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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3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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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우리 집- 공현혜

  • 기사입력 : 2022-08-04 09: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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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할머니는 떠나고 방이 비었다

    아버지는 빈방 매일 쓸고 닦고

    엄마는 밥상을 들고 들어갔다 나오고

    아무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할머니 사진 할아버지 사진 액자가

    거실에 자꾸 내려오고 싶은지

    똑바로 해놓으면 삐뚤해지고

    똑바로 해놓아도 삐뚤삐뚤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 집이 우는 것 같다.


    ☞가족 구성원이 집에서 하는 역할은 가정마다 다를 것이다. 엄마가 밥을 하는 집도 있고 아빠가 식탁을 차리는 집도 있다. 조부모와 함께 사는 집에서는, 할머니가 손주의 밥을 챙기고 할아버지가 등하굣길을 함께 하기도 할 것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그 존재만으로도 가정을 감싸 안는 큰 울타리 역할을 한다.

    요즘은 조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적지만, 할머니가 주는 맹목적인 사랑의 느낌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런 할머니가 떠난 후, 할머니의 방만 텅 빈 것이 아니다. 허전한 마음을 채우지 못해 아버지는 할머니 방을 쓸고 닦고, 엄마는 밥상을 할머니 방으로 들고 갔다가 나온다. 익숙한 사랑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후의 상실감을 아이의 시선으로 담담하게 그려낸 동시이다.

    아빠 엄마의 행동을 보고 아이는 ‘아무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실은 속으로 울고 싶은지 모른다. 할머니 할아버지 사진 액자가 거실로 내려오려고 할 때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우리 집이 아이의 마음을 대신해 울어준다. 그러면 액자 속의 할머니가 우리 집의 등을 가만히 쓰다듬어 줄 것 같다. - 김문주(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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