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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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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ON- 여기 어때] 부산의 숨은 유적지 탐방

역사 따라 걷다 보면… 부산 풍경 따라온다
동래부 동헌, 부산에 있는 조선시대 단일 건물 중 최대규모
3·1운동 당시 총궐기 장소… 지역 주민들 독립정신 깃든 곳

  • 기사입력 : 2022-10-27 19: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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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산동 배산 고분군 배산성 삼국시대~통일신라시대 축조

    역사길 걸으며 도심 속 트레킹·테마 힐링·문화공연 만끽

    부산의 명소 해운대에 위치한 구석기 시대 유적지 ‘장산’

    조선시대 와우산 달맞이고개 전설 등 수많은 설화 깃들어

    연산동 배산 고분군 역사길.
    연산동 배산 고분군 역사길.

    여행을 하면서 어떤 도시를 방문했을 때 그 도시의 역사 정체성을 알고 탐방한다면 단순히 공부를 떠나 그 도시의 매력이 새삼스레 다가오는 경우가 있다.

    부산은 단순히 우리나라 제2의 도시라는 이미지 외 그 속에 깃든 역사성은 다른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고, 연제구 연산고분군에서 만나는 가야와 삼한시대, 조선시대 왜관의 역사, 임진왜란 첫 전투지, 근대 첫 개항 도시,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란 수도, 4·19에서 1979년 부마항쟁, 1987년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지는 역사 등이 그것이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 수도 부산의 역사는 1950년 8월 18일부터 10월 26일까지 그리고 1951년 1월 4일부터 1953년 8월 14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무려 3년에 가까운 1023일 동안이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정부는 3번에 걸친 피란 정부를 옮겼고,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27일부터 7월 16일까지 대전에 피란 정부를 마련했다가 금강 방어선이 위협을 받게 되면서 7월 16일부터 8월 17일까지 대구에서 피란 정부를 운영했다. 하지만 8월 초부터 시작된 낙동강 방어 전선이 치열해지면서 8월 18일부터 피란 정부를 부산으로 옮겼다.

    1972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동래부 동헌./동래구청/
    1972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동래부 동헌./동래구청/
    1972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동래부 동헌./동래구청/
    1972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된 동래부 동헌./동래구청/

    ◇역사 깃든 동래부 동헌(東萊府 東軒)을 아시나요

    동래부 동헌은 아헌(衙軒)이라고도 하며 조선시대 수령이 일을 처리하던 곳으로 군사적, 외교적으로 중요시돼 다른 지방 관아보다 건물이 거대했다.

    1972년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될 정도로 소중한 문화자산인데, 부산에 남아 있는 조선시대의 단일 건물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관아 건축 양식이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에는 동래군청 청사로 사용된 유서 깊은 곳으로,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 편입 이후 양산군보건소 동부지소로 사용됐다.

    도심에서 접하는 전통 관아 건물과 양식의 활용 가치가 적지 않은데, 동래구는 2012년 동래부 동헌 복원 계획을 세워 충신당(忠信堂), 연심당(燕深堂), 독경당(篤敬堂), 찬주헌(贊籌軒), 고마청(雇馬廳), 완대헌(緩帶軒), 망미루(望美樓), 동헌 외대문(東軒 外大門)을 완공했다.

    동래부 동헌은 동래지역 3·1운동 당시 총궐기의 장소로 이용돼 지역주민들의 독립정신이 깃든 곳으로, 1996년부터 해마다 3월 1일이면 3·1운동 당시 그날의 함성 등을 재현해 동래의 얼을 되새기는 행사를 거행한다.

    특히, 동래향교(東萊鄕校)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으로 현재 국공립 중·고등학교와 비슷해 임진왜란 때 동래성 함락과 함께 불탄 후 1605년(선조 38년) 부사 홍준(洪遵)이 재건했다.

    제향(祭享)으로 공자(孔子) 이하 중국의 유명한 유학자와 우리나라 유학자들을 모시고 매년 봄과 가을(음력 2월, 8월 상정일)에 석전대제 봉행을 거행한다.

    주요 시설로는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반화루(攀化樓), 전사고(典祀庫), 교직사(校直舍), 비석이 있다.

    연산동 배산에 위치한 고분./연제구청/
    연산동 배산에 위치한 고분./연제구청/

    ◇연산동 배산 고분군 역사길 함께 걸어요

    연제구 배산 둘레길 일대를 돌아보자. 배산(盃山·해발 고도 256m)은 술잔을 엎어 놓은 것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적 539호로 지정된 연산동 고분군. 삼국시대 부산지역을 다스린 수장층이 묻혀 있는 곳으로, 인근의 복천동 고분군 조성 시기 이후에 활발하게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배산성지인 배산성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쳐 축조된 것으로, 배산 정상을 중심으로 산허리를 돌로 둘러 쌓은 산성이다. 사방을 조망할 수 있어 배산성은 군사적 요충지로 꼽혔다.

