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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8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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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이 만난 우리 시대의 명인] (19) 경남 무형문화재 한지장 이상옥

‘외발뜨기’로 제작하는 전통한지 65년 ‘외길’

  • 기사입력 : 2022-09-15 21: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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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이 한국의 전통한지(韓紙) 매력에 푹 빠져 있다. 세월에 바래고 훼손된 고미술품이나 고가구를 옛것 그대로 복원하고, 천 년 전 고서들을 상하지 않게 보관하는 마법의 재료로 전통한지를 찾고 있어서다. 루브르 박물관 복원사들이 한지를 이용해 복원한 문화재로는 승리의 여신상, 다빈치의 모나리자, 구텐베르그의 성경 등 우리에게 알려진 이름난 문화유산들도 많다. 종이를 으깨고 짓이겨서 낡은 조각상과 가구, 그림과 액자 등에 생긴 구멍이나 흠집을 메우고 복원하는 일에 우리 전통한지가 선택된 이유는 어떠한 화학성분이나 유료가 섞이지 않은 100% 자연소재로 만들어졌기 때문.

    그런데 정작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에게 한지는 그저 사대부의 문집이나 사찰의 불경, 혹은 한옥의 창호지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정도다. 전통한지가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같은 선진국에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니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면서도 우리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살아온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생활양식의 변화로 한지의 쓰임새가 현저히 줄어들고 그 자리를 서양식 종이와 유리, 플라스틱이 차지한 지 오래. 만드는 공력에 비해 제값을 받을 수도 없고 그나마 찾는 이도 적기 때문이다. 8월 현재 국내서 전통한지를 생산하는 공방은 19곳에 불과하다. 국산 닥나무 수급이 어려워 원료의 80%를 태국·라오스·베트남 등에서 화학약품 표백과 방부처리를 한 상태에서 수입하고 있다.

    함양 마천면 창원마을 공방서 이상옥 한지장이 흘림뜨기(외발뜨기)를 하고 있다.
    함양 마천면 창원마을 공방서 이상옥 한지장이 흘림뜨기(외발뜨기)를 하고 있다.

    현재 지리산 일대에서 전통방식인 흘림뜨기(외발지, 음양지)로 닥종이를 생산하는 한지공방은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 이상옥 공방이 유일하다. 4대째 140년 세월의 가업을 잇고 있는 이상옥 한지장(75·경남무형문화재 제46호). 그의 뒤를 이어 두 아들이 전승교육을 받고 있으니 5대째 대물림을 하는 중이다.

    “아버지 밑에서 열 살 무렵부터 종이일을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올해로 65년입니다. 돌아보니 참 아득한 세월이네요. 이 힘든 일을 자식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끝내려고 무던히도 마음먹었는데…지들이 꼭 한 번 제대로 해보겠다고 해서 여기까지 오긴 왔지요. 참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그의 한지 제조법은 12단계의 정교한 과정을 거친다. 모든 작업은 100% 수작업이고, 100% 천연소재이고, 100% 전통기법을 따르기 때문에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것도 추운 겨울에 해야 가장 좋은 품질을 얻을 수 있다.

    닥나무는 서리가 내리는 11월부터 약 두 달 동안 가지를 잘라서 20㎏ 정도가 되게 한 단씩 묶어서 쌓아두었다가 12월 말쯤 30단쯤 들어가는 아주 큰 가마솥에 넣고 찌는 ‘닥무지’ 작업이 본격적인 시작이다. 이 작업을 1년에 15~20회 정도 하는데 그 양은 자그마치 800㎏에 이른다.

    닥나무 재배지.
    닥나무 재배지.
    청태를 벗기는 백닥 작업.
    청태를 벗기는 백닥 작업.

    닥을 찔 때 수증기가 밖으로 빠지지 않게 비닐로 둘러 봉하고 6~8시간 정도 불을 지피는데 물과 불이 씨름하며 나무를 익혀야 껍질이 잘 벗겨진단다. 이어서 아주머니들이 달려들어 닥나무 단을 옮겨다 껍질을 벗겨 말리는 작업을 하는데 이를 ‘피닥’이라 한다. 말린 닥나무 껍질을 다시 흐르는 냇물에 넣었다 뺏다 이틀 정도 반복하면 청태라 불리는 겉껍질을 벗기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김장을 끝내놓고 한창 추운 날씨인 12월 말부터 2월 초까지 공방 작업장에 모여 한 달가량 ‘백닥’이라 부르는 청태 벗기기 작업을 하는데, 일이 힘든 만큼 흑돼지를 잡고 닥나무식혜를 내놓으며 한바탕 동네잔치를 열기도 한다.

