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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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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해무(海霧)의 조용한 횡포- 옥창묵(사천해양경찰서장)

  • 기사입력 : 2022-05-09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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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초기 왜군은 바다에서 조선 수군의 저항을 받지 않고 수월하게 부산에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었다. 경상우수사 원균은 왜군에게 많은 군사를 잃고서야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도움을 청했고, 조정의 출정 명령을 받은 이순신은 전선(戰船) 24척과 협선(挾船), 포작선(鮑作船) 등 총 85척의 군선을 이끌고 참전해 적선 26척을 격침했다. 이 전투가 임진왜란의 해전 중 첫 승전이었던 옥포해전이다.

    옥포해전으로 이순신과 원균은 큰 전공(戰功)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승전의 공이 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옥포만 입구에 있는 양지암에 깔린 해무(海霧)가 이순신 함대의 진군을 왜군 초병이 눈치채지 못하게 큰 도움을 줬다. 이 정도 연막(煙幕)작전을 성공시켰다면 승전의 공을 나눠 가지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해무는 해수면 위에 발생하는 바다 안개를 말한다. 영어로 ‘sea fog’나 ‘marine layer’라고 부르는데 매년 3~7월 사이에 자주 발생한다. 옥포해전이 1592년 5월 7일의 전투이니 약 500년 전의 바다에서도 매년 이맘때면 해무가 나타나곤 했었나 보다.

    현재 사천해양경찰서에서 관할하는 해역을 기준으로 최근 3년간 3월에서 7월 사이에 해양경찰이 설정한 저시정 횟수는 총 40회이며, 일정한 지역에 발생했다가 사라지는 국지성 저시정을 포함하면 70~80회가 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시기에 발생한 해양사고는 131건으로 전체 해양사고 311건의 42.1%를 차지한다. 그중 77.8%인 102건이 어선에 의한 사고로 분석되는데, 사고 유형을 보면 시정의 영향을 많이 받고 인명사고의 발생 가능성이 높은 ‘충돌’, ‘좌초’ 사고가 30여 건이나 된다.

    이는 연안 조업선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같은 기간 중 발생한 해양 사고의 87%가 오전 6시에서 오후 6시까지 주간 시간대에 발생했다고 하니 훤한 대낮에 이 무슨 황당한 일인가 싶다. 해양경찰은 이러한 해무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로 인한 대형 해양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매년 3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를 ‘농무기’로 설정해 여러 대응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해양경찰의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장 효과적으로 해무에 대응하는 방법은 운항자가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는 것이다.

    151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타이타닉호 침몰사고도 1912년 4월에 발생했다. 여러 가지의 원인이 중첩돼 발생한 사고이지만 그 원인 중 하나가 해무였다는 사실이 농무기의 위험성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이순신의 승전을 도왔던, 어느 순간에는 낭만적으로 보일지도 모르는 해무는 어민들의 삶의 터전이자 소중한 자원의 보고인 바다에서 조용한 횡포를 부리고 있다.

    옥창묵(사천해양경찰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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