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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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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독서휴가- 강지현(편집부장)

  • 기사입력 : 2022-08-02 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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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 말, 일본인이 소장하고 있던 그림 한 점이 미국 경매를 통해 우리나라에 돌아왔다. 그림엔 490년 전 조선 중종 때 한강에서 선비들이 뱃놀이하는 풍경이 담겨 있다. 중앙에 우뚝 솟은 매봉산을 중심으로 서울 옥수동 두모포 일대가 펼쳐져 있는데, 봉우리 아래엔 짙은 안개에 잠겨 지붕만 보이는 ‘독서당’이 있고 강에는 관복 입은 선비들을 태운 배가 떠 있다. 조선 초기 실경산수화의 수작으로 평가받는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 얘기다.

    ▼조선시대 세종은 집현전 신하들에게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시행했다. 녹봉은 줄 테니 출근하지 말고 집에서 책을 읽으라는 명이다. 이 제도는 일종의 ‘독서휴가’로, 젊은 문신에게 ‘책 읽는 휴가’를 준 것이다. 임금의 배려로 짧게는 한 달에서 석 달, 길게는 1년 이상의 유급 독서휴가를 받은 선비들은 일상 업무에서 벗어나 학문에 전념할 수 있었다.

    ▼책을 읽으라고 휴가를 주긴 했는데, 유혹에 흔들리기 쉬운 집은 아무래도 공부할 장소로 부적절했다. 사가독서제를 위한 별도의 공간인 ‘책 읽는 집’ 독서당이 탄생한 이유다. 최초의 독서당은 성종 때인 1492년 마포 인근에 지었으나 1504년 갑자사화로 폐쇄됐다. 중종이 1517년 지금의 옥수동 두모포 근처에 새로 지었지만 임진왜란 때 불타 사라졌다. 이후 사가독서제도 점차 흐지부지됐다.

    ▼휴가철이 되면 명사들의 책읽기가 뉴스에 오르내린다.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책도 관심사다. 뭘 읽을지 고민이라면 검색창만 열면 추천도서가 쏟아진다. 시원한 피서지로 도서관 만한 곳이 없고, 집콕 휴가를 즐길 때도 책은 좋은 벗이 된다. 거창 수승대 같은 피서지에선 책을 무료로 빌려주기도 한다. 독서휴가가 별건가. 책 들고 휴가 떠나면 독서휴가요, 마음먹고 책 펼치는 바로 그곳이 독서당이다. 지금은 물놀이하면서 워터프루프북(방수책)을 읽을 수도 있으니 뱃놀이하던 조선 선비 부럽지 않다.

    강지현(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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