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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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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자산 기록 프로젝트- 마산어시장 알바들] (3) 젓갈가게

재료 손질부터 양념·판매까지 바쁜 하루에도 감칠맛 가득

  • 기사입력 : 2022-10-12 20:5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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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처럼 호래기랑 멍게를 이렇게 바로 무쳐내는 집은 없지!”

    쌀게젓갈, 전어젓갈, 대구아가미젓갈, 가리비젓갈 , 호래기 무침…. 붉은 대야 위로 쌓인 젓갈산이 산맥을 이루는 집. 알바들이 마산어시장에서 두 번째로 일할 곳은 젓갈가게 ‘미래수산’입니다. 김미례(56) 사장님이 25년 전 호래기(꼴뚜기) 판매를 전문으로 시작한 곳인데요, 신선함이 생명인 해산물이다 보니 금세 상하고 상품성이 떨어지는 것이 고민이어서 재고를 무침으로 만들어본 것이 잘 팔렸다고 합니다.

    가을·겨울이 제철인 호래기에 비해 젓갈과 무침류는 사계절 내내 반찬으로 찾으니 안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품목이라는 것도 장점. 이제는 친언니 김미리, 아들 조지현(34) 대표와 함께 30여가지가 넘는 젓갈을 다루고 있고 주말에는 줄을 서야 할 만큼 인기가 많습니다. 여러 재료들을 치대고 버무려 새로운 감칠맛을 만들어내는 밥도둑들의 본거지에 뛰어들어 봅니다.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 PD가 마산어시장 젓갈가게 김미례 사장님으로부터 양념게장 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이슬기 기자와 이아름 PD가 마산어시장 젓갈가게 김미례 사장님으로부터 양념게장 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늘의 할 일

    -호래기(꼴뚜기) 손질

    -젓갈 담을 멍게 자르기

    -양념게장 버무리기·대야에 쌓기

    -손님응대·젓갈 판매하기

    -열무김치 쌓기

    -옆집 진이수산 오징어·새우 손질


    ◇ 복장불량 알바의 달인 스피드 따라잡기

    11:00 젓갈 판매를 하는 것이 주 업무라고 들어 장화를 두고 온 알바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물이 출렁대는 바닥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생선 손질할 것도 아닌데 장화가 필요하겠어?’ 하고 넘겨짚은 게 잘못이었죠. 젓갈집은 붉은 양념이 앞치마에 자주 묻기 때문에 바로 호스로 물을 뿌리며 닦아내야 하고 젓갈로 담을 해산물을 손질해야 하기에 발을 덮는 긴 앞치마와 장화가 필수라고 합니다. 선물한 마산어시장 방수 앞치마 길이도 무릎까지 밖에 오질 않아 길이가 짧은 것이지요. 하는 수 없이 장화를 빌려 신으며 복장과 일할 자세를 제대로 갖춰야 한다는 걸 다시 깨닫습니다. 프로의식을 갖고 계신 ‘반짝이 이모’ 김미리 선배님처럼요. 가게 한가운데서 젓갈 판매를 담당하는 선배님은 위생을 위해 높이 쪽진 머리를 꽃핀으로 장식하고, 손질 편한 가지런한 일자 앞머리를 고수합니다. 또한 굵은 입자의 반짝이 아이섀도를 눈두덩이에 얹어 멀리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이 가게의 마스코트로 활약하고 계시지요.

    11:15 첫 임무는 호래기 손질입니다. 생선가게에서 민어조기 배를 갈라본 가닥이 있으니 아름PD는 자신 있다고 말합니다. 호래기는 머리 부분을 가른 뒤 칼날을 오른쪽으로 밀어 하얀 속살만 남긴 뒤 반으로 잘라줍니다. 다리 부분은 눈알 옆을 살짝 누르듯 저민 후 칼을 튕겨서 눈알을 툭 빼내야 하고요. 이 모든 일이 2초 안에 일어납니다. 호래기 손질로 달인 프로그램에 나온 집 답지요?

    “손목에 힘을 빼고 해야지. 눈 빼기 어려우면 그냥 눈 부분은 잘라도 돼.”

    생선보다 크기가 작아 손질이 더 힘듭니다. 힘 조절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너무 힘을 주면 내장을 제거하지 못한 채 반쪽이 나버릴 것만 같거든요. 손이 저리고 손과 속장갑, 고무장갑, 칼 네 가지가 제멋대로 따로 노는 느낌입니다. 아름PD와 내기를 걸어 작업 속도를 올려보려 했지만 처참하게 패했습니다.

