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9일 (금)
전체메뉴

[열린포럼] 5월엔 단풍나무에도 꽃이 핀다- 성미경(마산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 기사입력 : 2022-05-23 20:43:26
  •   

  • 진주시 이반성면 집과 멀지 않은 곳에 경남수목원이 있어 자주 찾지는 못해도 마음은 늘 두고 있는 든든한 나의 숲과 정원이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아 주말에는 주차가 힘들 정도이다. 5월 들면서 지인과 우연히 함께하게 된 수목원은 오랜만의 여유와 숲을 그리고 나무를 천천히 오래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일부러 시간을 즐기려는 듯 우린 안내도를 따라 6코스를 천천히 완주하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감사했다. 느릿느릿 걸어도 산을 오르고 내리는 것이 근육 작용이 되는지 뭉근하게 땀이 적셔 왔다. 숲길 곳곳에 손길이 닿은 듯 닿지 않은 듯 자연스럽게 가꾸어진 숲이라 더 편안했고, 세월을 자양분으로 소담스럽게 가꾸어진 나무들에서는 웅장함과 기품이 함께 느껴졌다. 뜰을 오래 바라보며 바람을 느끼는 순간 단풍나무의 단풍잎 아래로 조롱조롱 매달린 무엇인가를 발견했다. 그리고 알게 된 세상의 모든 나무와 잎이 있는 것에는 꽃이 핀다는 사실을, 나는 왜 모르고 살았을까? 나만 모르고 살았을까?

    5월엔 단풍나무에도 꽃이 핀다. 나비, 새, 팔랑개비 같은 모양을 한 고운 빛깔의 단풍나무 꽃은 5월에 무리 져 핀다고 한다. 가을 단풍으로 화려한 잎이 주목받는 나무라서 5월에 피는 꽃의 특이함이 가려진 편인가 보다. 새삼스레 신기하고 기이해서 단풍나무를 볼 때마다 관찰이 된다. 내가 늦게 알았으니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있으리라 싶어 누군가를 만나면 “5월엔 단풍나무에도 꽃이 핀다는 사실을 아세요?”라고 물으며 단풍나무 꽃을 가리키곤 했다. 좌우로 팔랑개비처럼 생긴 꽃받침에 가늘게 뻗은 맨 끝에 아주 작은 꽃이 있다. 색깔도 다양한 꽃 같은 팔랑개비는 씨앗이 맺히는 씨방이다. 단풍나무 씨앗의 씨방이 떨어질 때에는 마치 팔랑개비처럼 빙글빙글 돌면서 천천히 땅에 떨어지고, 바람이 불면 헬리콥터와 같이 공중 비행하는 모습은 단풍나무 씨앗을 멀리 퍼뜨리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아닐까 한다. 5월에는 피는 꽃이 많고 향기로 흩날리는 아카시아꽃에 벌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단풍나무 꽃에도 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리고 9~10월에 열매는 시과(翅果)로 익고, 잎이 붉은색으로 아름답게 물들어 사람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자연은 우리의 무심함 속에서도 겸허한 자연의 법칙을 지키며 순간이란 무척 빠르다는 분명한 인식과 함께 시간의 섭리를 일깨우게 한다. 벚꽃이 피고 지는 장관을 오래 즐기는 동안 영산홍과 철쭉이 봉긋 봉오리를 맺어 무심함으로 미안하게 했고, 붉은색의 꽃들에 정신을 잃은 순간에도 향기로운 아카시아꽃이 무심히 피어 5월이 왔음을 느끼게 했다. 세상의 모든 악재와 현상과는 상관없이 늘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자연의 신비로움 속에는 그들만의 노력과 인생이 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나무는 이듬해 새로운 잎을 피우기 위해 물길을 막아 단풍이 떨어지게 하고 떨어진 단풍잎은 나무의 이불이 돼 겨울을 견디게 한다. 그렇게 나무는 세월을 지켜서 봄이 오면 새로운 물길을 틔우고 신록이 깃든 초록에서 단풍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나무가 돼준다.

    인간도 이런 겸허한 자연의 순리와 같이 겸양의 멋이 도드라져 보이는 단풍나무 꽃말처럼 겸손해지고 욕심을 버려, 원리와 원칙이 지켜지는 더불어 사는 다정한 세상을 만들며 살았으면 좋겠다. 인간은 나무처럼 늘 그 자리를 지키지는 못하더라도 순간을 머물렀던 그곳에서 누군가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빛이 되고, 바람이 되고, 자양분이 돼 또 다른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 본다. 자연이 주는 순간의 무심함이 주는 의미는 영원하지 않아도 자연의 섭리를 따라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고의 삶보다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더 가슴 벅찰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한다. 5월의 단풍나무 꽃은 나의 무심함에도 아랑곳없이 여태 그렇게 피었나 보다.

    성미경(마산대학교 치위생과 교수)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