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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5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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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가사 노동의 중요성- 나순용(수필가)

  • 기사입력 : 2022-10-04 19:2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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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직장을 퇴직한 뒤부터 집안 살림살이에 재미를 붙였다. 예전에는 집안 살림보다 직장이 우선이다 보니 가족에게 미안함이 많았다. 그렇게 하자 얼마 되지 않아 찾아온 불청객이 있었으니, 바로 ‘손목터널 증후군’이었다. 사십여 년의 직장 생활에도 별 탈이 없었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병원에서는 손의 혹사로 생긴 병이니 무조건 쓰지 말라며 부목을 오른손에 대고 어깨에 걸어 줬다. 주부가 한 손으로 무슨 집안일을 할 수 있을까. 심지어 세수조차도 여의치않았다. 자연히 집안일은 쌓여가고 힘은 더 들더니 급기야 왼손마저 아프기 시작했다. 조금만 무리해도 증상이 재발해 조심하지만, 전에는 잘 보이지도 않던 것들이 자꾸 눈에 들어와 거슬렸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가사 노동에 대해 박했던 측면이 있다. “집에서 놀면서 도대체 뭘 하냐?”는 식으로 푸대접(?)했다. 주부가 살림하면서 감당하는 일은 그 가짓수는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자녀의 뒷바라지는 물론 따듯한 식사와 밝은 웃음이 넘치는 집안은 주부의 노력으로 이뤄진다. 행주나 걸레를 비틀어 짜야 하고, 장바구니의 무게를 견디는 등 손목이 쉴 새 없이 혹사 당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부가 이 병으로 고생한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지난 2016년부터 퇴직한 공직자가 이혼할 경우에 배우자에게 연금의 절반을 주도록 법이 개정됐다. 결혼 생활에서 가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한 사례다. 그런데도 아직 살림을 잘 꾸려온 가치를 계량화하기가 쉽지 않아 약자의 위치에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집안을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도록 해 놓고, 살림을 늘려 나가고, 자녀 양육을 잘해도 가치 증명이 어렵다는 이유로 어물쩍 넘어가기 일쑤다. 무엇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의 힘듦과 중요성을 모두가 제대로 알고 인정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가장 기초인 가정이 편안하고 행복하기 위함이다. 이런 점부터 개선돼야 진정한 의미의 양성평등도 자연스레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손목에 파스를 두르고 가사 노동에 최선을 다하는 수많은 분을 응원한다.

    나순용(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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