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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6월 30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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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명인] ④ 경남 무형문화재 제32호 매듭장 배순화

씨줄·날줄 얽히고설킨 매듭, 50년 인생을 엮다

  • 기사입력 : 2022-05-26 08: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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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말에 어떤 일을 결말짓는다는 뜻으로 ‘매듭 짓다’ ‘매듭 풀다’라는 말이 있다. 또 일이 풀리지 않고 막힌 부분을 매듭이라 부른다. 일반적으로 매듭은 노, 실, 끈 따위를 잡아매어 마디를 이룬 것을 말하는데, 아주 옛적에는 결승문자처럼 그 모양과 숫자로 의사를 교환하기도 하고 사물을 기억하는 수단으로 삼기도 했다.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실을 이용해 옷과 생활도구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장신구를 만들어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매듭은 때로 권위를 나타내고,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는 부적 역할을 하면서 우리 조상들의 미학과 우주관을 담아내는 상징물로 널리 애용되었다. 매듭에는 씨줄과 날줄이 얼키면서 수많은 사연과 가슴속 응어리를 풀어헤치고, 감고, 조이면서 끝내는 아름답게 매듭짓는 우리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배순화 매듭장이 매듭짓기 작업 전 끈짜기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끈짜기 작업은 여덟가닥의 실을 합사해 오른쪽·왼쪽 4가닥씩 꼬아 토짝에 감은 후 끈틀에 앉혀 손을 X자로 교차한다./손묵광 사진작가/
    배순화 매듭장이 매듭짓기 작업 전 끈짜기 작업을 시연하고 있다. 끈짜기 작업은 여덟가닥의 실을 합사해 오른쪽·왼쪽 4가닥씩 꼬아 토짝에 감은 후 끈틀에 앉혀 손을 X자로 교차한다./손묵광 사진작가/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거의 맥이 끊기고 현대문물에 또 한 번 밀려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나라에서는 전통 매듭기술을 가지고 있는 장인을 매듭장이라 하여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과 전승을 지원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매듭장이 단 4명뿐이다. 그중 한 명이 창원에서 50년째 외길을 걸어오고 있는 배순화(77) 장인이다. 그는 200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2호 매듭장 기능보유자로 지정받았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경남지역 전통매듭 명맥은 영원히 끊어졌을 터. 그에게 있어 매듭은 무엇일까. 평생을 쏟아부을 만큼 어떤 높은 가치가 있었던 걸까. 신록이 짙어가는 5월 초순, 마산합포구 매듭전수관에서 만난 그는 일흔일곱 나이에도 자태가 곱고 기억력이 총총하여 매듭인생 50년을 실타래처럼 풀어놓았다.

    어려서부터 어머니 손재주를 빼닮아 유독 바느질을 잘했던 그가 돈 안되는 매듭의 길로 접어든 것은 20대 중반. 집안 사정으로 학교 대신 편물학원을 다니며 뜨개질 기술을 익혔던 열일곱 소녀는 일찍 세상에 눈을 떴다.

    배순화 매듭장의 매듭과 술의 다양한 종류.
    배순화 매듭장의 매듭과 술의 다양한 종류.

    “당시 하루 종일 모를 심으면 일당 200원을 받았지만 뜨개질을 해 옷이나 소품을 만들면 그보다 열 배 스무 배를 더 벌었지요.”

    스무 살 무렵 본격적으로 진해에 편물가게를 열어 열심히 옷과 소품을 만들어 5년 만에 아버지 빚도 다 갚고 논도 살 정도로 돈을 꽤 잘 벌었다. 편물가게를 남동생에게 물러주고, 내친 김에 더 큰 마산 부림시장으로 터를 옮겼다. 그리고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한자락매듭교습소를 차렸다.

    “그것이 사단이라면 사단이었지요. 옷을 만들어 팔 때는 몰랐는데, 남을 가르치면서 모자라는 부분이 도드라지고…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더 배우자 마음 먹었지요.”

    그는 곧바로 서울로 내달렸다. 그때 나이 스물일곱. 그렇게 해서 중요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고 최은순 선생 문하에 들어 박선경 전수조교에게서 3년간 사사했다. 주말마다 버스를 타고 서울 경복궁 전통공예관을 찾았다.

    배순화 매듭장 작품 은칠보칠작노리개.
    배순화 매듭장 작품 은칠보칠작노리개.
    배순화 매듭장 작품.
    배순화 매듭장 작품.
    배순화 매듭장 작품 한글낙지발매듭.
    배순화 매듭장 작품 한글낙지발매듭.

    “씨줄과 날줄이 번갈아 가며 면을 만들어 내듯이, 두 가닥 줄이 만나고 얽혀서 가지가지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어째 인생 같기도 하고, 아무튼 배울수록 요술 같은 그 신비함에 푹 빠져들어 갔지요.”

