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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위험하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 철학자)

  • 기사입력 : 2022-11-13 19:2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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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이데거의 철학에 ‘위험’이라는 개념이 있다. 주로 근본적 존재사유와 근대적 기술문명의 대비에서 이것을 다루지만 그의 언어구사는 좀 괴상해서 그 이해가 간단치는 않다. 그러나 이것이 일종의 시대 비판이라는 점에서 이 개념을 다시 호출해 본다. 그의 문맥과는 상관없이 지금 우리 시대가 위험하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한국이 그렇다.

    한국이 위험하다고? 이렇게 잘 나가고 있는데? ‘US뉴스&월드리포트’가 발표한 2022년도 세계 국력 순위에서 프랑스와 일본을 제치고 세계 6위가 되었다는데? BTS/기생충/미나리/오겜 등 한류 열풍이 세계를 휩쓰는데? 삼성의 시장 점유율이 세계 1위라는데? 군사력 세계 6위, 경제력 세계 10위라는데?… 여러 지표가 그렇게 가리킨다니 대단한 건 틀림없다. 해방과 휴전 직후 세계 최하위권이었던 걸 생각하면 경이요 기적이라는 것도 빈말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도 이미 알고 있다. 문제가 하나둘이 아니다. 우리를 둘러싼 소위 세계 4강 미중러일과의 관계는 원만한 게 하나도 없다. 유럽에서는 존재감조차 미미하다. 북한은 연일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위협한다. 코로나와 미세먼지도 여전히 현실이다. 저출산 고령화도 나라의 근간을 흔든다. 수도권 초집중으로 지방은 괴멸 직전이다. 진영대립은 물론 동서, 남북, 상하, 좌우, 전후, 원근, 남녀, 노소까지 다 쪼개져 죽기 살기로 서로 쥐어뜯고 있다.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에휴, 다 끝났구나” 하는 저 2500년 전 공자의 한탄을 되뇌게 된다. 이런 ‘문제’ 리스트를 만들자면 책 한 권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위험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위험 중의 위험이 있다. ‘인간의 기본’이 흔들리고 있다. 인간의 기본? 그게 뭔데? 이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철학 이론들이 있지만, 다 생략하고 저 맹자를 보자. 그는 말했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시비지심, 사양지심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다”라고.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부끄러운 줄 아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별하는 마음, 자기보다 남을 생각하는 마음, 소위 인의예지의 네 단서들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 이런 인간이 있는가?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눈에 띄지를 않는다.

    ‘인간의 기본’에 대해 공자는 인의예지 등 최소 50개의 가치들을, 소크라테스는 덕 진선미 정의 등 최소 15개의 가치들을 이야기했다. 예수도 사랑 용서 등 부지기수다. 그중의 어느 하나만 제대로 갖추어도 그는 ‘인간’이라고 인정될 수 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것에 관심이 없다. 세상의 전면에서는 ‘비인’들만이 설쳐댄다. 대개는 그런 자들이 돈과 지위와 명성을 거머쥔다. 그래서 나라는 점점 더 천박화의 길로 치닫는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유일한 방향은 ‘질적인 고급국가’다. ‘세계제일’의 진정한 선진국이다. 우리는 애당초 덩치가 작아 양적으로는 미중러일과 게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질적으로 승부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삼성과 BTS가 그 모범을 보여줬다. 그 가능성을 결과로써 입증한 것이다. 그런 것을 견인하고 뒷받침하는 게 정치의 임무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인간’에 대해, 그 ‘질’과 ‘고급화’와 ‘세계 최고’에 대해 뭔가를 하고 있는가? 아니 관심이나 있는가? 아니 정치에게 그런 걸 기대나 할 수 있을까? 정치 자체가 가장 저질이며 세계 꼴찌라고 거의 모든 국민들이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저들은 반대당이나 국민들에 대해 측은지심이 없고 자신의 행태에 대해 수오지심이 없고 사안들에 대해 시비지심이 없고 이익 앞에 사양지심이 없다. ‘인간’이 못 되는 것이다. 개념도 없는 그런 정치에게 무슨 ‘인간의 기본’을 기대하겠는가. 이대로 가면 나라가 망한다. 참으로 위험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 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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