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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5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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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소멸 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9) 그건 사랑이었네

농활기자단 ‘추석 구슬땀’… 일손 부족한 마을에 단비

  • 기사입력 : 2022-09-12 20: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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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재 아버님, 저희가 일 잘 한 기 맞겠지예? 저희 땜에 농사 베린거(버린거) 아닌가 걱정이네예.”(심부름꾼)

    “추석 지나서 촉(싹)이 잘 올라오믄 잘 한 기고, 안 올라오믄 못한기지예.”(신정오씨)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취재팀 ‘마기꾼들(마을기록꾼들)’이 마을주민이 되어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 주민들의 삶을 기록해 독자들에게 보여드린지도 어느덧 9주가 지났습니다. 마을주민들의 삶을 더 가까이 지켜보면서 취약한 교통, 의료 인프라 등 지역소멸의 실태를 그동안 여러 편으로 보여드렸는데요. 교통이나 의료 문제 못지않게 일손 부족 문제도 심각했습니다. 젊은층이 지역을 떠나고, 남아계신 분들은 나이 들어가니 일손이 모자란 건 당연하지요. 심부름센터가 이곳을 찾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을 찾은 경남신문 기자들이 양파 파종 후 덮을 상토를 나르고 있다.
    의령군 궁류면 입사마을을 찾은 경남신문 기자들이 양파 파종 후 덮을 상토를 나르고 있다.

    ◇차상호 단장이 이끈 경남신문 농활단이 한 일은?= “아이고, 10명이나예? 그마이(그만큼) 와주시면 올해는 참 일이 수월하지예. 근데 진짜 10명이나 올 수 있습니꺼?”

    네, 됩니다. 경남신문 이름을 걸고 하는 심부름센터인데 못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이왕 마음먹고 일꾼이 되기로 했으니 제대로 해야겠죠? 그래서 마기꾼들 4명만으론 하기 벅찬 일을 도와줄 농활단이 탄생했습니다. 농활단은 한국기자협회 경남신문지회(지회장 차상호)에서 흔쾌히 꾸려줬습니다. (신문사에서도 농활단을 위해 금일봉으로 뜻을 같이 했습니다.)

    농한기인 음력 7월과 8월 초순을 지나 추석 즈음하여 이제 의령 입사마을도 본격적으로 농삿일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일교차가 15도 정도가 되는 무렵입니다. 논에선 조생종 벼 수확이 이미 시작되는가 하면 밭에선 고추를 모두 뽑고 새로 땅을 고른 뒤에 김장채소 준비가 한창이기도 합니다. 논밭이 크건 작건 아이의 고사리손이라도 반가울 때입니다. 이제 슬슬 양파와 마늘도 심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바로 양파 파종입니다. 차상호 농활단장이 이끈 농활단 기자 10명과 마기꾼 4명, 모두 14명은 지난 8일 오전 9시에 입사마을로 향했습니다. 차상호·이슬기 기자는 연차휴가를 내고, 나머지 기자들은 추석 연휴 휴일 중 하루를 반납하고 참여할 정도로 의욕이 넘쳐납니다. 열심히 하되 폐를 끼치지 않는 게 농활단장의 목표입니다. 의욕이 식기 전에(?) 많은 일을 시켜야만 합니다.

    양파 파종에 앞서 비닐을 제거하고 있는 경남신문 농활기자단.
    양파 파종에 앞서 비닐을 제거하고 있는 경남신문 농활기자단.
    기자들이 양파 씨앗을 파종한 밭에 상토를 덮어주고 있다.
    기자들이 양파 씨앗을 파종한 밭에 상토를 덮어주고 있다.

    입사마을 남성 최고령이신 신판도(93) 어르신의 막내 아들이자, 입사마을 최연소 주민인 신광재(13) 군의 아버지인 신정오(53)씨의 양파밭이 농활 장소입니다. 입사마을 성인 가운데 최연소 주민이기도 한 신정오씨는 벼농사와 양파, 마늘 농사를 주로 지으시는데요. 양파 재배면적만 30마지기가 될 정도로 농사를 크게 짓습니다. 대부분 혼자서 말이죠.

    농활단이 도착하기 전 광재 아버님은 육묘할 밭을 미리 갈아 골을 타서 두두룩하게 만들어놓은 두둑에다 천천히 씨를 뿌리고 있었습니다. 손이 새지 않게 씨를 뿌리기 위한 농부의 손길이 세심합니다.

    농활단이 할 일은 30미터남짓 길이의 두둑 10여곳에 덮어놓은 비닐을 걷고 씨를 뿌린 이후 복토, 즉 흙을 덮는 일입니다. 광재 아버님이 손이 샌 데 없이 씨를 뿌리는 것만큼이나 적당한 두께로 골고루 씨앗을 잘 덮는 게 이날 할 일의 핵심입니다. 너무 두껍게 덮으면 발아일수가 길어지고 발아율도 떨어지니 전체 농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농활단은 1)원예용 상토 50L들이 포대 수십개를 고랑마다 곳곳에 내려놓고 뜯은 뒤 2)납작한 대야에 상토를 덜어 3)깨를 까불듯 위아래로 흔들며 골고루 두둑에 흙을 뿌리는 단순하지만 고된 일에 집중합니다.

