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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민주화의 성지에 ‘노산’ 기념관이라니-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 기사입력 : 2022-11-06 19: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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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 출신 문인 ‘노산’ 이은상(1903~1982)에 대한 논쟁이 최근 다시 뜨거워졌다. 마산문학관을 노산기념관으로 바꾸자는 서영권(국민의힘) 창원시의원의 지난달 26일 발언이 발단이 됐다. 문인계에서는 이은상의 문학적 성과를 인정해 노산기념관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3·15의거기념사업회와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등 민주단체는 그가 독재정권에 부역한 행적을 들어 결사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마산은 수많은 시민들이 목숨 바쳐 독재정권과 싸워 자유·민주를 지켜낸 성지다. 민주의 서슬이 퍼런 이곳에, 민주화를 짓밟은 독재정권을 옹호한 문인을 단지 문학적 성과가 크다는 이유로 영웅시할 수 있단 말인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핵심 이슈를 풀어내 본다.

    첫째, 민주단체는 이은상의 친독재 행적에 주목한다. 이은상은 1960년 3·15의거 전날까지 이승만과 이기붕의 당선을 위해 부산·대구·인천·대전·경주·진주·마산 등지를 돌아다니며 이승만을 “성웅 이순신 같은 분”, 이기붕을 “인품이 훌륭한 분”이라고 열렬히 찬양했다. 3·15의거에 대해서는 ‘무모한 흥분’, ‘지성을 잃어버린 데모’, ‘불합리, 불합법이 빚어낸 불상사’로 규정해 참여자와 희생자들을 폄하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한 바 있다. 박정희 정권의 민주공화당 창당선언문을 작성했고 1972년에는 청우회 중앙본부 회장을 역임하며 ‘10월 유신 지지 성명’을 발표한 적도 있다. 1979년 부마항쟁과 직결되는 긴급조치 9호에 호응하는 총력안보국민협의회 의장을 맡기도 하였다. 1980년에는 전두환을 옹호하는 글을 기고하고 다음해 전두환 정권의 국정자문위원으로 임명됐다. 한마디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비민주적인 독재정권들에게 부역했던 단골멤버였다.

    둘째, 문인계에서는 “이은상은 건국훈장 애국장 서훈을 받은 독립운동가이자 사회장을 치른 당대 최고의 대문호”라고 주장한다. 이은상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2년에 사망했고 건국훈장 애국장은 노태우 대통령 때인 1990년에 추서됐다. 이들에게 받은 훈장은 영광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군사독재정권에 부역한 성과물로 받은 치부가 아니겠는가.

    셋째, 마산의 민주화운동은 특정학교가 아니라 올바른 이성을 가진 분들이 여러 분야에서 분연히 일어선 시민운동이다. 3·15의거 예를 들면, 김주열(마산상고), 김영준·김용실(마산고), 강융기·김영호(마산공고), 김삼웅·전의규·김영길(창신중), 김효덕(마포중), 김종술(마산동중), 직업청년 조현대·오성원·김동섭, 부림시장 상인 김평도 열사 등 총 14명이 목숨을 잃었다. 또한 200여명 부상, 1000여명의 연행자가 발생했다. 김주열 열사의 경우 3·15의거 27일 만인 4월 11일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시신이 발견되어 2차 의거와 4·19의거의 도화선이 됐다. 하지만 나머지 분들의 희생도 값지기는 마찬가지다. 일례로 마산고는 지난 3월 15일 김영준·김용실열사 추모동산을 학교에 조성하고 민주정신을 되새겼다.

    넷째, 문인계에서는 “폴란드의 소금광산에 적국인 독일의 시인 괴테의 동상을 세운 것은 성숙된 문화”라고 주장한다. 괴테(1749~1832)는 독일인일 뿐 나치 100년 이전의 사람으로 폴란드 침략의 직접 당사자가 아니므로 사안이 다르다.

    목숨 바쳐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아니 독재정권에 부역했다고,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고 해서 이은상을 비난할 수는 없다. 그건 본인의 몫이니까. 하지만 시민에게 총칼을 들이댄 세력들에게 빠짐없이 부역한 기회주의자를 시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기리자는 발상이 도대체 왜 나왔을까? 이는 민주성지 마산을 모독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시민들의 분열만 가져올 것이다. 기념비 같은 물질적 표식뿐만 아니라 생각과 정서가 뒷받침되어야 진정한 민주성지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상준(한울회계법인 대표 공인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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