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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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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2) 참 좋은 세월이다

우당탕탕 요리사 ‘점심 준비’… 정성 맛본 어르신 ‘시원한 미소’

  • 기사입력 : 2022-07-24 21:5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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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왜 안 오노’, ‘언제 올랑가’ 카면서 몇날을 기다렸는데, 인자사 왔네.”

    ◇세 번째 출근한 심부름꾼은 왜 울컥했을까

    경남신문 심부름센터팀인 ‘마기꾼들(마을기록꾼들)’이 세 번째 출근도장을 찍은 지난 21일 오전 8시 30분. 밤새 세차게 내린 장맛비가 뚝 그치고 아침 햇살이 입사마을로 스며들었습니다. ‘경남신문’ 글자가 찍힌 차 1대가 마을 입구에 도착하자 머리에 염색약을 바른 채로 집 밖으로 마중 나온 윤기연(80) 어르신은 안도 섞인 미소와 함께 “잘 왔다”고 저희를 맞이합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주일 전 ‘마기꾼들’의 맏형 ‘사진꾼’(김승권 기자), ‘영상꾼들’(이솔희 VJ·이아름 인턴VJ) 없이 ‘심부름꾼’인 저 혼자 마을을 찾았던 두 번째 출근날 때문인데요. 제가 글쎄 어르신들께 오이를 한통 담아와 건네 드리고선 어르신들 ‘몰래’ 퇴근하고 일주일 동안 잠적(?)해버린 겁니다. 통도 그대로 마을회관에 놔두고, 쓰고 온 모자도 마을회관에 그냥 두고 간 채 말이죠. 일주일째 감감무소식이다가 나타났으니…. 걱정하셨을 만하죠? 저는 이 걱정에 감동받아 ‘몰래’ 울컥했습니다. 저희를 어느새 ‘준마을사람’으로 여기시는 거였으니까요. (그날 점심 식사 후 마을회관에서 곤히 낮잠을 주무시는 어르신들을 보고선 깨우기 죄송해서 조용히 퇴근한 거였습니다.^^)

    세 번째 출근이다보니 이제 입사마을을 차분히 돌아볼 여유(?)도 생겼습니다. 아, 저기 저희를 보고 환하게 웃으시는 ‘입사마을 입담대표’ 빈달성(83) 어르신이 마을회관으로 향하시는군요. 어느새 ‘손녀딸’이 된 이아름 영상꾼, 언론을 취재하는 서울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가 ‘마기꾼들’을 취재하기 위해 찾아 오자 환한 미소로 인사하며 마을회관으로 발걸음을 옮깁니다. 윤 기자는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활동을 소개하는 ‘전국언론자랑’ 첫 취재차 마을에 들러 심부름까지 거들었습니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를 보인 지난 21일 취재팀이 입사마을 주민들과 간식거리를 챙겨 조삼계곡을 찾고 있다.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웃도는 무더운 날씨를 보인 지난 21일 취재팀이 입사마을 주민들과 간식거리를 챙겨 조삼계곡을 찾고 있다.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도마도’ 먹고, 신기한 놈(?)도 보고

    입사마을 어르신들의 하루 일과는 어떨까요? 여름이면 오전 5시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신다고 합니다. 날씨가 뜨겁기 전 무논이나 텃밭으로 향해 일을 하신 뒤 곧바로 아침 식사도 간단히 해결합니다. 신영도(74) 노인회장님을 비롯한 여러 남성 어르신들은 6시 전후로 마을 밖 일터로 향하다보니 저희는 주로 여성 어르신들과 일과를 보냅니다.

    마을 한 바퀴를 한가하게 이리저리 왔다갔다한 심부름꾼. 시간은 오전 10시를 향하고 있습니다. 정자 맞은편 텃밭이 보입니다. 빈달성 어르신이 ‘저 안 있나. 저짜 저거 아이가. 맘껏 따 무라’고 가리키는 곳을 보니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도마도’가 주렁주렁 열려있습니다. 무농약 도마도를 한손 가득 따서 손으로 슥 닦은 뒤 입에 쏙! 마트에서 파는 토마토와는 다른 맛인 도마도의 신선함에 감탄합니다.

