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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막말- 이상권(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2-11-17 19:4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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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言)은 생각의 발현(發現)이다. 살아온 이력과 품격의 투영이다. 동서고금 말조심을 강조하는 경구가 적지 않다. 매사 화근이 혀(舌)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중국 역사상 드물게 20여 년간 재상 지위에 있었던 풍도는 ‘입은 화(禍)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라고 했다. 세인들은 그를 ‘부도옹(不倒翁)’ 즉 고꾸라지지 않는 노인이라 불렀다.

    ▼막말은 나오는 대로 함부로 내뱉는 속된 말이다. 정작 막말이 일상화된 이들은 잘못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거친 성정을 여과 없이 표출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른다. 상스럽고 몰상식한 부류다. 자존감의 결핍을 드러내는 원시적 행동이자 열등의식의 발로다. 스스로 인격을 갉아먹는 병리 현상이다. 사회에서 외면받고 잠재적 적을 만들어 결국 역공당하기 마련이다.

    ▼우리 정치판은 ‘막말 끝판왕’ 정도로 평가절하된 지 오래다. 정치는 다원성을 전제한다. 의견 차이로 파열음을 낼 수밖에 없다. 양보와 타협을 통해 차이를 줄이는 과정이 그 본질이다. 정치 언어는 세상을 이해하는 현실 인식에 근거해야 한다. 하지만 갈수록 분노와 증오의 칼날이 서슬 퍼렇다. 민의의 전당은 독설 경연장을 방불케 해 국민 분노 게이지를 끌어올린다. 여야의 쉼 없는 드잡이에 정치는 외면받고 정치인은 비아냥 대상으로 전락했다.

    ▼최근 대통령 캄보디아 순방 때 심장질환 아동을 안고 있는 김건희 여사 사진을 “빈곤 포르노 화보 촬영”이라고 비판한 야당 의원 발언이 막말 공방에 불씨를 댕겼다. 여당은 “휴머니즘 파괴에 이른 저주와 타락”이라며 발끈했다. ‘가난을 자극적으로 연출해 동정심을 유발하는 사전적 의미’라는 항변은 묻혔다. 정치적 악다구니는 결국 진영 결집의 노림수로 귀결한다. 막말은 사유의 편협과 무능의 산물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고 했다.

    이상권(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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