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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인연을 보다- 전창우(수필가)

  • 기사입력 : 2022-06-16 20:3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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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의 돌은 크기나 생김새나 색깔이 모두 제각각이다. 강이나 바다에 널려있지만 같은 모양은 거의 없다. 얼굴도 지문도 같은 사람이 없듯이 비슷한 것 같지만 모두 다르다. 개성이 뚜렷한 것도 있고 그냥 묻혀 가는 것도 있다. 잘났건 못났건 한 자리씩 생긴 대로 자리 잡고 있다.

    자연석 하나에 엄청난 세월의 무게를 아로새겨 독특하게 살아 숨 쉬는 모양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생각해 본다. 하지만 좋게 평하는 수석도 가치를 완전히 인정받기란 쉽지 않다. 제대로 생김새가 갖추어졌다 해도 어느 부분이든 조금씩 모자람이 있기 마련이다. 어떤 것이든 결점 없이 완전할 수 있겠는가. 사람의 됨됨이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장년기에 산청 경호강으로 탐석을 나섰다. 오전에 도착해서 좋은 돌 만나게 해달라고 기원하며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리는 강변을 따라 걸었다. 운과 끈기와 육감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매번 자연 풍광만 구경하다 남의 돌만 감상하고 돌아오기 일쑤였다. 돌 욕심도 없고 걷기 운동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예상대로 텅 빈 가방을 쳐다보면 마음에 휑하니 바람이 지나갔다.

    오는 길에 들른 수석가게에서 나와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돌을 만났다. 보는 순간 가슴이 뛰었다. 긴 세월을 힘들게 견뎌온 자연석이 마치 장인이 조각한 작품처럼 반듯이 수반 안 모래 위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한라산의 백록담같이 산 정상에 분화구가 있고 아름다운 대자연을 연상하게 하는 수석이었다. 절경을 뽐내며 기품 있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산의 능선과 깊은 골짜기, 산봉우리 사이가 움푹 파여져 물이 고이면 호수가 되는 모양을 갖췄다. 산이 흐리면 흐린 대로, 맑으면 맑은 대로, 자연의 모든 걸 받아들이듯, 보고 있으면 변화무쌍함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본 이후 빼어남이 눈앞에 계속 아른거려 몇 번의 시도 끝에 어렵사리 내 곁으로 왔다.

    돌은 물과 함께 수많은 세월 동안 구르고 패이고 닦여져 모양새를 이룬다. 경이로운 자태를 뽐내지만 말랐을 때와 젖었을 때를 비교하면 전혀 다른 것도 있다. 물에 의해 색깔이 좌우된다. 사람이 어떠한 환경 속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같은 돌도 달리 보인다.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따뜻하게 만지면 봄바람이고 차갑게 바라보면 가을 서리같이 쌀쌀해진다. 사물도 기울게 보면 모든 것이 비뚤어져 있다.

    지금 내 몸과 마음속에 들어와 애지중지하는 수석도 나와의 인연이 끝나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가게 될 것이다. 자연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고 필요한 사람을 찾아 보낼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인연으로 만나고 보는 것인가이다. 나에게는 맞지 않을지라도 다른 이에게는 꽃처럼 고귀할 수도 있다.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해서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될 일이다. 비단 돌뿐이겠는가. 사람의 인연도 같은 이치가 아니겠는가.

    전창우(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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