    2017년 발굴 조사 때 배산성 북문으로 추정되는 터 일대에서 식수를 모아두는 집수지(1, 2호) 두 곳이 확인됐고, 2호 집수지(안쪽 지름 12m)는 영남지역 신라 산성의 집수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집수지에서 나온 나무 기둥과 목간(나무에 적은 간단한 기록)의 연대 분석 결과 나무 기둥의 경우 446년에서 556년 사이의 것으로 추산된다는 과학적 분석 결과가 최근 나왔다. 이를 미뤄 볼 때 목간의 연대 분석 결과까지 나오면 배산성과 집수지의 축조 연대가 기존에 알려진 것(600~650년)보다 100년가량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배산성지 북쪽 성벽 서쪽에서는 전형적인 삼국시대 신라식 축성 기법이, 동쪽 구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축성 기법이 각각 확인됨에 따라, 배산성 축성 기법의 변천 과정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분은 2017년 사적 539호로 지정된 유적으로, 삼국시대 부산지역을 다스린 수장층이 묻혀 있는 고분군이다. 배산의 북쪽으로 뻗어 내린 구릉에 지름 15~25m의 큰 봉분 16기가 늘어서 있다. 부산에서는 유일하게 큰 봉분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그 주변으로 중·소형 무덤 수백 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연산동 고분군은 같은 부산지역 수장층의 묘역인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주로 300~400년 조성)보다 늦은 400년대 후반부터 500년대 전반까지 활발하게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복천동 고분군의 자리가 비좁아지자 연산동 고분군으로 묘역을 옮겼다는 얘기다. 연산동 고분군의 주된 무덤의 구조는 구덩식 돌방무덤이다.

    연산동 고분군은 큰 봉분이 남아 있는 곳이다 보니 일제강점기 등 오랜 기간 도굴의 표적이 됐다. 일제강점기에 발견된 갑옷과 투구, 8호분에서 출토된 비늘갑옷(찰갑), 쇠로 만든 갑옷(판갑) 등에서 보이는 것처럼 연산동 고분군에 묻힌 수장층은 군사력과 정치력을 동시에 장악했던 것으로 보인다. 배산성과 연산동 고분군의 연결 고리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배산 고분군은 남녀노소 누구나 가벼운 트레킹 코스로 구성돼 잠시 복잡한 도심 속을 떠난 역사 테마 힐링과 문화공연, 시장 체험 상품권으로 전통시장 장보기 체험도 할 수 있다.

    해운대 장산./해운대구청/
    해운대 장산./해운대구청/

    ◇구석기 유적지 해운대 ‘장산’으로 가보자

    해운대는 예로부터 명승지로 유명했는데, 근대 들어 해운대가 본격적인 관광지로 인기를 끈 것은 1918년 동해남부선 철도가 개통된 이후부터다. 동해남부선이 개통되기 전의 해운대는 접근성이 떨어져서 온천욕과 해수욕을 같이 할 수 있는 명소였지만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일상적인 휴양지로 이용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해운대해수욕장은 1965년 정식 개장을 통해 2022년 현재 개장 57주년을 맞이하고 있는데 반세기 이상 1세기를 해수욕장과 온천으로 그 명성을 쌓아왔다. 해운대구는 이제 타지인들이 연중 해운대를 찾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고 장산의 매력과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전국 최초로 구립공원으로 지정해 놓았다.

    해운대 장산의 역사는 인류가 출현한 구석기 시대부터 그 연원을 이어오고 있다. 1990년에 들어서면서 해운대 청사포 일대에서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채집됐고, 1992년 해운대 신시가지 조성계획에 의한 지표조사 및 시굴 조사 결과, 좌동과 중동 일대에서 구석기 시대의 석기가 다량 출토돼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운대 좌동·중동 유적은 영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정식 발굴 조사된 구석기 시대 유적이었다. 장산의 구석기 유적지로 인해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역이 해운대임이 분명하며 부산지역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적지 네 군데(청사포, 좌동, 중동, 지사동) 중 세 군데가 장산 자락에 배치돼 해운대 장산은 구석기 시대 때부터 사람 살기 좋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부산시립박물관에 유물이 모두 소장돼 있으며 청사포 유적지를 제외한 나머지 유적지는 아파트촌으로 덮여 있는 상황이다. 지금 그 흔적은 부산시립박물관 동래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산은 옛날 장산국이 있던 곳이라 해 전해진 이름인데, 장산국은 신라와 가야의 경계 지역에 위치했는데, 이 장산국의 건국과 패망에 따르는 설화가 다수 전하고 있으며 마고당, 천제단뿐만 아니라 장산 내의 큰 바위 등에도 설화가 어려 있다.

    구석기 시대 유적부터 삼한시대 장산국, 신라시대 때부터 알려진 구남온천, 고려시대 해운대 석각, 조선시대 와우산 달맞이고개 전설, 청사포 푸른 뱀 전설, 좌수영 이야기, 간비오산 봉군 이야기, 배를 만들기 위해 봉산으로 지정됐던 장산 등 많은 이야기들이 장산 구석구석 남아 있다. 우리는 짧게는 몇백 년에서 길게는 1만9000여 년 전 조상들의 염원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오랜 세월 장산의 땅속에 숨겨져 있을 많은 이야기들은 우리들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장산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수많은 전설과 설화들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김한근 기자 khg@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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