    그는 어려서부터 한 번 마음 먹으면 끝장 볼 때까지 결코 멈추는 법이 없는 고집쟁이로 소문났다. 섬세하지만 부지런하고 강단진 성격이다. 그 성격이 전통매듭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했다. 매듭을 배우겠다고 전수관을 찾아오는 교육생을 볼 때면 처음 접할 때의 서툰 손놀림이 생각난다는 배순화 명인.

    “매듭은 손으로 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엉덩이로 하지요. 끈기가 없으면 도통 못하는 일이 매듭입니다.”

    짜려는 실의 굵기에 따라 여러 겹을 합사해서 8사를 짤 때는 오른쪽으로 꼰 실 네 가닥, 왼쪽으로 꼰 실 네 가닥을 실틀에 앉혀서 짜는데 하루 종일 매달려야 겨우 2m를 짠다고 한다. 이제는 매듭일이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그의 말에서 범상찮은 내공이 느껴진다.

    배순화 매듭장에 따르면, 매듭은 천연염색에서 매듭짓기까지 열세 공정을 거쳐야 한다. 먼저 명주실을 자새에 감고, 여덟 또는 열 오락지로 합하여 올 맨 다음, 다시 폭이 넓은 자새에 옮겨 감아 종기고, 이 실을 잿물에 삶아 익혀서 냇물에 하루 동안 씻어 바랜다. 그다음 이 실을 갖가지 색으로 물을 들여 말리고, 또다시 작은 자새에 감아서 해사한 다음 끈의 길이로 날아서 굵기에 따라 가닥 수를 세어 가른다. 이 실을 대 끝에 추를 달고 꼰 다음, 헝클어지지 않게 손에 감아서 끈 판에 대고 전다. 전 끈을 열 가닥씩 죽을 잡는다. 33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매듭은 한결같이 한 올의 끈목을 곱접어 중심을 잡고, 두 가닥 끈을 질서 있게 엮는데, 죌 때는 끝이 예리하지 않은 송곳을 사용하여 전후좌우로 균형을 잡아준다. 완성된 매듭은 앞면 뒷면이 같고 오른편 왼편이 대칭을 이룬다. 아무리 복잡한 매듭이라도 중심에서 시작되어서 중심 밑에서 끝난다. 고의 크기는 끈목 굵기에 딱 맞아야 하고 색감과 굵기는 문양 선택할 때 먼저 정해야 한다.

    설명하자면 무척 어렵고 까다롭다. 하지만 원리를 알고 몸에 착 익히면 매듭처럼 쉽고 재미난 일도 없단다.

    배순화 매듭장 두벌국화매듭.
    배순화 매듭장 두벌국화매듭.
    배순화 매듭장 작품.
    배순화 매듭장 작품.
    천연염색을 한 명주실타래.
    천연염색을 한 명주실타래.

    “재미가 붙고부터 희안하게 상상력이 솟아나더라구요. 1984년 어느 날인가, 국화매듭을 하다가 문득 한글모양 매듭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그때부터 글자매듭 연구를 시작하고 거듭된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6년 만에 한글 자음 14자를 완성했지요. 올림픽을 치르면서 나 같은 사람도 매듭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릴 수 있겠다 싶어 가슴이 마구 뛰었지요.”

    매듭장으로서 역사유물을 고증하여 재현해낼 때가 가장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그는 밀양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사인교와 국립고궁박물관이 보관 중인 남은들상여(주요민속문화재 제 31호, 흥선대원군 아버지 남연군의 상여) 재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3년 전 창원시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염원이었던 매듭전수관을 마련하고, 평생을 두고 작업한 작품과 자료를 모아 〈매듭과 끈목〉이라는 책을 펴낸 그는 이제 후학 가르치는 일을 보람으로 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이, 왜 돈도 안되는 일을 끝까지 붙들고 있느냐 하는데, 우짜겠습니까? 돈 100만원 200만원보다 실 한 꼬다리가 더 좋은 걸요.”

    그는 다시 태어나도 전통매듭을 할 것이란다. 오늘이 있기까지 시련도 많았지만, 한 단계 한 단계 오르는 과정이 돈보다 소중하고 가슴 벅찬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전통매듭은 어느 한 과정도 대충 건너뛸 수 없다. 반드시 한 과정 한 과정이 순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과의 싸움이면서, 순응이다. 느림이고 절제의 미학이 아닐 수 없다.

    김 우 태 시인
    김우태 시인

    세상에는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외롭고, 고단하고, 쓸쓸한 길을 기어코 가는 이가 있다. 알아주는 이 없지만, 스스로 짊어진 짐이기에 누굴 원망하지 않고, 스스로 기쁨에 넘쳐서 그 길을 가는 이. 그리하여 심지 깊은 사람 하나 골라 그 길 끊어지지 않게 이어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장인이고, 명인 아니겠는가. 배순화 매듭장이야말로 인간사 희노애락을 실 한 가닥으로 표현해내는 절제의 예술가이면서, 매듭 하나하나에 인생의 맛과 멋을 맺어내는 이 시대의 진정한 명인이다.

    김우태 시인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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