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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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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사르초록기자세상] 산비탈 깎아 만든 ‘다랭이논’ 보전 가치 인정을

도연지 (진영중 2년)
선착장 없는 바닷가 주민 손으로 일군 땅
“가족과 함께 방문해 소중함 배워갔으면”

  • 기사입력 : 2022-06-22 08: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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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6월 11일 남해 다랭이 마을로 탐방을 나섰다. 남해 다랭이 마을은 처음이라 김해에서 출발할 때부터 긴장이 되었다.

    탐방을 가기 며칠 전 신문에서 남해 다랭이논이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을 준비 중이라는 기사를 보았다. 남해 가천마을 다랭이논은 남해군 남면에 있는 산간지역에서 벼농사를 짓기 위해 산비탈을 깎아 만든 논을 말한다. 국가중요농업유산은 환경과 사회 풍습 등에 적응하면서 오랫동안 형성시켜 온 유무형의 농업자원 중 보전할 가치가 있는 농업유산에 대해 국가가 인정하는 제도이다.

    다랭이논 아래로 펼쳐진 바다.
    다랭이논 아래로 펼쳐진 바다.

    다랭이논은 산기슭에 한 평이라도 더 논을 내서 쌀을 확보하려고 노력했기에 생긴 논이다. 이 마을사람들은 바닷가 근처에 살지만 유일하게 선착장이 없는 마을이고 어업을 하지 않고 오로지 다랭이논을 일구며 살았다고 한다. 이곳에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주민들의 노력이 만든 땅으로 모든 일이 기계가 아닌 사람의 손으로 이루어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다랭이마을을 견학하면서 써레에 대한 글도 보았다. 써레는 갈아 놓은 논의 바닥을 고르는 데 쓰는 기구라는 표지판이 있었다. 남해군 12경 중 하나로 꼽히는 다랭이마을은 108층 680개의 곡선 형태의 다랭이논 체험장에서 전통방식의 써레질과 소쟁기질 체험을 통한 농경문화를 접해볼 수도 있다고 했다. 논의 모를 심고 난 이후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들을 보면서 새싹이 올라오는 느낌이라 뿌듯함마저 들었다. 다랭이논 아래로 펼쳐진 바다는 마음까지 시원하게 했다. 가천마을의 옛 이름은 간천이라고 했다. 조선 중기에 이르러 갈대가 많은 냇가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가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가천 암수바위.
    가천 암수바위.

    내려오며 가천 암수바위까지 둘러보았는데 숫미륵은 남성의 성기를 닮았고 암미륵은 임신해 만삭이 된 여성이 비스듬히 누워있는 모습과 비슷했다. 이곳 사람들은 이 두 개를 미륵불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1751년 남해 현령 조광진의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 있는데 그 위로 우마가 다녀 몸이 불편하니 꺼내어 세워주면 필히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후 현령은 암수 바위를 꺼내어 봉인하고 논 다섯 마지기를 바위에 바치고 제사를 지내었다. 아직도 어민들은 음력 10월 15일을 기해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꼭 가을이 되면 다시 찾아가 봐야 할 것 같다.

    도 연 지 (진영중 2년)
    도연지 (진영중 2년)

    예전에 어떤 농부님이 7~8월의 벼가 진짜 예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했다. 벼가 정말 예쁜 여름과 제사를 지내는 가을에 꼭 가족과 함께 와서 논에서 나온 나락을 먹는 철새도 보고 다랭이 논의 소중함도 배워갔음 한다.

    도연지 (진영중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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