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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부자(父子) 독립운동가’ 이승규·은상 지사- 김복근(경남문인협회 고문·문학박사)

  • 기사입력 : 2022-10-18 19:2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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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규 지사는 마산시에서 사회장을 치르고, 이은상 지사는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회장을 치른 역사적인 인물이다(2011년 1월 27일 경남신문). 이은상 지사가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은 사실은 기록에 나와 있지만, 이승규 지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사실은 브라질에서 목회활동을 하다 최근 영구 귀국한 손자 이수명 목사가 독립유공자 유족증을 받으면서 비로소 알려지게 됐다.

    남하 이승규 지사는 1906년 성호리의 구마산교회와 창신학교의 전신인 독서숙을 설립한 마산의 선각자였다. 일제는 마산을 식민지 전진기지로 삼았다. 기독교 장로였던 남하 이승규 지사는 창신학교와 의신학교를 중심으로 마산의 3·1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노산의 공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독립만세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다. 북마산 장날(1919년 3월 21일)을 거사일로 정했으며, 거사 당일 3000여명의 군중이 참여했다. 일본군은 중포병과 헌병을 동원해 무력 진압을 자행했고, 이상소 장로와 박순천 여사를 비롯한 50여명을 체포했다. 3·1운동 후 독립운동가들은 1921년 워싱턴회의에서 한국의 독립을 국제사회에서 보장받고자 했다. 이승규 지사는 마산지역 대표로 서명하는 등 항일투쟁에 힘을 쏟았다. 또한 ‘은상이 샘’ 부근의 사유지 전부를 마산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이은상지사는 이승규 지사의 아들이다. 그는 1928년 조선어사전 편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1931년 6월부터 동아일보에 35회에 걸쳐 빼앗긴 조국의 국토와 문화재에 얽힌 심정을 술회한 ‘사상로맨스’를 연재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34년 겨울, 국가적 인재를 양성할 교육기관으로 이극로·안호상·이윤재 등과 양사원 설치를 추진했다. 1938년에 조선일보의 주간으로 있으면서 일본군의 명칭을 ‘아군’, ‘황군’으로 표기하는 것을 반대하다 6월에 사직했다.

    1942년 12월 23일 일제가 한국어 말살정책을 대폭 강화하고 한글학자들을 탄압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선어학회수난사건으로 구속돼 함경남도 홍원경찰서와 함흥경찰서에서 일제의 잔혹한 고문과 악형을 받았으며, 1943년 9월 18일 함흥지방법원에서 기소유예로 석방됐다. 1945년 2월 2일 사상예비검속으로 다시 광양유치장에 구금됐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출옥했다. 정부에서는 지사의 공훈을 인정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이로써 우리는 남하 이승규 지사와 노산 이은상 지사는 부자 간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공인한 독립운동가이며 사회장을 치른 역사적인 인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새해에는 창원시와 뜻있는 사회단체에서 독립운동가 이승규·이은상 지사를 기리는 사업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복근(경남문인협회 고문·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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