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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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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큰일 났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 기사입력 : 2022-09-06 19: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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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큰일 났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창궐해 벌써 3년째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가 빙하를 녹이고 홍수를 일으키고 지구와 인류의 존재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세계 최대의 핵무기를 보유한 군사 대국 러시아가 스스럼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 최강을 다투며 사사건건 대립하고 우리나라에게도 선택적 줄 서기를 종용하고 있다. 중국은 우리를 속국인 양 깔보고 있고 미국은 일본을 편들며 중요한 자리에 우리를 끼워주지도 않는다. 분단의 속박은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전 세계적 인플레와 무역 혼조로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젊은이들은 연애-결혼-출산도 다 포기하고 취업도 집 사기도 포기하고 그것이 인구 감소, 생산력 저하, 삶의 질 저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저소득에 고물가, 먹고살기도 만만치가 않다. 머리에 붉은 띠 두르고 모여 주먹 쥐고 소리를 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세계도 나라도 개인들도 깎아지른 절벽의 잔도를 후들후들 지나고 있다. 큰일 났다.

    그런데 세상이 너무 조용하다. 모두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뒷짐만 지고 있다. 이런 걸 수수방관이라고 했던가? 이게 더 큰일이다. 아니, 나라 안이 좀 시끄럽기는 하다. 좌우 대립과 상호 비방전은 매미 소리보다도 개구리 소리보다도 더 시끄럽다. 이건 더 큰일이다. 심지어 좌는 좌대로 우는 우대로 그 안에서조차 패거리가 갈려 서로 쥐어뜯는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결국은 다 와각지쟁이다. 대체 누구를 위해 그 종은 시끄럽게 울리는가?

    진지하고 심각하게 저 세계적-시대적 문제들을 고민하는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철학을 위시한 소위 인문학이 이 문제들을 부여안고 씨름을 했다. 그런데 이젠 그 선수들조차 설 자리가 없다. 관객이 전혀 없는 건 둘째치고 씨름장 자체가 폐쇄 명령에 떨고 있다. 거의 퇴출이다. 상당수 인사들이 강진으론지 유배를 떠나 돌아올 기약도 없다. 문제는 지속된다. 아니 나날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우리가 역량이 없는 것일까? 못난 민족이어서일까? 그건 아니다. 유튜브나 틱톡 등에서 많은 사람들이 떠들고 있듯, 우리는 대단한 역량을 지닌 우수한 민족이다. 지난 100년의 행적이 그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우리는 못난 조상들과 고약한 이웃 일본 탓에 나라를 잃는 민족사 최대의 치욕을 겪었지만 끈질긴 독립투쟁을 하며 결국 그 마수를 벗어났고, 어처구니없는 남북전쟁으로 전 국토가 초토화됐지만 그 잿더미에서 불과 몇십 년 만에 세계 10위권 강국으로 우뚝 섰다. 칼-돈-손-붓(경제력-군사력-기술력-문화력) 모든 분야에서 우리는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산업화-민주화-정보화의 성과는 세계가 찬탄할 만큼 눈부신 바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이 ‘큰일 난’ 상황은 무엇 때문일까? 결국은 사람 때문이다. 우리를 일으킨 것도 사람이고 망가뜨린 것도 사람이다. 사람의 ‘질’이 결국 문제다. 사람에 대해서도, 그 행동에 대해서도, 특히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도, 그 ‘질’에 대한, ‘어떤’에 대한 질문이 없다. 그게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어떤’ 인간이 돼야 하고,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야 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그 옛날 한 고전 영화의 제목처럼 ‘쿠오 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를 우리는 묻지 않으면 안 된다. 10년 후 100년 후 우리가, 우리나라가, 세계가 어디로 가 있을지를 미리 내다보며 지금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하면 코로나를 종식시킬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전쟁과 남북 분단을 끝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건강한 지구를 되살릴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는가. 철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그 목소리가 다 죽어간다. 큰일 났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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