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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명인] ⑧ 함안 화천농악 예능보유자 배병호

‘삶이 곧 농악’ 함안 상쇠의 뜨거운 농악사랑

  • 기사입력 : 2022-06-23 08: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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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의 마음을 빠르게 움직이게 하는 것은 소리의 예술인 음악만한 게 없을 것이다. 운동 시합에 참가한 선수들이 막간을 이용해 음악으로 기분을 상승시키는 모습을 방송에서 종종 보게 되고 집회, 전쟁, 고된 농사일을 극복하는데도 음악이 빠지지 않는다.

    농업을 기반으로 하여 긴 역사를 가진 함안에 1960~1970년대까지 마을마다 조금씩 다른 농악이 있었다. 하지만 경제성장과 산업화에 따른 이농현상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칠북면 화천마을에 내려오던 화천농악 하나만 살아남아 전해지고 있다.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농악팀이 공연장에 입장하고 있다.
    농악팀이 공연장에 입장하고 있다.

    배병호 예능보유자는 1969년 함안군 가야읍에서 태어났다. 성장과정에 농악을 간접적으로 조금씩 접하면서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농악인이 된 것 같다는 말을 한다. 초등학교 시절엔 가야읍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대부분 농사를 지었고, 모내기철이 되면 부녀들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모심기를 해야 했다. 모내기를 하면서 회차(모꼬지)의 날을 잡고 계획하는 일은 고된 노동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모내기가 끝나면 가야읍 원동 마을의 부녀들은 말이산고분군 언덕배기에서 연례행사처럼 하루 신나게 마시고 춤추며 노는 회차가 당시에 유일한 오락이었다. 마을에 장구를 잘 치고 옷도 맵시 있게 잘 입는 아주머니 한 사람 있었는데, 마을에서 연예인처럼 인기가 좋았다. 초등학생 배병호가 이 분을 모시러 다니는 심부름을 여러번 했고 그분이 치는 장구소리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었다.

    배병호 함안 화천농악 예능보유자.
    배병호 함안 화천농악 예능보유자.
    배병호 함안 화천농악 예능보유자.
    배병호 함안 화천농악 예능보유자.

    고등학교는 마산서 다녔는데, 1학년 때 영·호남 친선배구 시합이 있었다. 농악인의 딸로 함안에서 마산으로 공부하러 간 여자친구가 J여고 민속반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 여자친구가 어려서부터 익힌 꽹과리로 응원전을 펼치며 많은 관중을 리드하는 멋진 모습과 그 쇠소리가 뇌리에 오랫동안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교사가 되기 위해 공주사범대학 교육학과에 진학했고, 대학 때 알게 된 친구 하나가 전주대사습놀이를 구경 갔다가 병호씨의 고향이 함안이라는 것을 알고 함안에서 참가한 화천농악을 응원했다는 말과 장원한 소식을 전해 주어 화천농악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69년 함안 가야서 태어나 자연스레 농악 접해
    흥겨운 장구·꽹과리 소리 오랫동안 못 잊다
    대학 졸업하던 해 화천농악 연수 후 깊게 빠져

    1995년 전수관 건립 후 교사 길 접고 농악 뛰어들어
    재능·열정 인정받아 2014년 예능보유자 인증
    함안아라문화제에 농악의 흥과 리듬 접목 노력
    ‘농악·농요·체험’ 민속마을 만드는 게 꿈

    대학을 졸업하던 해 여름에 함안종고 학생들이 화천농악 연수를 받으러 가는 것을 알고 함께 참가한 후 화천농악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당시 연습할 장소가 마땅히 없어 주로 칠북면 화천마을에 있는 분성 배씨 재실과 칠북초등학교 강당을 이용했다. 화천농악을 배우면서 당시 주변을 살펴보니 법수면 사정농악과 군북면 백이농악이 그때까지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으나, 얼마가지 않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이후 시간만 나면 화천농악을 찾았고, 1995년 화천농악의 구심점이 되는 전수관이 건립되자 교사의 길을 접으며 가시밭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농악에 뛰어들었다.

    젊은 나이에 몰입해 연습을 하자 얼마가지 않아 재능과 열정을 인정받게 되어 경남무형문화재 제13호 함안화천농악 상쇠부문 이수자를 거쳐 전수조교가 될 수 있었다.

