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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쇠로 만든 방주, 표류하는 아고라- 김재환(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기사입력 : 2022-11-16 19: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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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주 거제에 있는 칠천도를 찾아갔다. 칠천도는 임진왜란 당시 칠천량 해전이 벌어졌던 곳인데,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에게 패한 뼈아픈 역사가 남아 있다. 칠천량 해전은 승전이 아닌 패전이지만, 이 역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다. 최근 다크투어리즘이 유행을 하고 있으니 칠천량 해전은 또 다른 관점에서 거제의 문화적 자산이라 할만하다. 이러한 역사를 알고는 있었으나 사실 이날 칠천도를 찾아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후배가 기획한 전시가 이곳 칠천도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뜬금없이 칠천도에서 전시라니!’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옥계항 한 편에 자리 잡은 ‘선진호’라는 배 안에서 열리는 현장형 전시였다. 선진호는 1993년부터 2012년까지 해양무기체계 개발과 해상시험업무를 담당했던 실험에 특화된 연구용 배로, 현대중공업이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세계에서는 다섯 번째로 건조한 독특한 선박이다. 2012년에 퇴역해 전시와 체험이라는 공익적 목적으로 육지에 정박한 이 배에서 열리는 전시이니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전시 역시 해양산업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한반도 동남권이라 할 수 있는 부산, 울산, 경남(마산) 등 국가관리무역항을 돌며 조사하고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운행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선진호 내부 곳곳에 마련된 전시는 조선·선박, 해운·항만, 해양산업시설, 노동자 등 네 개의 범주 속에서 인간이 바다에서 살며 만들어 온 풍경을 담아내고 있다. 사실 위 네 개의 범주는 우리가 평소 바다를 생각할 때 잘 떠올리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삶의 실질적 바탕이라 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라고 할 수 있는데, 해외로 수출입하는 수많은 물건과 상품들이 들고 나는 심장과 같은 것이다. 중요하지만 숨겨진 존재인 이것은 그래서 퇴역해 옥계항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선진호의 운명과 닮아 있다. 인류를 구원할 방주이면서도 공론 장에서는 밀려나 있는 해양산업은 그래서 전시 제목처럼 ‘쇠로 만든 방주이자, 표류하는 아고라’로 떠다니고 있다.

    김재환(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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