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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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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무위와 통찰-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 기사입력 : 2022-07-06 20:4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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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흰머리가 너무 많아요. 염색 좀 하세요.” 주변 사람들이 염색을 권해온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보기에 딱했던 모양이다. “예”라고 대답은 하지만 염색을 할 마음은 없다. 인위적인 것보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50대의 나이에 30대의 외모를 유지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젊어 보여 좋겠다는 반응이 많다. 젊게 보인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이에 맞지 않은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화장해서 예쁜 경우가 있다. 인위적인 아름다움이다. 화장하지 않아서 예쁜 경우도 있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다. 적절한 화장은 자신감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생얼’의 수수함과 친근함을 화장이 가린다.

    명품으로 차려입으면 멋있게 보일 것 같지만, 화려함이 인간다운 멋을 대신할 수는 없다. 수수함 속에 자기 다운 멋을 드러난다면 그것이야말로 참다운 매력일 것이다. 말을 너무 화려하게 하면 사람들이 감동하지 않는다. 화려함이 진실함을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평범한 말에 진실함이 담길 때 듣는 사람의 마음도 움직인다.

    화려한 꾸밈보다 편안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은 노자가 말하는 무위(無爲)와 관련이 있다. 글자 그대로 풀자면 ‘하는 것이 없다’는 말인데, 아무것도 안 한다는 뜻이 아니다. 무위는 자연의 순리에 따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무위의 반대는 유위(有爲)가 아니라 인위(人爲)다. 인위적으로 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순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힘들고 불편하고 추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흰머리도 생기고 주름도 늘어난다. 이것을 가리기 위해 염색을 하고 보톡스를 맞으며 세월에 저항해본다. 아름다움을 유지하려는 본능에서 기인하는 데 대체로 실패한다. 인위적 노력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가리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그에 맞는 연륜과 개성이 보여야 한다. 그때 그만의 진실한 모습이 드러난다.

    복잡한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노자의 무위는 세상을 선명하게 보는 통찰로 이어진다. 오염된 생각을 벗겨내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머리를 혼란하게 만들고 의사결정을 어렵게 한다. 우리는 네모에 익숙하다. 아파트도 네모, 책상도 네모, 노트북도 네모, 스마트폰도 네모다. 네모의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네모가 공간의 활용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동그라미, 세모, 마름모 등 여러 모양들이 있다면 사물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 어렵다. 문제는 네모를 당연하게 받아들여, 네모적 사고에 갇히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기존의 사고에 익숙해서 그 속에서 살아간다. 통찰은 자신의 생각이 갇혀 있다는 것, 익숙함에 포위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서 시작된다. 이때 무위가 힘을 발휘한다. 안개를 걷어내고 본래 모습을 들여다보는 힘이 무위에 있다.

    서울시에서 영세규모의 식당을 살리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지 고민을 했다. 보조금을 지급할까? 홍보를 적극적으로 할까? 다양한 방법이 모색됐고 실행됐지만 큰 성과가 없었다. 이때 한 공무원이 아이디어를 냈다. ‘점심시간 전후, 식당 주변 도로에 주차 단속 하지 않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뭔가를 하기보다 하지 않음으로써 성과를 얻은 대표적인 사례다.

    세종대왕 시절에 재상을 지냈던 허조는 “스스로 나라의 일을 내 책임이라고 여기며 살아왔다”는 말을 남겼다. 세종대왕이 조선의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세종의 곁에는 허조뿐만 아니라 황희, 장영실, 김종서 같은 나라의 일을 자기 일로 여겼던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런 인재를 품을 수 있었던 것은 세종대왕이 무위를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신하들에게 일일이 명령하고 그것을 잘 집행하는지 통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토론하고 상의하면서 일의 주체가 될 수 있게 믿고 맡겼다.

    점점 복잡해지는 시대에 무위로 통찰을 얻는 사람이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안상헌(애플인문학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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