    조교로 보존회 사무국장을 하면서 원로들과 화천농악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로 어려움이 따랐다. 사무국장직을 내려놓고 경상대학교 민속문화학과에서 함안화천농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론공부를 더한 후 2010년 상쇠부분 예능보유자 후보가 되었으며, 2014년 40대 중반의 나이에 화천농악 예능보유자가 될 수 있었다.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화천농악의 정립은 1대 예능보유자 상쇠 박동욱(1932~2002) 선생의 공이 컸고, 196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농악대회가 여러 곳에서 개최되자 참가하게 되고 가는 곳마다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된다. 특히 1963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농악으로는 최초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때부터 화천농악이 세상에 빠르게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일제 때는 농악에 대한 억압으로 명맥만 유지되었고,박동욱씨의 아버지 박정길씨도 화천농악의 상쇠였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역사가 꽤 오랜 된 것으로 보인다. 박동욱 선생은 아버지에게도 배웠지만 여러 유명한 사람을 찾아다니며 배웠다고 한다.

    배병호 예능보유자에게 함안 화천농악의 차별화를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풍농안택을 기원하는 전형적인 두레농악으로 공동체의식을 심화시키는 중심적 역할을 해 왔다. 구성은 지신밟기굿과 판굿으로 구분되고, 판굿은 열두 마당으로 되어 있다. 장단은 살풀이장단, 덧배기장단, 영산다드래기장단, 호호굿장단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다른 농악과 구별되는 점이 많다고 한다.

    배병호 함안 화천농악 예능보유자.
    배병호 함안 화천농악 예능보유자.

    상쇠가 농악을 지휘하며 치는 꽹과리의 두께는 다른 지역의 것보다 얇고, 치는 쇠채는 비교가 될 정도로 크다. 그래서 다른 지역의 꽹과리 소리를 멀리서 들으면 ‘탱 탱’하는 소리로 들리지만, 화천농악의 꽹과리 소리는 저음으로 찰찰 흐르는 시냇물 소리처럼 맑고 고은 소리를 내기 때문에 귀로 금세 구분이 된다. 또, 다른 농악에서 들을 수 없는 삼접엇가락이 있고 다양한 변주가락과 타법이 화려해 쇠가락의 박자로도 구분을 할 수 있다.

    상모에 무거운 납덩이를 사용해 바람을 잘 타지 않고 꼬리가 길다. 다른 지역에서는 상모의 원이 하나로 나타나지만 화천농악의 상모는 꼬리가 길어 작은 원이 하나 더 생겨 상모로도 구분이 된다. 무엇보다 화천농악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농악이 아닌 스스로 즐기는 농악으로 농사로 인한 피곤함을 음악으로 해소하는데 있다고 강조한다.

    배병호 예능보유자는 30년 가까이 함안군 내 여러 초등학교· 함안문화원· 화천농악 전수관에서 한 눈 팔지 않고 상쇠로써 농악을 가르치는 지도자의 길을 걸어 왔다.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지난 11일 함안박물관 앞에서 열린 ‘함안 생생마실- 함안생생축제’에서 농악팀이 공연을 하고 있다./김인호 사진작가/

    농악에서 상쇠란 꽹과리로 시간 조정, 연출 등을 총지휘 하는 사람을 말한다. 부쇠와 종쇠는 상쇠의 동작을 보면서 꽹과리로 상쇠를 돕는데, 이들이 잘 해야 상쇠가 빛이 나고 권위가 선다.

    훌륭한 상쇠는 꽹과리를 연인에게 속사이듯 노래하듯 친다고 한다. 박동욱 선생은 생전에 신바람이 절정에 이르면 꽹과리와 징소리가 없는 ‘쇠 끊음’으로 쇠를 높이 들고 춤만 덩실덩실 추었다고 한다.

    코로나로 지난 2년 정도 대면이 제한되자 경상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박사과정에서 이론 공부를 열심히 했고, 논문제출만 남은 상태다.

    배병호 예능보유자는 2015년부터 화천농악에서 범위를 조금 넓혀 함안아라문화제 사무국장을 맡아 7년째 일을 하고 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배씨가 신명나는 화천농악의 흥과 리듬을 축제에 접목시키려 노력하고 있음을 안다.

    올해 34회를 맞는 함안아라가야문화제는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3일간 함안박물관 근처, 아라길 일원에서 분산해 개최된다. 공연과 체험 중심의 참여형 축제로 기획해, 재미있고 차별화될 수 있게 치밀한 준비와 점검을 하고 있다.

    배병호 예능보유자가 요즘 가장 안타끼워하며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일은 농악은 계속 발전하는데, 농악을 탄생시킨 농촌이 피폐화되고 붕괴되고 있는 현실을 지켜보는 일이다. 전수관에서 농악만 가르치고 돌아올 것이 아니라 농촌에 뛰어들 생각을 하고 있다. 직접 작목을 하면서 농악과 농요를 하고 나아가 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화천무형문화재 민속마을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조평래 소설가
    조평래 소설가

    조평래 (소설가)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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