    즐거운 한때가 이어지는 시간, 이솔희 영상꾼이 띄운 드론 1대가 마을 정자 위를 맴돌다 저 멀리 하늘 위로 날아갑니다.

    “아이구 고놈 참 신기하다. 요~만한 기 오만데 다 돌아댕기고, 참 좋은 세월이다. 내 좀 태아가 다니면 안 되나? 내가 저래 날아다니면 속이 시원하겠다. 빠이빠이 잘 가그라.” 빈달성 어르신이 하늘을 향해 한참을 손을 흔듭니다.


    “마을회관 점심 메뉴 라면” 소식에
    차로 35분 거리 읍내 마트서 장 본 후
    냉면·만두 만들어 ‘시원한 한상’ 대접
    어르신들 “대기업 맛 난다”며 웃음

    도 기자가 냉면에 올릴 고명을 만들기 위해 오이를 채썰자 빈달성씨가 지켜보고 있다.
    도 기자가 냉면에 올릴 고명을 만들기 위해 오이를 채썰자 빈달성씨가 지켜보고 있다.
    군만두를 들어보이고 있다.
    군만두를 들어보이고 있다.
    냉면 육수를 붓고 있는 도영진 기자.
    냉면 육수를 붓고 있는 도영진 기자.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취재진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만든 냉면, 군만두, 오이무침.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취재진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만든 냉면, 군만두, 오이무침.

    ◇‘우당탕탕 요리사’로 변신

    마을에 계신 어르신들은 주로 마을회관에서 점심을 함께 지어 드시는데요, 오늘은 뭘 드실까요?

    “반찬이 다 떨어져서 점심에 라면 끓여 드신대요.”

    마을회관에 있던 영상꾼들이 속보를 전합니다.

    “라면 드신다고? 이것은 아닌데. 날씨도 더우니까 냉면 대접해드릴까요?”

    이렇게 이날의 심부름인 ‘점심 대접하기’가 시작됐습니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20분을 향하고 있습니다. 점심때에 맞춰 냉면을 대접해드리기 위해선 서둘러야 합니다. 입사마을과 가장 가까운 궁류시장 인근 동네 ‘점빵’은 3.5㎞ 떨어져 있고, 조금 더 넓혀 십리~십오리남짓 거리의 궁류면·유곡면소재지 주변에는 지역농협이 운영하는 하나로마트가 있는데요. 취재해보니 안타깝게도 육수가 함께 포장된 4~5인분짜리 냉면은 팔지 않군요. 지역소멸 위기를 냉면으로 실감할 줄이야.

    남은 선택지는? 의령읍까지 나가는 것입니다. 차로 35분 거리 읍내로 나가 큰 마트로 향합니다. 냉면 8인분과 오이, 군만두 2봉을 집어 들고 후다닥후다닥 다시 입사마을로 돌아온 시간은 오전 11시 40분.

    이제 심부름꾼이 실력을 발휘할 시간입니다. 냉장고에서 달걀 다섯 알을 꺼내 사진꾼의 지시(?)대로 딱 12분만 삶습니다. 곧이어 면을 삶아 찬물로 헹군 뒤 손으로 여러 번 짜고 전분기를 빼내고 물기도 제거합니다. 찬장에서 그릇을 꺼내 정갈하게 담고 냉동실에 넣어뒀던 육수를 적당히 붓습니다. 여기에 삶은 계란을 반으로 잘라 올리면?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냉면 완성입니다.

    아차차! 고명으로 올릴 오이도 썰어야 합니다. 깨끗이 씻어 껍질을 벗기는 것까진 성공. 그런데 이걸 어떻게 썰어야 하나요? 반으로 자른 뒤 동그라미로 자르고 하나하나 채를 썰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아이가. 그래 썰면 안 되고.” 살림9단 어르신들이 제 칼질을 보고 손가락을 써는 거 아니냐며 걱정하십니다. 긴장한 심부름꾼, 땀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이내 빈달성 어르신이 칼을 넘겨받고 순식간에 채를 다 썰어주시네요.

