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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친일인명사전’과 ‘정의란 무엇인가’-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22-07-03 20: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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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 정부의 국무총리와 몇몇 장관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우리의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져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공정’과 ‘정의’를 입으로만 떠들어댔지 정작 몸소 실천에 옮긴 사람은 드물다. 상대에게는 엄격한 잣대로 재단하는 반면, 내 자식이나 내 편에게는 고무줄 잣대를 내민 ‘내로남불’은 여전했다. 제 욕심을 다 챙기는 한 공정은 이미 물 건너갔다.

    창녕 출신인 임종국(1929~1989) 선생은 문학평론가 겸 역사학자로 ‘친일인명사전’을 탄생시킨 시조다. 일제강점기의 친일파 문제를 처음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연구하여 ‘친일문학론’(1966)을 펴냈다.

    이 책은 지식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지면서 반독재민주화운동의 과정에서 근대사 이해를 위한 필독서가 되었다. 아버지(임문호)의 사업 실패로 경성공립농업학교를 우여곡절 끝에 마치고 1952년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학과에 진학하였으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2년 후 중퇴했다가 17년 만인 1969년에 졸업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이혼과 재혼을 거치는 등 개인적으로는 힘든 인생을 살았다.

    그는 친일파 인물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할 계획으로 ‘친일파총사’를 집필하던 중, 1989년에 사망하였다. 그가 남긴 자료를 물려받은 것을 계기로 친일파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반민족문제연구소가 설립됐고(1991년), 이후 이 연구소는 1995년에 ‘민족문제연구소’로 개칭됐다.

    ‘친일인명사전’은 민족문제연구소가 1997년에 시작하여 우여곡절을 겪고 2009년 11월 8일 발간한 3권(2800쪽)짜리 인명사전이다. 박정희 대통령과 장면 국무총리, 김성수 부통령, 음악가 안익태, 무용가 최승희, 시인 서정주·모윤숙, 극작가 유치진, 언론인 장지연 등 1차 수록 예정자 명단이 공개되었을 때는 유족과 보수단체가 당시 시대상황과 업적을 감안하지 않았다며 선정 기준 등을 문제 삼기도 했다. 물론 안중근이나 윤봉길 의사와 같이 목숨을 버리지 않고 살아남은 유명인 중에 100% 깨끗한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임종국 선생은 내로남불의 근처에도 가지 않았고 아버지 임문호도 그랬다. ‘친일문학론’ 집필을 마무리하던 1966년 1월쯤, 헌 신문을 뒤지다 아버지의 ‘학병 권유’ 지역순회강연 기사를 본 것이다. 그는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친일 문학 관련 책을 쓰는데 아버지가 학병 지원 연설한 게 나왔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빼고 쓸까요? 그러면 공정하지가 않은데….” 임문호의 대답은 “내 이름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다”였다. 임문호는 의식 있는 조선인으로서 두세 차례 감옥을 드나들었다. 그렇더라도 아버지의 단 한 점 오점도 봐주지(?) 않은 임종국이었다. 심지어 본인의 고려대 스승인 유진오 박사의 친일행적도 단호히 지적했을 정도로 강직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벼락이 떨어져도 내 서재를 떠날 수 없다”라고 하여 친일 청산 의지를 분명히 하였다.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마이클 샌델 교수의 후속작 ‘공정하다는 착각’이 2020년에 번역돼 나왔다. 불공정과 불의에 무너져 내렸던 한국에서 이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 책에서는 ‘완벽한 공정’을 주로 다루고 있는데, 학력주의를 ‘면책적 편견’으로 단정하며 대학 간판이 무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과제를 던진다. “내가 가진 재능과, 사회로부터 받은 대가는 과연 온전히 내 몫인가? 아니면 행운의 산물인가? 나의 노력은 나의 것이지만 패배자도 하는 것이다. 내가 나의 재능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운이다.”

    그런 마이클 샌델도 (임문호와 달리) 자식 앞에서는 흐트러졌다. 같은 하버드대 교수인 아들 애덤 샌델의 책 ‘편견이란 무엇인가’(2014)에 추천서는 물론이고 뒤표지에 부자(父子)의 사진까지 싣는 큰 아빠 찬스를 주었으니!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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