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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17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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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명인] ⑤ 아랫녘수륙재 기능보유자 석봉 스님

둥둥둥, 깊은 울림으로 생과 사를 하나로 잇다

  • 기사입력 : 2022-06-02 00:46:40
  •   
  • 어릴 때 백내장 앓아 절에 보내져

    16세 때 정식 출가해 범패 배워

    서울서 영산재 문화재 전수받고

    불모산 영산재 발족해 무형문화재

    아랫녘수륙재 국가문화재 인가받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서원곡 백운사를 들어서자 대웅전 건물이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다. 대웅전 건물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것 같은데 잘 보이지는 않는다. 계곡 다리를 건너면 이층 법당과 스님의 수행공간이다. 다리를 건너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장소로 여겨진다. 필자는 영산재 행사에 갔을 때 들은 아랫녘수륙재에 대해 스님께 물어볼 작정이었다.

    스님은 먼저 어렸을 적 얘기부터 꺼냈다. “어릴 때 눈이 백내장을 앓았어요. 보릿고개 시절 가난한 농촌 사람들은 병원을 찾아가 치료받기가 어려웠어요.” 부모님은 눈이 아픈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가 뭣하여 절에 보냈다. 그곳이 집에서 가까운 함안 군북의 원효암이었다. 마을에 가끔 내려왔다. 농악패거리를 보며 신이 나 따라다니다 9세 때부터 마을 농악을 쳤다.

    (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장인 석봉스님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인 아랫녘수륙재 법고무를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장인 석봉스님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인 아랫녘수륙재 법고무를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석봉스님은 16세 때 정식으로 출가해 철우라는 법명을 받았다. 18세 때 범패에 눈을 떠 어산을 찾아다니며 스승으로 모셨다.(절에서 주로 재(齋)를 올릴 때 부르는 소리를 범패라 하며 그 승려를 어산이라고 한다) 서울 봉원사에서 영산재 문화재를 전수받고, 1996년 창원에서 불모산 영산재를 발족했다. 석봉스님은 이 영산재로 1999년 도민속 예술축제에 출품해 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2000년도에는 전국대회에 나가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석봉스님은 불모산 영산재를 지방문화재로 신청해 2000년에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았으며, 아랫녘수륙재는 2013년 국가 문화재로 인가를 받았다.


    아랫녘수륙재란 낙동강 동남지역서

    구천의 영혼 위로하는 불교의례

    조선시대 이후 나라가 어렵거나

    민심 혼란할 때 치르는 국가적 의식


    석봉스님 범패.
    석봉스님 범패.

    ‘아랫녘’이란 낙동강 이동(以東) 이남(以南), 즉 한반도의 동남부지역을 말하는데 수륙재는 돌아가신 영혼, 망령들이 하늘이나 물이나 육지에서 위령을 구천에 맴돌지 않고 극락왕생하시도록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산천의 고혼을 구제하고 천도하는 의식으로 주로 국가적인 행사로 많이 행해오던 의식인 것이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멸망한 고려 왕족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각 지역과 해안의 절을 지정해 영산재를 국가적인 규모로 성대하게 지내도록 했다. 그 후 나라가 어려운 일에 처하거나 민심이 어지러울 때 국가적인 규모의 재를 올렸는데 그것이 수륙재다.

    영산재는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법화경(Lotus Sutra)을 설법하던 모습을 재현한 것이다. 봉송의례는 범패, 의식적 장식, 바라춤, 법고춤, 나비춤과 같은 불교의식이 거행된다.

    바라무.
    바라무.

    “사람이 죽으면 평소에 자신에게 먹이고 씻기고 닦고 하던 몸은 쇳덩이가 됩니다. ‘돌아가셨다’라는 말은 원래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을 말하지요. 돌아가는 동안이 49일입니다. 안이비설신의무색성향미촉법(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味觸法). 그동안 눈, 귀, 코, 혀, 몸으로 경험한 것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 것들의 의미에 대해 산 자도 죽은 자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필자는 스님이 울리는 범패를 본 적이 있다. 인간이 내는 소리 중에서 가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맑고 환한 경지를 지향해, 인간의 온갖 번뇌를 끌어안으며 오래도록 머무는 음률이었다. 전생과 그 전생, 그 전 전생의 영혼을 하나로 잇는, 영혼이 무에서 하나의 점으로 태어나 성숙해 웃고 울고 상처받고 기뻐하고 전율하다 건강과 사랑하는 이와 재산까지 잃은 가죽뿐인 인간을 끌어안는 느낌이었다.