    이뿐이라면 너무 심심하죠?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만두를 노릇노릇 굽습니다. 이어서 예쁘게 접시에 플레이팅까지 하니 그럴싸한 모양새가 나옵니다. 같은 시각 사진꾼도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고 숨겨뒀던 실력을 발휘하는군요. 고춧가루와 식초, 설탕 등으로 양념장을 만든 뒤 오이무침을 금세 만든 겁니다.

    “자, 다 됐습니다. 어서 드세요 어르신들~”

    드디어 한상 가득 차려 어르신들을 모십니다.

    “맛이 어떠세요?”

    “음, 대기업 맛이 나네!”

    이렇게 ‘우당탕탕’ 점심 식사 대접을 모두 마쳤습니다. 어르신들의 입가에 머물던 미소가 저희에게도 번졌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경노당에서 취재팀이 만든 냉면, 군만두, 오이무침 등을 먹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경노당에서 취재팀이 만든 냉면, 군만두, 오이무침 등을 먹고 있다.


    식사 후 마을 중턱 들깨밭으로 이동
    30분간 깻잎 따니 땀이 송글송글
    조삼계곡서 주민들과 ‘특별한 소풍’
    챙겨간 간식 먹으며 즐거운 한때


    ◇비밀의 계곡에서 특별한 소풍

    점심식사 후 빈달성 어르신과 창원에서 어머니를 뵈러 온 어르신의 막내아들 하상섭(50)씨를 따라 마기꾼들은 곧장 마을 중턱에 있는 들깨밭으로 향합니다.

    어르신과 어르신의 입담을 그대로 물려받은 막내아드님의 만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심부름꾼의 얼굴만 한 깻잎을 30분 남짓 땁니다. 이 깻잎들은 도시에 사는 어르신 자녀분들에게 ‘당일 배송’된다고 하시는군요.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치며 쳐다보니 깻잎은 큰 봉지 한 가득 들어찼습니다. 곧이어 어르신이 딴 고구마줄기도 두 손 가득 들고 마을로 다시 내려갑니다.

    저희가 차린 점심 식사에 화답하듯 마을에서 ‘젊은이’에 속하는 이미옥(57)씨가 강원도산 알감자를 한솥 가득 쪘습니다. 하상섭씨는 수박 반통을 쪼개 내놓으셨고요. 이때 어딜 가나 ‘오락부장’을 마다하지 않는 하상섭씨의 급 제안으로 ‘특별한 소풍’도 이어집니다. 소풍장소는 마을에서 산길을 따라 5분 남짓 올라가면 있는 마을주민들의 피서지, 증삼골 조삼계곡입니다. 계곡으로 내려가 징검다리를 건너면 너른 터가 펼쳐져 있습니다. 여기에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계곡을 풍경삼아 마을 어르신들과 마기꾼들은 즐거운 한때를 보냈습니다. 조용하고 한적한 입사마을에 마기꾼들도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 같아 기쁩니다. 서늘한 바람이 땀을 식혀주고, 어르신들의 만담에 귀는 즐겁고 천국이 따로 없습니다.

    “참 좋은 세월이다. 참 좋은 세월이야.”

    아들 하상섭씨의 손을 잡고 마을로 다시 내려가는 빈달성 어르신의 입가에 또 한번 미소가 번졌습니다.

    이튿날에도 심부름꾼은 입사마을을 찾았습니다. 아직도 전날의 여운이 가득하군요. 전날 일일 심부름꾼으로 대활약했던 윤유경 미디어오늘 기자가 서울로 돌아간 뒤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는데요. 여기에 함께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진 한장 한장 보는데 입사마을이 벌써 그리워요. 제 기자 생활 중 가장 행복한 하루였어요.’

    맞아요. 저희 마기꾼들에게도 가장 행복한 날들입니다. ‘봄날의 햇살’ 같은 우리 어르신들, 앞으로도 저희와 함께 행복한 시간 보내요.

    글= 도영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지역소멸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영상은 유튜브 경남신문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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