    조지현 대표의 호래기 손질 시범을 보고 있는 이 기자와 이 PD.
    조지현 대표의 호래기 손질 시범을 보고 있는 이 기자와 이 PD.
    이아름PD가 양념 게장을 봉지에 담고 있다.
    이아름PD가 양념 게장을 봉지에 담고 있다.

    ◇ 축구보다 힘든 시장일

    12:10 호래기를 손질하다가 바로 옆집인 진이수산의 오징어와 새우 손질까지 도와드렸습니다. 효자 메뉴인 양념게장을 게살이 뭉개지지 않도록 버무리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조지현 선배님이 가게 최고 인기 젓갈들을 포장해 단골 식당에서 먹고 오라십니다. “먹어봐야 잘 팔지.”

    13:05 “진짜 여수에서 먹은 게장보다 더 맛있었어요.” 살이 차오른 양념게장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지역 특산물인 미더덕의 식감과 멍게의 향을 살린 젓갈들에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특별 비법 양념 담당, 조 선배님을 향해 모두가 엄지를 치켜듭니다. 사실 조 선배님은 대학 때까지 축구선수였는데 부상 때문에 운동을 그만두고 가업을 잇는 길을 택했다고 합니다. 일한 지 2년 만에 이 가게의 주력 메뉴라 할 수 있는 ‘호래기 무침’의 현재 모습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고요. 원래는 하얗기만 한 젓갈이었는데 풋고추를 넣어 식감 좋고 맛깔나는 무침으로 발전시켰죠. 이제 12년 차에 접어드는 그는 어시장 내에서 ‘젊은 대표’에 속하는데요, 열심히 일하고 장사는 잘 되는 편이지만 노동 강도가 높다고 했습니다.

    “축구선수 보다 어시장에서 일하는 게 더 힘든 것 같아요. 축구는 훈련만 끝나면 자유 시간이 있지만 여긴 공휴일 상관없이 거의 한 달에 하루 정도 빼고 내내 일해야 하거든요. (다른 어시장 가게에 비해 출근이 이른 건 아니지만) 오전 7시에 문 열고 오후 7시에 문 닫아 영업시간도 길고요.”

    어시장에 젊은 사람들이 적어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취향, 혹은 발전 방향을 공유할 사람이 적은 것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입니다. 일반 가게들 보다 두 배로 비싼 수산물의 택배비(6000원)를 택배사와의 직접 계약으로 가격을 낮춰보려 했지만 좌초됐던 일도 들려줬습니다.

    “쉽지 않죠. 싱싱한 수산물 조금 사겠다고 배꼽이 더 큰 택배비를 부담할 사람이 적을 것 같아 걱정되고. 젊은 층이 유입돼야 마산어시장이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에 장보기 편한 마트 같은 형태를 갖추기도 어렵고요. 먹거리로 유입시키는 것도 예전에 푸드트럭을 동원해 시장 자체적으로 시도한 적 있는데 잘 안 됐어요.”

    이 밖에도 젓갈가게에서 일하는 것은 해산물을 일일이 손질해 손가락이 아프고, 목이 긴 장화를 신고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 보니 발에 땀이 차서 피부가 벗겨지는 단점도 있는데 양념게장 판매를 도맡은 은주 선배님은 사람들이 좋아 일한다고 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차가워보일 수도 있는데 조금만 대화해보면 다들 정이 있어요. 손님 중에 저를 며느리라고 부르시는 분들도 있고요.”

    때마침 첫 알바 장소인 모녀상회 사장님이 깜짝 방문하셨습니다. 가게가 바로 근처였음에도 출근 시간에 늦어 미처 인사도 못드리고 와서 죄송한 마음 한가득 했는데 말이지요. “와 놓고서 인사도 안 하나” 애정어린 눈흘김을 보내십니다. 선배님들이 말씀하신 정이 바로 이런 거겠지요.

    이슬기 기자가 마산어시장 한 젓갈 가게에서 양념 게장을 버무리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마산어시장 한 젓갈 가게에서 양념 게장을 버무리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마산어시장 한 젓갈 가게에서 직접 껍질을 깐 새우를 보여주고 있다.
    이슬기 기자가 마산어시장 한 젓갈 가게에서 직접 껍질을 깐 새우를 보여주고 있다.

    ◇칭찬은 알바도 춤추게 한다

    13:45 “엄마, 제피 든 거? 안 든 거?”

