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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0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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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948) 백세문교(百世聞敎)

  • 기사입력 : 2022-09-27 0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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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에서 주자(朱子)의 문집인 〈주자대전(朱子大全)〉을 간행한 것은 1543년이 처음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주자의 저서 가운데서 〈사서집주〉, 〈주자가례〉 정도가 우리나라에 전래돼 있었을 뿐이다.

    경서 주석 등에 주자의 학설이 많이 들어 있으므로 주자의 문집과 〈어류〉 등을 참고할 필요가 절실했다. 학문 연구와 교육을 위해서 꼭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수입해 간행해서 보급해야겠다고 생각한 분이 모재 김안국이었다.

    1518년 명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주자대전〉, 〈주자어류〉는 물론이고, 〈이락연원록〉 등 주자의 저서나 관계되는 서적을 많이 구입해 왔다. 곧 간행해 보급하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그다음 해인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나 사림들이 축출됐고, 모재도 추방돼 실행할 수 없었다.

    모재는 19년 만인 1537년에 다시 조정으로 돌아왔다. 국가 출판국인 교서관(校書館)의 제조(提調)가 돼 〈주자대전〉의 출판에 착수해 1543년 간행했다. 겨우 20질을 찍었다고 한다. 왕실, 경연, 춘추관 등에 납품하고 나니 개인이 입수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퇴계 선생과 미암 유희춘은 교정에 공이 많았기 때문에 한 질 받았다. 충재 권벌은 중중 임금이 직접 하사했다. 하서 김인후는 인종이 자기 스승이라 하사했다. 동시대의 대학자인 회재 이언적 등은 〈주자대전〉을 읽었다는 기록이 없다.

    퇴계 선생은 1543년에 입수해 읽기 시작했다. 〈주자대전〉에 나오는 교훈은, 마치 병의 증세에 맞게 처방하듯 상대의 자질이나 수준에 맞게 주자가 교육하는 내용이었다.

    ‘이 좋은 책을 혼자 보아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하고, 편지 가운데서 꼭 필요한 내용을 뽑아서 만든 책이 〈주자서절요〉다. 1556년에 완성이 됐으니 13년 동안 노력해 뽑은 것이다. 그때부터 주자의 글을 일반 학자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다만 〈주자서절요〉가 주자의 시문 중에 서신만 선발한 것을 아쉬워해 제자 고봉 기대승은 1557년에 시문 전반에 걸쳐서 선발한 〈주자문록〉을 편찬했다. 퇴계를 만나기 전의 일이니 두 분의 의기가 통했던 것 같다.

    제자 죽유 오운 역시 〈주자서절요〉가 서신뿐인 것을 아쉬워해 시문을 선발해 〈주자문록〉을 편찬했다.

    서애 유성룡의 제자인 우복 정경세도 시문을 선발해 〈주문작해〉를 편찬해 주자의 글을 널리 읽도록 했다. 주자의 시문을 널리 읽으려는 노력은 퇴계학파의 전통이 됐다.

    꼭 스승의 면전에 나가서만 가르침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시간적으로 몇 백 년, 공간적으로 몇 만 리를 떨어져도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르침을 직접 듣는 것처럼 배울 수 있다. 퇴계선생은 〈주자서절요〉 서문에서 ‘비록 수천 년 뒤 먼 시대라 할지라도 진실로 가르침을 들은 사람은 귀를 당겨 얼굴을 마주해서 가르침을 듣는 것과 다를 바 없다(雖百世之遠, 苟得聞敎者, 無異於提耳而面命也)’라고 했다.

    * 百 : 일백 백 * 世 : 세상 세

    * 聞 : 들을 문 * 敎 : 가르칠 교

    동방한학연구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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