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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7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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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명인] ⑬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유영희

절도·위엄 있는 무희들의 ‘칼군무’ 열정으로 이어가다

  • 기사입력 : 2022-07-29 10: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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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류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하늘에서 떨어져 갑자기 생겨 난 현상은 아니다. 긴 역사와 문화 속에 잠재해 내려오던 것이 자극에 의해 표출되어 터져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고대로부터 우리민족은 음주 가무를 좋아해 전해져 내려 온 여러 종류의 춤이 있었고, 그 중에서 가장 사랑을 받았던 춤 중에 하나가 칼을 들고 춤을 추는 검무였다. 수천㎞ 상공을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세상이 되었지만, 능수능란하게 권총을 다루는 서부영화가 아직도 인기가 있듯이 검무에 빠져 사는 사람이 있다.

    유영희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유영희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사)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으로 진주검무를 보급하고 있는 유영희 예능보유자는 1947년 산청에서 태어나 함양에서 여중을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고등학교와 대학은 서울에서 다녔으며,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전공했다. 아버지가 진주로 이사해 큰 서점을 경영하면서 여가만 나면 시조창과 기타를 치고 노래하기를 좋아했고, 어머니도 강순영 선생에게 가야금을 배운 이수자였다. 집안 분위기가 이러다 보니 진주에 있는 예술인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서점 주인의 딸이 무용한다는 말을 듣고 2대 진주검무예능보유자 성계옥 선생이 집으로 찾아와 검무를 배워 볼 것을 여러 차례 권유했으나 대학을 갓 졸업한 20대 아가씨 유영희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러다 정금순 한량무 예능보유자가 적극적으로 권유하자 한량무로 먼저 시작했고, 얼마 후 공연이 있어 주모 역을 맡으면서 여러 원로들부터 재능과 끼를 인정받았다. 쉽게 말해 이때 떴고 이때부터 열정을 가지기 시작했다.

    유영희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유영희 진주검무 예능보유자.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 했으며 대학에서 한국무용을 하다 보니 장단과 박자에 귀가 열려 있었다고 말한다. 민속 무용은 춤만 잘 추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장단과 노래와 춤이 함께 가야 하고 무엇보다 호흡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정금순 선생을 따라 다니며 학생을 지도한 적이 있는데, 학생들에게 이점을 강조하며 시범을 보이기 위해 장구를 치니까 우리 선생님이 웃으며 장구 치는 법을 좀 가르쳐 달라고 하기도 했다.

    한량무를 배우면서 성계옥 선생을 자주 찾아가 검무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했다. 전승되어 오던 춤을 해석 없이 그대로만 추는 것 같아 귀찮아 할 정도를 질문을 했지만, 성 선생님은 성격이 소탈하고 열정적이라 짜증내지 않고 잘 가르쳐 주셨다.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선생님이 검무 시범을 보이며 발을 들어 올리면서 “진흙 바닥에 붙어있는 발을 들어 올리는 기분으로 찐득하게 올려야 한다” 하며 설명을 했다. 제자 유영희의 눈으로 볼 때 선생님은 설명과 다르게 발이 바닥을 구르듯 춤을 춰, 이를 말하자 대가이신 성 선생님께서 웃으시며 쉽게 인정해 놀라기도 했다. 한량무 이수자 시험을 볼 자격이 되었으나 못보고, 검무 시험을 먼저 보고 이수자가 되었다. 다른 분야도 비슷하지만 이수자가 되면 다음 단계 전수 조교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내려오는 틀에 벗어나지 못하고 수동적이 되지만, 유영희 이수자는 좀 달랐다.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거행하는 의암별제.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거행하는 의암별제.

    어릴 때부터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바로 진주시내 여러 초등학교에 전화해서 무료봉사로 학생을 가르치겠다고 설득 했으나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한 곳의 교장이 최초로 승낙해 2년을 가르친 후 유등축제 때 수상무대에 초등학생 15명 정도가 나가 4분 정도 공연을 하자 반향이 아주 좋아, 그 후 여러 초등학교와 여중학교에서 원해 검무 지도를 했다. 검무의 미래와 바른 인식을 위해 선생을 배출하는 교육대학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노력했다. 1년 정도 공을 들이자 송모 교수로부터 자신도 배우고 싶다며 연락이 와서 매우 기쁘게 학생들을 가르쳤다. 끊임없이 많은 학생들을 지도했는데, 2010년 예능보유자가 될 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한다.