    양념게장을 찾는 손님이 가장 많은데요, 제피를 넣은 것과 안 넣은 것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제피(초피) 가루는 톡 쏘면서도 향긋한 맛이 있어 추어탕이나 김치에도 넣어 먹는 경상도의 향신료 사랑을 보여주는 재료입니다. 호불호가 뚜렷이 갈리기 때문에 가게에서는 두 가지 모두 판매하고 있습니다. 600g에 1만원. 비닐을 뒤집어 두 손을 넣은 다음 게장을 안는 것처럼 잡으면 비닐 끝에 묻지 않고 담깁니다. 처음에는 무게 측정이 어려웠는데 몇 번 해보니 500g 언저리. 나중에는 한 번 만에 610g이 나왔습니다. “손이 저울이네.” 칭찬에 입꼬리가 씰룩입니다.

    비닐을 묶기 전 게장이 촉촉하고 맛있게 유지되길 바라며 비닐을 짧게 잡고 앙념을 한 국자 떠서 게장 위에 얹어주면 손님께 드릴 준비가 끝납니다. 찬바람에 게장 양념이 마르기 때문에 손님이 가고나면 다시 양념에 버무려서 피라미드 쌓기를 반복해야 합니다.

    “이모, 이제 공주한테 통에다 한 번 담아보라고 해 봐요.”

    숫자에 약해 혹시나 거스름돈이라도 잘못 드릴까 긴장했던 아름PD는 게장 판매왕으로 거듭나며 새로운 일이 주어져도 야무지게 해냅니다. “아빠, 얼마치 드릴까예?”

    14:50 멍게를 자릅니다. 멍게 하나하나를 반토막 내다 선배님이 눈대중으로 빠르게 많은 양을 썰어내시는 걸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집니다. “손 다칠까봐 하나씩 자르라고 하는 거예요. 칼이 잘 들거든.” 아니 그래도 알바가 이렇게 일을 느려서 되겠습니까. 저만의 안전한 방법을 고안합니다. 멍게를 왼손으로 모아 통김밥처럼 뭉쳐서 썰었더니 칼을 댈 지점이 명확해지고 한 번에 내리치는 양도 적당해 손목에 부담도 덜 갔습니다.

    제 방법이 꽤나 괜찮았을까요? 양념게장 버무릴 때도 “왼손은 왜 안 쓰지?” 하고 나지막이 혼내(?)시던 조 선배님, 호래기 손질의 달인 김미례 사장님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습니다.

    “일머리가 있어, 일주일만 더 하면 일해도 되겠다. 집도 가깝다고요? 주말에 아르바이트생으로 한 번 불러야겠는데.” “양념게장 무치는 건 이 아가씨(아름PD)가 더 잘하고.”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지만, 알바들도 춤추게 만듭니다. 으쓱하며 앞치마를 벗습니다. “필요하실 때 불러주세요!”

    ▶지역자산 기록 보고

    점심시간에 여러 종류의 젓갈을 흰 쌀밥 위에 척척 걸쳐 먹다 보니 경상도의 젓갈사랑이 유별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선후기에 나온 우리나라 최초의 물고기 도감 ‘우해이어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우해이어보는 220년 전 우해(현재 마산합포구 진동 앞바다)로 유배 온 김려가 이 일대 물고기들을 잡아 기록하고, 조리법과 놀이 등 풍속까지 담은 책입니다. 볼락(보라어)을 설명한 부분에 젓갈을 담가 먹는 법을 적어두고, 감성돔을 식해로 만들어 먹는다고 써놓았습니다. 이 기록을 되살리기 위해 4년 전 창원시에서 전통음식 계승발전을 위해 우해이어보에 나오는 조리법을 토대로 ‘감성돔 식해’ 시식회를 열기도 했고 지난달 30일 마산문화원에서는 향토음식복원사업 일환으로 볼락젓갈, 와각탕(조개탕) 시식회를 가졌습니다. 3개월에 걸쳐 볼락젓갈을 담은 마산대학교 식품영양조리제빵학부 남유선 교수는 “젓갈 식해류 등의 발효음식은 우리 지역 음식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조미료이자 반찬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지역과 음식이 서로를 연상시키는 만큼 볼락젓갈처럼 젓갈이 갖는 영양학적·기능적 가치를 더해 현대인의 기호에 부합하게 발전시킨다면 우리 지역의 이미지 제고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해마다 거제도 사람들이 보라어를 잡아 젓갈을 담아 배로 수백 항아리씩 싣고 와서 포구에서 팔아 생마와 바꾸어서 간다. 거제도에는 보라어가 많이 잡히지만, 모시는 매우 귀하기 때문이다. 젓갈 맛은 조금 짭짤하면서도 달콤해서 마치 쌀강정과 같다. 밥상에 올려놓으면 윤기가 나고 색깔이 더욱 좋다. (중략)” -우해이어보 ‘볼락’ 가운데

    글= 이슬기 기자·사진= 성승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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