    (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장인 석봉스님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인 아랫녘수륙재 바라무를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장인 석봉스님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인 아랫녘수륙재 바라무를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장인 석봉스님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인 아랫녘수륙재 바라무를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장인 석봉스님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인 아랫녘수륙재 바라무를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아랫녘수륙재 널리 알리고 싶지만

    제대로 된 공간 없어 안타까워

    많은 이들이 참여하고

    문화재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동안 좋은 일만 할 수 없지요. 나쁜 일도 하지요. 영혼이 죽으면 우리의 몸뚱어리는 원래 왔던 곳, 물기운 바람 기운 불기운, 흙 기운으로 모두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영혼이 원래의 자리로 다시 가야 하는데, 가지 못하면 현세를 떠돌며 중음신이 됩니다. 돌아가신 망령들은 염라국에서 49일 동안 일주일마다 명부시왕의 재판을 받지요. 한평생 눈으로도 짓고 귀로도 짓고 코로도 짓고 입으로도 짓고 육신으로도 짓고 생각으로도 짓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 이생에서 저지른 모든 것을 마지막 사십구재 중 마지막 십재 때 최종적으로 판결한 후 편안하게 무(無)가 되어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혼이 앞이 막혀서 더 이상 나갈 수도 없고, 돌아가려니 업이 꽉 차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는 경우가 있지요. 대궐 같은 집의 좋은 기와집에 가서 잠시 쉬었다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잠시 쉬게 되지요. 그런데 나중에 눈을 떠보니 자신은 캄캄한 자궁 수태되는 시간이더라. 이런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또 자신의 업을 따라 윤회를 해야 해요. 그 굴레를 다시 돌지 못하게 하는 것이 49재입니다.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을 때 부처님의 불법을 만나 좋은 법문을 듣고 깨쳐서 해탈할 수도 있는 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은 돌아가신 분이 업의 굴레를 벗고 좋은 곳에 태어나도록 천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슴이 꽉 막혔을 때 그것을 풀어줄 수 있는 친구 하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은가요?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모든 영혼은 세속적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이 트여 영혼이 자유로워지게 되는 것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지요.”

    영산재는 신라 진감국사(眞鑑禪師)가 한국 특유의 범패를 성립시켜 하동 쌍계사에서 가르치면서 비롯됐다. 그후 우담(雨담)과 해담(해담)이 1892년부터 경남 일원에 주석 계승 발전시킨 것이 현재, 창원, 마산 지역에 전승된 아랫녘수륙재와 불모산 영산재의 범패다.

    불교 특유의 올바른 수륙재는 통고 소리 범패승들에 의해 전승된 영남불교의식음악연구회의 아랫녘수륙재라고 한다.

    (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장인 석봉스님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인 아랫녘수륙재 법고무를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사)아랫녘수륙재보존회장인 석봉스님이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127호인 아랫녘수륙재 법고무를 선보이고 있다./전강용 기자/

    몇 년 전 스님의 법고춤을 본 적이 있다. 북소리는 북의 가장자리 테를 긁으며 울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북의 정면에서 두 손으로 두드려 소리가 나자 그것은 살갗으로 스며들어 혈관을 타고 정수리까지 울렸다. 소리가 점점 빨라진다. 춤사위에 따라 장삼 자락이 일렁이자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바닷물이 하늘로 치솟았다 내려앉은 것도 같다. 그러다 어느새 북소리는 서서히 물결처럼 흐른다. 세상이 정돈되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둥둥둥. 소리는 결코 붙잡을 수 없는 찰나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세상과 하나가 된다. 세상이 소리로 어우러지며 제자리를 찾는 순간 스님은 안개로 흩어져 다시 태어나는 것도 같았다.

    홍혜문(소설가)
    홍혜문(소설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 나의 존재가 온전히 무(無)가 되어, 공간과 영원과 한 몸이 되는 것. 그것은 없으면서도 있음이요, 무가 유로 변하고 다시 무로 만들어지는 세계입니다.”

    스님의 눈빛은 티 없이 맑아 다시 태어난 어린애 같기도 하다. “아랫녘수륙재를 널리 알리고 싶지만, 공간이 없어 안타까워요. 많은 불도들과 일반인들이 아랫녘수륙재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제대로 된 넓은 공간이 주어져 제자들이 이 문화재를 제대로 배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홍혜문(소설가)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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