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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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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놀이와 노동-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 기사입력 : 2022-08-28 20: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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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박세리의 인터뷰 기사는 작은 충격이었다. 그녀는 은퇴 이후 골프를 거의 친 적이 없다고 한다. 재미가 없기 때문이란다. 기회만 나면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는 아마추어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녀가 누구인가. ‘골프 여제’라 불리는 국민영웅이며, 세계 골프계를 주름잡고 있는 우리나라의 수많은 ‘박세리 키즈’들의 대모가 아닌가. 뼛속까지 골퍼인 그녀가 골프를 기피하다니.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아직 골프가 즐겁지 않다. 보통 선수들도 은퇴하고 나면 ‘명랑 골프’라고 해서 즐겁게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아직 다 내려놓지 못한 모양이다. 필드에 서는 순간 승부욕이 나온다. 은퇴하고 클럽을 잡은 때가 열 손가락 안에 든다. 지인들에게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얘기를 해놨기 때문에 같이 골프하러 나가자는 얘기를 나한테 하지 않는다.”

    그렇구나. 경주마가 생각났다. 경주마는 승부욕이 강하고 작은 자극에도 예민하기에, 퇴역 후에는 승부욕을 억제하는 등 순치 훈련을 거쳐야만 일반 승마용으로 제공될 수 있다고 한다. 박세리도 아마 스스로 그런 순치 과정을 밟고 있는 듯하다. 그녀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사실상 그녀의 인생 그 자체라 할 수 있는 골프가 이제 순치의 대상이 된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남들보다 탁월하며, 그 일을 통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런 삶이 진정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수, 운동선수, 연기자 등이라면 응당 그러한 삶을 누릴 것이라 생각하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의 드러난 삶의 이면에 숨겨진 그림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어느 날 라디오 방송에서 법륜스님의 말씀이 나왔다. 나이트클럽에 가면 무대 아래에서 춤을 추는 사람과 무대 위에서 추는 사람이 있다. 무대 아래에서는 스스로 돈을 내고 와서 놀고, 무대 위에서는 돈을 받고 춘다. 돈을 내는 쪽은 놀이이고, 돈을 받는 쪽은 노동이다. 내가 자발적으로 하면 놀이가 되고, 누가 시켜서 하면 노동이 된다. 기왕 할 일이면 놀이처럼 하라. 대충 이런 내용의 가르침이었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다. 개구쟁이 톰은 폴리 이모에게서 담장에 페인트칠을 하라는 벌을 받는다. 힘도 들지만 친구들이 놀려댈 것이 걱정이다. 그때 벤이 사과를 맛있게 먹으며 걸어와, “저런! 넌 지금 일을 해야 하는 거야?”라고 묻자, 톰이 답한다. “글쎄, 일이라면 일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어쨌든 이 일은 무척 재미있어. 애들이 담장에 페인트 칠할 기회가 어디 매일 있을 것 같니?” 톰의 움직임에 흥미를 느낀 벤은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결국 “이 사과를 모두 줄게!”라고 하며 간청한다. 톰은 못 이기는 척 붓을 넘겨주고는 그늘에 앉아 사과를 먹었다. 그리고 연이어 걸려든 순진한 애들에게 한 사람씩 일을 시키고, 연, 공깃돌, 분필, 장난감 등의 부수입까지 챙긴다. 담장 페인트 칠은 훌륭하게 마무리되었고, 톰은 이모의 칭찬과 함께 상으로 사과까지 받았다.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는 외적인 것과 내적인 것이 있다. 외적 동기는 금전 등 외부에서 주어지는 보상이고, 내적 동기는 즐거움이나 호기심처럼 내부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내적 동기는 놀이를 만들고, 외적 동기는 노동을 만든다. 보상에 집중하면 즐거움, 흥미, 창의성 등의 내적 동기가 저하되고, 보상이 사라지면 욕구도 함께 사라지고 만다. 평생 경쟁과 승부라는 외적 동기에 따라 오로지 움직였던 골프선수라면 어련할 것인가. 골프를 너무 잘 알기에 오히려 그 진정한 매력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톰 소여는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하여 신나게 일하게 만들고, 거기다 일을 시켜준 대가까지 받아낸다. 그러니 노동과 놀이는 본래 하나다. 단지 대하는 관점과 태도가 다를 뿐이다. 귀하와 귀 조직원은 놀이를 즐기는가, 힘든 노동을 하는가.

    허성원(신원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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