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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6일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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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7) 또 보자, 건강하게 잘 지내레이

미용실서 만난 어릴 적 동네언니… 할매는 소녀가 되었다

  • 기사입력 : 2022-08-28 20:53:27
  •   
  • 8월 넷째주이자 개업 7주차를 맞은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단골 고객이신 빈달성(83) 어르신은 지난주 “파마할 때가 됐는데 한 번 태워줄란교?”라고 하셨는데요, 개업 이후 사상 첫 ‘심부름 예약’을 하신 겁니다.

    “예예, 됩니다. 무조건 됩니다.”

    빈달성(오른쪽)씨가 파마를 하기 위해 찾은 의령군 궁류면 궁류시장 내 궁류미용실에서 결혼하기 전 함께 자란 두 살 터울의 동네 옆집 언니 최씨를 3년 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빈달성(오른쪽)씨가 파마를 하기 위해 찾은 의령군 궁류면 궁류시장 내 궁류미용실에서 결혼하기 전 함께 자란 두 살 터울의 동네 옆집 언니 최씨를 3년 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다.

    ◇미용실에서 만난 반가운 사람은

    흔쾌한 대답 이후 일주일 만에 찾은 마기꾼들(마을기록꾼들)은 지난 25일 오전 10시 어르신을 모시고 의령군 궁류면에 단 한 곳뿐인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어르신은 두 달에 한 번꼴로 이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시는데, 마을에서 왕복 8㎞ 거리라 전동스쿠터로 다녀오시기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고 하시는군요. 버스가 하루에 두 대(오전 9시 30분, 오후 3시 30분)뿐이라 버스로 다녀오시기도 마뜩잖고요.

    137년째 운영 중인 궁류미용실. 태풍으로 떨어진 간판이 미용실 입구 한편에 놓여 있다.
    137년째 운영 중인 궁류미용실. 태풍으로 떨어진 간판이 미용실 입구 한편에 놓여 있다.

    빈달성 어르신이 미용실 의자에 앉자 원장님은 능숙한 손놀림으로 금세 파마롯드로 머리를 뽀글뽀글 빡빡하게 말아 고무줄을 겁니다. 그리곤 이내 분홍색 꽃이 수놓아져 있는 보자기를 씌워드리는데요, 의자 왼편 미용실 한켠 방바닥에는 같은 보자기 차림의 할머니 세 분이 앉아서 쉬고 계셨습니다.

    이때 한 할머니가 뚫어져라 빈달성 어르신을 쳐다보시는데요.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이기 누고? 니였나. 얼매(얼마)만이고. 말소리 들어보이 아는 사람인가 했더만은 니였네. 언니를 봤으면 아는 척을 해야 할 거 아이가.”

    “언니고 뭣이고 간에 머리 우에(위에) 덮어 씨고(쓰고) 마스크로 입을 덮어놓으이 누가 누군지 어데 우째 아노. 그래 잘 사요(살아요)?”

    “내야 잘 산다.”

    “아이고 이기 누라고 참. 말마따나 입을 서로 다 막아놓으니 알 수가 있나. 참말로 얼매 만인교 그래.”

    “너거 영감 세상 안 베맀을(버렸을) 때 그때 너거 동네 한번 안 갔나 그래. 그라고 또 한번 보고 얼마 만에 보노? 한 3년 됐제?”

    “더 됐구로.”

    “근데 야들(얘들)은 누고? 와이래 사진을 자꾸 찍어샀노?”

    “입사마을서 심바람(심부름) 해준다 안 카나. 일 좀 시킬라꼬.(웃음)”

    빈달성씨가 파마를 하며 어르신들과 대화하고 있다.
    빈달성씨가 파마를 하며 어르신들과 대화하고 있다.

    빈달성 어르신에게 말을 건 어르신은 바로 결혼하기 전 유곡면 마장마을에서 함께 자란 두 살 터울의 동네 옆집언니 최씨 어르신이었습니다. 먼저 미용실에 도착해 머리를 말고 기다리다 어디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가 자꾸 들려 누군가 해서 봤더니 동생이었던 겁니다. 보자기 쓰고, 마스크도 착용한 터라 얼굴이 보이지 않아 도통 누가 누군지 알 수 없었던 두 분. 이윽고 목소리로 알아보고 마스크를 잠시 내려 얼굴을 확인한 뒤 손을 부여잡으셨습니다.

