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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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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문화상대주의와 다원주의-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

  • 기사입력 : 2022-08-09 20:5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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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페인 세비아라는 도시에도 한번 가보고 싶다. 세비아는 로마문화와 아랍문화, 가톨릭문화가 각각의 독립적인 문화 가치를 병존, 침윤, 융합시키면서 〈칼멘〉, 〈카사노바〉, 〈세빌리아의 이발사〉, 〈휘가로의 결혼〉 등의 작품을 탄생시킨 도시다.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곳이 어디 세비아뿐이겠는가.

    베트남도 한국과 같은 한자문화권이지만 한국보다 베트남은 서구적인 자유분방함이 느껴진다. 베트남은 오랜 기간 중국의 영향권에 있었지만 프랑스 지배도 받아서 그런지 동양적이면서도 서구적이다. 베트남이 한국과는 달리 훨씬 자유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회주의 베트남이지만 다원주의적 문화 속성을 지니면서 개인의 삶의 스타일을 존중하고 터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화는 물처럼 흐르고 때로 합수하며 더 크고 풍요로워진다. 타 문화와의 접촉이나 섞임을 피할 수는 없다. 지금 세계는 문화적 상대주의를 존중하며 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요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어느 수집가의 초대〉라는 고 이건희 회장의 미술품 기증 1주년 기념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2021년 이건희 회장 유족은 문화유산 2만1693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근현대 미술품 1488점을 국립 현대미술관에 기증하고, 아울러 근현대 미술품 102점도 광주시립미술관(930점), 대구미술관(21점), 양구 박수근미술관(18점), 제주 이중섭미술관(12점), 전남도립미술관(21점)에 기증했다.

    이건희 회장은 인류 문화의 보존이라는 수집 철학으로 시대와 분야를 넘어 문화유산과 미술품을 수집했다. 이건희 회장은 “문화란 좋고 나쁨으로 우열을 논할 수 없습니다. 문화란 단지 다를 뿐입니다”라는 어록을 남겼다. 최고 경영자로서 스티브 잡스가 “기술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기술에 인문학을 융합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테크놀리지도 문화나 인문학과 만나고 섞이고 융합해야 한다. 잡스의 인문학, 이건희의 문화 마인드가 없이 어찌 오늘의 글로벌 애플이나 삼성이 있었겠는가.

    한때는 문화에 있어서도 제국주의 시대가 있었다. 자국의 문화만이 가장 우수하다는 관점에서 타 문화를 배척하는 자문화 중심주의였다. 경제력과 군사력의 힘으로 자국 문화를 다른 사회에 강요하는 문화적 제국주의의 침탈로 피지배국은 스스로 모멸감과 함께 열등의식을 강요당하기도 했다. 이런 침탈 행위는 약소국으로 하여금 자국 문화 비하를 유발하게 해 문화 사대주의로 빠져들게 했다.

    문화제국주의도 문화사대주의도 발 붙일 수 없는 지금은 모든 국가가 그 자체로 세계의 중심이다. 문화 간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각국의 고유성과 특장의 문화 상대주의를 존중하며 타율이 아닌 자국 스스로 타문화를 수용하고 융합시키며 찬란한 문화적 다원주의의 꽃을 더욱 활짝 피워야 할 것이다.

    이상옥(시인, 창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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