내리막길의 문 대통령은 냄새 혐오스러운 검수완박마저 흔쾌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산길의 의의를 깨닫게 될 것이다.

    정해룡(시인·전 통영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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