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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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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소확행, 아라가야에 스며들다- 옥영숙(시인)

  • 기사입력 : 2022-07-27 20: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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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마다 생각하는 여행의 범위는 다르지만 자유롭게 바람처럼 흐르고 싶은 마음은 같을 것이다. 거리나 시간적인 다양한 요소가 있으나 그냥 훌쩍 떠나는 것이 여행 아닐까. 일상의 바쁜 일을 잠시 밀쳐놓고 거리가 가깝고 멀고를 떠나서 부담 없이 언제든 찾아갈 수 있고 돌아올 수 있어 여행이다. 일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그곳의 풍경이나 문물 따위를 구경하는 일은 즐겁다. 친구가 살고 있고 이웃 동네 놀러 가듯 가볍게 갈 수 있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이 최적의 장소가 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친근한 함안 말이산고분군은 내겐 성소 같은 여행 장소이다.

    말이산고분군은 1963년 도항리 고분군·말산리 고분군으로 지정됐고 2011년 사적 제515호 말이산고분군으로 통합해 재등록했다. 아라가야 전성기인 5세기부터 6세기에 만들어진 고분들이다. 그로부터 15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때로는 밭으로 경작되기도 하고 봉분이 깎여나가고 무너진 채 번호를 부여받지 못한 봉분도 아직 많다고 한다.

    고분으로 향하는 길은 잘 정돈돼있어 산책로처럼 편안하다. 천천히 걷다 보면 길 따라 우뚝 솟은 고분이 줄지어 나타난다. 크기는 제각각이지만 보통 3~4기씩 무리를 지어 그 풍경이 편안하고 아늑하다. 과거의 길을 걷다가 돌아보면 현재의 내가 걷고 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옛사람의 흔적을 느끼고 대화하는 것이 아닐까?

    해동타운 맞은편에서 올라가는 고분길은 1호분 옆에 살구나무가 나타난다. 예전에 시온교회와 학교가 있었지만, 봉분을 복원하면서 철거되고 이제는 살구나무와 호두나무만 남아서 그 시절을 증언하듯 서 있다. 그 살구나무에 꽃이 필 때면 하늘과 능을 배경으로 그 풍광이 장관이다. 구릉처럼 낮은 길이 환하고 꽃잎이 떨어질 때면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곳이다.

    박물관 측에서 올라가는 8호분과 7호분 사잇길은 아래 삼기마을로 가는 샛길이다. 7호분 옆에는 벚나무와 섬잣나무가 있는데 오랜 세월을 견딘 나무도 아름다워서 말이 없다. 고분군을 배경으로 멋진 사진 한 장 남기려는 포토존이다. 또한 함안군에서 말이산고분군 사진공모전을 여는데 고분군의 계절 풍경이나 나무, 야생화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을 뽑는다고 한다.

    말이산고분전시관에 가면 아라가야인들이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새 모양 장식 미늘쇠를 비롯해 다양한 껴묻거리를 만날 수 있다. 아라가야인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토기들과 시대별 무덤양식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대형고분 4호분의 돌덧널무덤 내부가 발굴된 실제 크기 그대로 재현돼 있다.

    또한 13호분에서 발견된 별자리가 새겨진 뚜껑돌이며 봉황 장식 금동관과 집 모양, 사슴 모양, 배 모양 등 다양한 형태의 토기가 출토된 45호분, 철의 왕국 아라가야의 말갑옷이 확인된 마갑총 등 많은 유물을 볼 수 있다. 기록이 적어 미스터리에 가까운 아라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3D로 화려하게 펼쳐 보이는 영상관은 1500년의 시간을 더 가까이 느끼게 한다. 그 외에도 다채로운 부장품을 통해 고분군 내부에 대한 궁금증과 아라가야의 위상을 느낄 수 있는 고분전시관이다.

    이제 말이산고분군은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김해 대성동고분군, 고령 지산동고분군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창녕 교동과 송현동,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고분과 함께 공동으로 등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라가야의 문화유산이 국제사회로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는 날이 머지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행복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내 삶을 사랑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좋은 곳을 찾아가 좋은 감정을 느낄 때다. 말이산 고분능선을 걷는 쾌감은 상당히 짜릿하다. 기분과 자존심을 상승시켜 주는 의미 있는 고분나들이, 경험하지 못한 과거의 시간을 되짚어보는 가치 있는 일이다.

    옥영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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