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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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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가족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종구(김해본부장)

  • 기사입력 : 2022-11-08 19: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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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엊그제 팔십대 중반 노모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추석 무렵부터 악화된 지병과 노환이 차도를 보이지 않으면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결정이었지만 요양병원에 모셔놓고 돌아오는 발걸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요양병원 환경이 과거에 비해 시설이나 의료진 등의 면에서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식된 입장에서는 현대판 고려장을 하고 오는 심정이었다. 내 잘못으로 모친이 요양병원에 입원한 것인냥 죄책감이 몰려왔다.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 최근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계절로 치면 늦봄이나 초여름 때 가장 아름다울 나이인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사이 젊은이 150여 명이 한순간에 목숨을 잃은 어처구니없는 사고 장면이 집으로 오는 30여 분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꽃 같은 나이에 결코 일어나지 않아야 할 사고로 떠난 희생자들의 안타까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 가족들의 슬픔과 아픔은 얼마나 클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아내와 중학생 딸을 한꺼번에 잃은 가장의 비통함은 필설로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으로 유학 간 아들을 잃은 미국 아버지는 수억 번을 동시에 찔린 것 같다고 고통을 표현했다.

    가까운 이를 사고로 떠나보낸 사람들은 처음에 자책감으로 많이 괴로워한다고 한다. 대부분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이다. ‘그때 그 곳에 보내지 말 것을’, ‘가지 말라고 붙잡을 것을’, ‘해달라고 할 때 해줄 것을’ 등등. 특히 떠난 이와 사고 전 다툼이 있었던 가족이나 지인은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훨씬 더할 것이다. ‘왜 이태원에 가는 것을 막지 못했을까’ 등의 회한이 끝없이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사고 당일 용돈으로 5만원을 준 딸에게 더 주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어머니, 속 한번 안 썩이던 아들이 떠난 것이 원통해 ‘속이라도 좀 썩이지 그랬어’라고 비통해하는 어머니 등등. 자식을 사고로 잃은 부모의 심정은 모두 이러할 것이다.

    하지만 이태원 참사는 사고를 당한 이들의 잘못이 아닌 것은 물론 가족들의 잘못도 아니다. 책임을 묻자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돼 수많은 젊은이들이 몰려들 것을 알면서도 대비를 하지 않은 행정과 사고위험이 크다는 긴급전화를 불이 나도록 받고도 발 빠르게 인명구조 활동에 나서지 못한 경찰과 소방당국의 잘못이 크다. 그런데도 행정과 경찰, 소방의 최고 책임자인 행정안전부 장관은 희생자들을 한 번 더 죽이고 유가족들의 아픈 가슴을 후벼 파는 발언으로 염장을 지르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장관은 참사 발생 초기 사고 원인에 대해 ‘그전과 비교해 특별히 우려할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은 아니었다’, ‘통상과 달리 소방, 경찰 인력을 미리 배치하는 걸로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는 발언은 물론 매뉴얼이 없는 탓, 축제 주최가 없는 탓 등 국민들의 상식과 동 떨어진 것은 물론 면피성 발언으로 공분을 샀다.

    헌법 제34조 6항에는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처럼 생떼같은 청춘 150여 명이 희생된 이태원 참사의 책임은 국가에 있지 희생 당사자나 가족에 있지 않다.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자책감에 괴로워하고 있을 유가족들에게 ‘여러분들의 책임이 아니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이종구(김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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