    유영희 예능보유자의 설명에 의하면 옛날에 남자들이 긴 칼을 가지고 추던 춤을 기녀들이 추자 선풍적으로 인기가 좋았다. 검무가 궁중으로 들어가면서 왕의 신변 안전을 위해 칼이 짧아졌고 주어진 공간인 돗자리 안에서 주로 2명이 추었고, 예술과 상징을 강조하면서 정형화되고 속도가 느려지게 된다. 현재의 빠른 춤에 익숙한 시각으로 보면 검무는 느리고 지루하게 보이지만 옛날에는 빠른 춤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유영희 사단법인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이 진주성 잔디밭에서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거행하는 의암별제 중 헌무에 앞서 상차림(진설)을 점검하고 있다./진주민속예술보존회/
    유영희 사단법인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이 진주성 잔디밭에서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거행하는 의암별제 중 헌무에 앞서 상차림(진설)을 점검하고 있다./진주민속예술보존회/

    진주 검무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문헌으로는 정약용이 1781년경 진주에 왔다가 성행하고 있는 검무를 보고 지은 시 ‘무검편 증미인(舞劒篇 贈美人)’과 진주목사 정현석이 1872년 쓴 ‘교방가요’를 통해 볼 때 진주검무가 오래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진주의 기녀(예기)들이 오래 전부터 논개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남강 백사장에서 검무를 추었다는 말과, 진주 기녀들이 검무를 잘 추어 궁중에 불러가 상을 받아 온 사람이 많았다고 진주지역에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구한말에는 최순이라는 분이 진주교방에서 뽑혀 궁중에 가서 10년 정도 검무를 추다 조선왕조가 망하자 진주로 돌아와 1918년경부터 권번에서 검무를 가르쳐 오늘까지 전승 될 수 있었다.

    진주 검무는 교방에서 주로 4명이나 6명이 추었지만 흔히들 8검무로 알려져 있는 것은 1967년 제12호 국가무형문화제로 지정될 때 최순이의 제자들이 1대 예능보유자로 한번에 8명이 지정되자 시중에 8검무란 명칭이 입에 익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2대 예능보유자는 성계옥, 정필순이었으나 이 분들도 모두 작고했으며 현재 3대 진주검무 예능보유자로 유영희, 김태연 두 분이 활약하고 있다.

    유영희 사단법인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이 진주성 잔디밭에서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거행하는 의암별제 중 헌무에 앞서 상차림(진설)을 점검하고 있다./진주민속예술보존회/
    유영희 사단법인 진주민속예술보존회 이사장이 진주성 잔디밭에서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논개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거행하는 의암별제 중 헌무에 앞서 상차림(진설)을 점검하고 있다./진주민속예술보존회/

    진주검무와 함께 통영검무가 유명한데 두 검무의 차이는 통영검무의 검은 목이 꺾여 있으나, 진주 검은 一자 검 을 사용해 검을 돌릴 때 상당한 숙련이 필요로 한다. 검무복으로 옷 위에 입는 쾌자는 통영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조금 넓어지는 A자지만, 진주는 선이 일직선으로 내려간다. 진주검무 복으로 입는 치마· 저고리는 궁중 여인들의 평상복이며 전대와 전복은 조선시대 무인들의 전통복장이라고 한다.

    유영희 예능보유자에게 싸이나 비티에스 춤을 보는지 묻자, 자주 본다고 하며 이들의 춤에서 힌트와 영감을 얻기도 한다고 말한다. 열린 마음으로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기보다 즐기는 편인 것 같다. 2010년 진주에서 개최된 제91회 전국체전 폐막식 때 타악기에 맞추어 50여 명이 6분 정도 진주 검무로 마스게임을 펼치기도 했고, 2016년 KBS 가요무대 진주특집 때 트로트 음악에 맞추어 진주검무로 오프닝 쇼로 선보이자 원형에서 벗어났다는 신랄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원형은 지켜져야 하겠지만 시대와 사람이 바뀌면 변화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 한다. 발레가 동작으로 표현하듯 검무도 동작으로 표현하는 것이 있는지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엔 맨손으로 춤을 추다 검을 들 때는 신중함과 위엄이 묻어 있어야 하고, 3진 3퇴는 서로가 실력을 탐색하는 과정이며, 활쏘기(깍지때기)는 ‘나 활도 잘 쏠 수 있다’고 뽐내면서 ‘너도 활을 쏠 수 있니?’라고 묻는 동작이라 한다. 연풍대는 함께 친할 수 있음을 표현하고, 한 번 친해보자는 동작이라고 설명했다. 검무에서 보이지 않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장구와 북이고 장단과 박자를 알아야 검무를 잘 출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조평래 소설가
    조평래 소설가

    조평래 (소설가)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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