    처음 해본 일인데 쉬울리가요. 채 20분도 안 돼 허리가 아프고 숨도 차오릅니다. “몸살 날 건데”라고 걱정했던 신정오씨의 말이 빈말이 아니었군요. 골고루 적당한 두께로, 그리고 아기를 다루듯 살살 흙을 잘 덮어줘야 하는데 어떤 곳은 너무 많이, 또 어떤 곳은 너무 적게 흙을 덮은 게 눈에 들어오는군요.

    “어? 어? 그라믄 안 됩니더”. 한곳에 많이 뿌린 상토를 옆으로 흩뿌릴 땐 씨앗이 쓸려가지 않게 더 신중해야 하는데요. 서툴고 투박한 기자들의 손놀림 때문에 농부는 애타기도 합니다. 전반적으론 너무 적은 양을 뿌리는 바람에 두세 번씩 왔다갔다 다시 흙을 덮기도 하고 말이지요.

    기자들이 입사마을 신정오씨 양파밭에서 일손을 돕고 있다.
    기자들이 입사마을 신정오씨 양파밭에서 일손을 돕고 있다.
    경남신문 기자들이 양파 파종 오전 작업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경남신문 기자들이 양파 파종 오전 작업을 마친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대를 이어 전해지는 마음= 오전 10시 30분. 농사에 서툰 기자들이 잠시 장갑을 벗고 목을 축이며 숨을 고를 무렵. 광재 어머님은 집에서 직접 끓인 호박죽을 일일이 그릇에 덜어 저희에게 건네주셨는데요. 음식을 한두 숟갈 뜨고는 배부르다며 더 이상 먹지 못하는 ‘소식좌’ 어태희 기자의 그릇도 바닥이 보입니다. 호박죽뿐이었을까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하다보니 어느새 시계를 보지 않아도 배꼽시계가 울렸는데, 때마침 정오무렵입니다. 이 때를 알고 신정오씨 부부는 감자탕, 산나물, 꼬막무침을 곁들인 푸짐한 한상을 차려주시는군요. 기자들의 감탄사가 돌림노래처럼 이어집니다.

    일이라는 게 끝이 없지만, 끝나지 않을 듯한 일도 손이 많으면 금방 끝나는 법. 농활단 14명이 밥심으로 합심해 일을 거들다보니 신정오씨 부부가 일꾼 2명을 데려와 해질 무렵에야 겨우 끝낼 일을 오후 2시 무렵에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물을 뿌려줘야 합니다. 고랑마다 호스를 쭉 펼치기 위해 뛰는 일은 차상호·박준영·김용락 기자가 자원했습니다. 물을 트니 이내 호스가 빵빵하게 부풀어오르고 금세 포물선을 그리며 두둑을 흠뻑 적시기 시작하는군요. 일을 마치고 흙묻은 옷을 툭툭 털어내던 기자들 얼굴을 보니 미소가 번지고 있습니다.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무지개를 걸었고, 산들바람을 타고 광재 아버님에게도 미소가 번졌습니다. 곧 싹이 흙을 뚫고 잘 올라 오겠지요?

    “잠자고 있는 아기같지요? 이불 따뜻하게 덮어주고 촉촉하게 물도 적셔줬으니 잠에서 금방 깰 겁니다. 경남신문에서 잘 흐치쓰이(뿌렸으니) 잘 안나겠습니꺼?”

    신정오씨는 신판도 어르신으로부터 농사를 물려받아 터전을 지키며 가족도 지키고 있는 성실한 농부입니다. 광재 군은 평소 학교 마치고 마을로 돌아와 가방을 벗어놓고선 들에 있는 아버지에게로 곧장 향하는 착한 아들입니다. 아버지 신판도가 힘들게 농사 지어 가정을 꾸려온 걸 알았던 막내 신정오, 그리고 아버지 신정오가 할아버지처럼 농사짓는 걸 알았던 막내 신광재가 들로 달려간 마음, 그건 대를 이어오는 사랑일 겁니다.

    “직원분들 모두 일하니까 힘드셨죠? 저희 아버지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저씨.” 농활단이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이날 저녁, 광재 군이 저에게 전한 ‘대견한 메시지’를 보며 심부름꾼은 한참 눈물을 쏟았습니다.

    제대로 효도 한번 못하고 20년 전 보내드린 아버지가 이날 유독 더욱 그리운, 저또한 농부의 막내아들입니다.

    글= 도영진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지역소멸극복 프로젝트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영상은 유튜브 경남신문 채널을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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