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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9월 30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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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명인] ⑮ 의령큰줄땡기기 보유자 최명웅

“영차 영차” 화합·단결의 큰줄, 인생을 걸어 만들고 당겼다
추수 끝낸 겨울이면 삼삼오오 모여
새끼 꼬아 정월대보름 때 쓸 줄 제작

  • 기사입력 : 2022-08-11 21: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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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조들이 거대한 줄을 만들어 하늘 끝까지 연결하면 북극성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신석기시대부터 벼농사를 해 온 우리 민족은 추수를 끝낸 겨울이면 볏짚 앞에 삼삼오오 모여 새끼를 꼬았다. 그런 후 각각의 동네에서 꼰 줄을 모두 모아 여러 가닥의 줄을 튼실하게 묶은 다음 동네 사람들과 편을 나누어 줄당기기를 하며 놀았다.

    영차! 영차! 줄당기기의 신호에 사람들이 모두 줄에 매달렸다. 강줄기와 주변의 나무들도 응원한다. 그들은 다시 힘을 내어 사력을 다해 줄을 끌어당긴다. 세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듯 아파도 사람들은 결코 줄을 놓지 않는다. 그들의 손에 잡은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정의, 진리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최명웅 명인이 2017년 4월 의병제전 부대행사인 의령큰줄땡기기 행사 사진 앞에서 고를 들어보이고 있다./홍혜문/
    최명웅 명인이 2017년 4월 의병제전 부대행사인 의령큰줄땡기기 행사 사진 앞에서 고를 들어보이고 있다./홍혜문/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0호인‘의령큰줄땡기기’는 음력 정월 보름날 마을 단위 혹은 마을 대 마을로 행해졌다. 1800년경부터는 고을의 행사로 규모가 커져서 온 마을이 참여하는 축제로 정착되었는데 1975년부터 의병제전의 부대행사로 개최해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최명웅 선생은 오세대 명인에 이어 2016년 경상남도 지정 무형문화재 제20호 ‘의령큰줄땡기기’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의령큰줄땡기기보존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명웅 명인은 과거를 회상하며 끊어질 듯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의 삶은 벼농사와 함께 이루어졌다. 황금 들녘을 이루던 벼를 타작하고 나면 누런 짚은 푸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짚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집안을 볼 때면 온 세상을 안은 듯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겨울이면 동네 사람들은 정월대보름에 치를 행사를 위해 삼삼오오 모여 새끼를 꼬았다. 처음에는 손바닥이 열이 나다 나중에 무뎌져 감각이 없어졌다. 그는 손이 거칠어져 거북이 등처럼 딱딱해져도 새끼꼬는 것이 싫지 않았다. 그가 성인인 되어 카투사 복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큰줄의 지름은 그 시간만큼 더 길고 굵어졌다.

    “내가 열일곱 살 때 줄당기기 행사를 위해 묶은 큰 줄은 지름이 어깨까지 올만큼 굵었어요.”

    최 명인은 마흔셋부터 쉰아홉까지 십육 년 동안 동네 이장을 하면서 줄당기기 행사를 분주하게 준비해왔다.

    군청 앞 큰길을 기준으로 물 위 출생지와 물 아래 출생지로 편이 갈라졌다. 물 위가 수줄, 물 아래가 암줄을 맡고 백호와 청룡으로 편을 나누어 힘겨루기했다.

    “각 동네에서 짚을 모아 세 가닥의 왼새끼로 꼰 작은 줄을 지정된 장소로 가지고 와요. 이때 작은 줄을 백오십여개 정도 나란히 놓는데, 가운데는 긴 줄, 두 가장자리에는 짧은 줄이 가게 해요. 그것을 새끼로 엮으며 누벼 고정 시켜 둘둘 굴려서 묶으면 큰 줄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을 반으로 접어 큰 고를 만들고 원줄에 길이 가짓줄(벗줄)을 백 개 정도 달아요. 원줄의 끝을 풀어 꽁지줄을 만들어요.”

    마을 사람들이 줄당기기 행사를 위해 마른 볏짚을 거꾸로 세워 물을 뿌렸다. 동네 사람 세 명씩 한 조가 되어 새끼줄을 종일 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동네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줄을 잇는 모습에 최 명인의 가슴은 뿌듯하고 먹먹했다. 그가 카투사 복무를 마칠 즈음 의령으로 돌아와, 결혼한 것도 어쩌면 새끼꼬기와 줄당기기의 그리움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어 2015년에는 영산줄다리기, 기지시줄다리기, 삼척기줄다리기, 감내게줄당기기, 남해선구줄끗기 등과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공동 등재됐다.