    닥나무 백닥 건조.
    닥나무 백닥 건조.

    청태를 벗긴 백닥을 햇살에 일주일 정도 말리는데 이렇게 하면 화학약품을 쓰지 않고도 자연 표백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렇게 해서 거둔 백닥은 50㎝ 길이로 절단하여 하루 정도 맑은 물에 적셔두었다가 잿물을 넣은 큰 닥솥에 4시간 정도 다시 삶는다. 그리고 닥을 꺼내어 하루 이틀 정도 물기를 뺀 후 다시 찬물에서 잡티를 제거하며 깨끗이 씻은 후 넓은 닥돌 위에 올려놓고 방망이로 두들기고 찧어서 곤죽상태로 만든다. 이 곤죽 닥과 닥풀(황촉규)을 물과 적당한 비율로 섞어 지통에 부은 후 2인 1조가 되어 긴 막대기로 200~300번 골고루 저어주면 종이 뜨기 전 작업을 마치게 된다. 다음으로 제일 중요한 종이를 발로 뜨는 초지작업을 하게 되는데, 나무로 만든 발틀을 전후좌우로 흔들며 물질을 하면서 종이를 뜨게 된다. 습지 두 장을 서로 엇갈리게 붙여 한 장의 한지를 만드는데 이를 음양지라 부른다. 이상옥 장인의 외발뜨기 기법은 신라시대 이후 지리산 일대 사찰에서 전해온 그대로다.

    지리산 닥종이.
    지리산 닥종이.

    “일본에서 들어온 쌍발뜨기에 비해 작업속도는 느리지만 우물 정(井)자로 모양으로 얽혀 만들기 때문에 종이 질이 고르고 내구성이 훨씬 좋습니다. 보통 생나무 닥 15㎏을 가공하면 고작 600g, 25장의 종이 밖에 얻지 못합니다.”

    그는 10세부터 부친을 도우며 자연스럽게 닥종이 제지술과 참닥나무 재배법을 전수받았다. 초등학교 졸업 후 14세부터는 부친을 대신해 생업으로 닥종이를 만들기 시작할 정도. 그가 터잡고 있는 마천 일대 지리산 토질은 게르마늄(1.90㎎/㎏) 함유량이 많아 섬유질이 풍부하여 질 좋은 닥종이를 생산할 수 있었다. 그의 한지가 들어간 대표적 문화재로는 합천 해인사(팔만대장경 목판인쇄물), 해남 미황사(천불도 보존처리, 괘불탱 모사도제작), 구례 화엄사(영산회괘불탱 보존처리, 삼신불탱 모사도제작), 양산 통도사(괘불탱 보존처리), 서암정사(원응 큰스님 사경통선, 화엄경 금니사경) 그밖에도 전국 100여점의 주요 국보, 보물, 지방문화재 보존처리에 사용되고 있다.

    그는 한지 생산을 위해선 뭐니 뭐니 해도 소득보장이 되지 않아 닥나무 재배농가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는 것부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주, 원주, 경북(안동, 문경, 청송, 포항, 의성) 등 일부 지자체에서 한지산업육성 지원조례를 제정하여 닥나무 생산장려와 수매사업을 하고 있는 사례를 참고해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전통한지이력제를 도입하면 생산하는 공방, 유통업체, 소비자 모두가 만족하고 한지 가격도 안정될 수 있습니다.”

    도내에는 의령군 신현세 한지장(국가 무형문화재)과 함양군 이상옥 한지장(경남 무형문화재) 2명만이 전통한지를 생산하고 전승교육까지 병행하고 있는데 최소한 도내 문화재 복원·보수만이라도 전통한지 사용을 의무화하면 좋겠다고 그는 말한다.

    “전통 화지를 2014년 유네스코에 등재한 일본은 전국 41곳 100여개의 공방에서 화지를 생산하고 있고, 박물관과 체험관도 100여곳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각 공방은 지자체와 매년 화지 축제를 공동 개최하고 전수자(후계자)에게도 정부가 지원금을 주고 있고요. 일본보다 앞선 2009년에 유네스코에 전통종이인 선지를 등재한 중국도 북경에 종이 공방을 만들어 각 지역 종이장인(기술자)들을 특별채용해 주문자(발주처)의 요구에 맞게 종이를 생산해 공급하고 있습니다. 많이 지원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버틸 수 있게 조금만 신경을 써달라는 것입니다. ”

    운명이라 생각하고 칠십 평생을 전통한지 제작에 받친 그의 작은 소망이 이제는 이루어지길 기대해 본다.

    김우태(시인)
    김우태(시인)

    김우태(시인)

    ※이 기사는 경남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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