    두 분, 영락없는 소녀의 모습으로 돌아가신 걸요. ‘자식은 몇이나 낳았노?’, ‘자주 봐야 자식이지’, ‘요새 농사는 쪼매 짓나?’, ‘그 할매는 아직 살아계시제?’ 등 얼굴을 서로 알아본 이후로 한참 동안이나 밀린(?) 안부 주고받기에 여념 없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내나 한 새끼 같이” 커오다가 결혼하면서 최씨 어르신은 궁류면 토곡마을로, 빈달성 어르신은 입사마을로 비슷한 시기에 마을을 떠나셨는데요. 65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리워도 여간해선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된 겁니다.

    참, 최씨 어르신의 부친께서 빈달성 어르신이 결혼할 수 있도록 당시에 중신을 든 인연도 있다고 깨알같이 알려주시는군요.

    3파마를 하고 웃는빈달성씨.
    3파마를 하고 웃는빈달성씨.
    의령군에서 지원하고 있는 노인 이·미용권.
    의령군에서 지원하고 있는 노인 이·미용권.

    머리가 뽀글뽀글 예쁘게 돌돌 말리는 2시간의 시간 동안 보자기를 두른 빈달성 어르신과 마기꾼들은 읍내로 나가 볼 일도 보고 다시 미용실로 돌아왔습니다. 최씨 어르신,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동생과 헤어지기 아쉬워서였을까요. 빈달성 어르신이 읍내에 갔다 다시 돌아와 머리 단장을 다 할 때까지 기다려주셨습니다. 활짝 웃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은 김승권 사진꾼이 최씨 어르신에게 “동생 좀 웃겨달라”는 주문(?)을 했는데요, “아이고 웃기기는 말라꼬 웃기노” 하시면서도 연신 “웃어라, 웃어라” 말씀하시는군요.

    “다 늙어 쭈글한 거 웃겨서 뭐 하노. 아이고 우스브라(우스워라), 웃겨 죽겠다 참말로.”

    환하게 웃고 계신 두 어르신의 대화의 온기가 마기꾼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언니요, 먼저 간다.”

    아쉬운 작별의 시간이 왔습니다.

    “또 보자, 건강하게 잘 지내레이.”

    쇠락한 의령군 궁류면 궁류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쇠락한 의령군 궁류면 궁류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궁류시장의 간판이 떨어져 있다.
    궁류시장의 간판이 떨어져 있다.
    인적 없는 궁류시장.
    인적 없는 궁류시장.

    ◇장이 서지 않는 5일장

    이날 여러 어르신들이 찾은 궁류면의 미용실은 면 소재지에서 1㎞ 거리 궁류시장 골목 중간에 있습니다. 궁류시장은 1일과 6일마다 5일장이 열리는데요. 그러나 이제 이름만 남았다시피 할 정도로 소멸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의령장, 신반장과 함께 의령 안에서 손꼽히는 5일장이었던 궁류시장. 빈달성 어르신이 중년이었던 30~40년 전만 해도 산나물과 열무, 각종 과일을 들고 장에 나가면 엉덩이 바닥에 붙이기 무섭게 팔고 짭짤하게 돈을 벌어올 정도로 시장은 북적거렸다고 하셨는데요.

    지금은 장날에도 오전 7시 40분쯤 상인 3명만이 30분가량 들르는 정도로 겨우 장의 명맥만 남아있을 정도입니다. 지난 25일 찾은 궁류시장에도 시장 입구 정자인 ‘압구정’에 어르신 세 분이 한가로이 더위를 피하고 있을 뿐 조용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코로나19는 가뜩이나 드문 발길을 더욱 뜸하게 만들었고요. “IMF 위기도 버텼는데, 코로나 위기 이후에는 도저히 못 버텨내겠다”는 시장 내 식당 사장님의 말에서 소멸 위기를 더욱 실감합니다. “대목 앞이라고 사람이 더 오겠습니까. 이제 안 오지예.” 마기꾼들이 취재 때마다 들러 식사하는 시장 내 중국집 사장님도 5일장의 소멸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문을 닫은 가게들.
    문을 닫은 가게들.
    문을 닫은 가게들.
    문을 닫은 가게들.

    시장은 ‘만남의 광장’이기도 합니다. 장을 찾을 사람이 적으니 장꾼이 오지 않고, 장꾼이 오지 않으니 발길이 뚝 끊긴지도 10년이 훌쩍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장날 만나서 사람 사는 이야기 주고 받던 궁류면 마을 곳곳 어르신들의 만남은 이제 더더욱 귀해졌고요.

    “장이 얼~마나 좋았다고. 원래 아지매들 장에 오면 다 만났는데 장이 안 서니 보고싶어도 못 보는거지. 이제 여기밖에 없어예.”

    궁류시장 내에서 37년 동안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간판이 떨어져 보이지 않아도 어르신들이 알아서 찾아오시는 이 미용실이 이제 만남의 광장 역할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글= 도영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지역소멸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영상은 유튜브 경남신문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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