    벗줄을 단 큰줄(원줄)에 장군들이 움직일 깃대를 꽂은 모습.
    벗줄을 단 큰줄(원줄)에 장군들이 움직일 깃대를 꽂은 모습.
    최명웅(가운데) 명인이 사람들과 짚을 계속 연결해 가며 새끼줄을 꼬고 있다./의령큰줄보존회/
    최명웅(가운데) 명인이 사람들과 짚을 계속 연결해 가며 새끼줄을 꼬고 있다./의령큰줄보존회/

    최 명인은 2015년 줄당기기를 지휘하는 두령이 되었다. 그의 나이 만 75세 때다. 최 명인이 장군 복장을 하고 의병제전 가장행렬과 함께 시내를 돈다. 큰 고 앞에 제사를 지내자 풍물패들의 풍악으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다. 수 줄의 큰 고를 암줄의 큰 고에 넣자 하얀 천으로 감싼 비녀목을 든 장정들이 수줄과 암줄이 엮인 고에 찔러넣는다. 풍물패가 다시 한번 울리고 줄을 든 사람들은 함성을 지른다. 최 명인은 백호 팀이다.

    최 명인이 암줄과 수줄이 엮인 거대한 큰 줄의 고에 올랐다. 길이 250m, 무게 50t의 거대한 큰 줄 위다. 그가 지휘봉을 하늘 높이 쳐든다. 풍물패가 악기를 울리고 줄을 든 사람들이 소릴 질렀다.고 에 올라탄 최 명인은 지휘봉을 들었다. 상대 청룡은 키가 커서 힘이 세 보인다. 그가 바람을 타며 지휘봉을 움직일 때마다 기수들이 깃발을 흔들었고 줄을 잡은 사람들은 영차, 영차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뒤로 드러눕는다.

    최 명인이 지휘봉을 들자 여러 장수가 깃대를 펄럭였다. 청룡의 두령 역시 신호하자 타원형의 얽힌 고가 움직인다. 개미 같은 사람들은 땅바닥에서 줄을 잡고 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일까. 앞날에 대한 희망일까. 서로에 대한 의리인지도 모른다. 선조들은 그 단어를 안고 평생을 살아왔다.

    사람들이 줄을 잡은 채 뒤로 드러누우며 힘껏 당긴다. 모두 구호에 맞춰 세상을 끌어당기고 있다. 고에 오른 최 명인은 지휘봉을 휘두르며 상대를 노려본다. 청룡의 고가 다시 당겨진다. 최 명인이 지휘봉을 휘두르자 깃대의 기수들과 줄을 잡은 사람들이 뒤로 드러눕는다. 청룡의 두령도 신호를 보낸다.

    반으로 접은 암줄의 고에 수줄의 고를 끼워넣어 비녀 같은 소나무 대를 끼워넣은 모습.
    반으로 접은 암줄의 고에 수줄의 고를 끼워넣어 비녀 같은 소나무 대를 끼워넣은 모습.

    ‘여엉차! 여엉차!’

    “이기는 요령은 사람들의 팔과 다리가 한 번에 움직이면 이깁니다. 그래야 두령의 지휘봉과 기수들의 깃발과 줄을 당기는 사람들이 함께 움직일 수 있어요. 무엇보다 마음을 비워야 지휘봉과 깃대의 신호를 제대로 읽을 수가 있어요. 또한 상대 쪽 두령과 기수들도 같이 움직여야 고가 수월해져 서로를 제대로 당길 수 있는 겁니다.”

    ‘마음을 비우고 깃대를 봐라. 최명웅 명인이 아침에 사람들에게 일러주었다. 청룡의 고에 백호 팀이 끌려갈 때 최 명인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영차! 영차! 개미처럼 작아 보이는 사람들이 사정없이 앞으로 뒤로 넘어지자 전체의 고가 앞쪽으로 다시 뒤쪽으로 기운다. 그런데 상대편의 줄이 어정쩡하게 앞으로 끌려왔다.

    드디어 그의 백호 편이 이긴 것이다.

    “앞으로 뒤로 여러 번 왔다 갔다 하다 보면 앞으로 엎어지는 쪽이 지게 되어 있어요. 그때 알게 됐지요. 줄당기기에서 진다는 것은 이기는 것을 포함합니다. 그러니 속상해할 필요가 없어요. 반대로 이긴다는 것도 지는 것을 포함하니까요. 우리 편이 이긴 것은 상대가 졌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죠.”


    지난 두령의 시간을 회상하는 최 명인의 얼굴은 미소로 일관한다.

    줄다리기의 승부가 나면 양쪽 팀에서 빈 상여를 메고 나와서 돌고, 이들은 상대 팀으로 가 헛곡을 하고 야유하며 서로 만나면 육탄전을 벌이기도 한단다. 진 팀은 다음에는 꼭 이겨야 한다는 다짐을 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줄 당기기 게임이 끝나면 할머니들이 줄을 끊어서 집으로 가져가 대문간에 걸어놓았다. 그러면 애 못 낳는 사람이 아들을 낳는다고 믿었다. 고를 만들어 큰방이나 문, 부엌에 걸어 놓으면 액운을 막는다고 생각했다.

    홍 혜 문소설가
    홍혜문 소설가

    홍혜문(소설가)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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